[MT 시평] 응보적 처벌과 용서의 조건

머니투데이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2017.04.04 04:47
글자크기
[MT 시평] 응보적 처벌과 용서의 조건


역사적으로 언제 그렇지 않은 적이 있었겠냐만 우리 사회가 지난 몇 달처럼 들끓은 시기도 흔치 않아 보인다. 근대 이후 대통령 탄핵과 구속이란 초유의 사건을 겪으면서 서로 다른 여러 목소리가 창과 방패처럼 부딪치며 긴 파열음을 내고 있다. 이러한 갈등과 논쟁이 때론 지나치게 소모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때론 그 간극이 너무 커 영영 서로 손을 다시 잡지 못할 만큼 끝없이 멀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가 이처럼 치열한 삶의 과정을 겪으면서 얼마나 많이 성장하고 성숙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의 근대는 대략 백 년 전부터 시작됐지만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이와 같은 사건이 민주적으로 가능했으리라고 상상하긴 쉽지 않다. 근대가 절대적으로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법을 최후의 의사결정 방식으로 채택할 만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전한 것이다. 큰 틀에서 보면 경제 발전 속도 못지않게 정신적으로도 빠르게 성장한 셈이다.



이번 사건엔 국민의 정의에 대한 욕구가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사람들이 자기 이익만 추구할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많은 사람이 타인을 위해 자신의 이득을 희생한다. 심지어 사람들은 공정하지 못한 처사나 옳지 못한 일을 보면 거의 자동적이고 즉각적으로 반발하고 저항할 정도로 정의를 회복하는 데 민감하다. 흥미롭게도 어린아이들도 불공정성을 만회하고자 노력한다는 점을 많은 연구가 입증했다.

정의를 지향하는 특성은 성인도 마찬가지다. 가령 ‘제3자 처벌 게임’을 이용한 한 연구에서 분배자는 무일푼의 수용자에게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돈을 할당할 수 있다. 그리고 제3자는 분배자가 수용자에게 분배하는 돈의 액수를 관찰한 후 그 분배가 불공정하다고 판단되면 그 분배자를 처벌할 수 있다. 그러나 처벌 시엔 자신의 돈을 지급해야 한다. 그 결과 분배자가 50% 이하로 불공정한 분배를 할수록 제3자는 그를 처벌하기 위해 자신의 돈을 더 많이 사용했다.



이처럼 정의에 대한 우리의 욕구는 늘 살아 숨 쉰다. 이 같은 욕구 중 하나가 ‘응보적 정의’에 대한 욕구다. 응보적 정의는 규칙을 위반한 사람에게 그 잘못에 상응하는 처벌을 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하고 질서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처벌에 대한 입장은 여럿이 있다. 가령 위반에 대한 보복을 목적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고 유사한 범죄의 재발 방지를 위해 범죄자의 교화와 격리를 강조하는 입장도 있다. 또 범죄로부터의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반성과 화해 그리고 용서를 중시할 수도 있다.

처벌에 대한 이러한 다양한 입장을 고려할 때 이들 간에 이룰 수 있는 최선의 접점은 위반에 따라 응당 받아야 할 일정한 고통이나 처벌과 함께 반성과 사과 그리고 합의와 용서라는 또 다른 요소가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그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그 하나의 이유로 응보적 처벌과 용서 모두 인간의 본성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적 용서나 오직 보복을 목적으로 하는 처벌은 능사가 아닌 듯싶다.

이 사건과 관련해 최근엔 용서가 정치권의 도화선으로 떠올랐다. 이 문제의 핵심은 용서가 무너진 정의를 회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지 여부다. 그러기 위해선 용서 이전에 충족돼야 할 조건이 있다. 예를 들면 무엇을 용서할 것인지 그 과오의 내용을 분명히 해야 한다. 또 과오에 대한 합당한 처벌과 함께 그 당사자의 사과와 반성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돼야 피해자는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용서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부정이거나 묵인일 뿐이다. 용서는 오직 정의에 기반해서야 가능한 것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