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미래산업은 오른쪽 길, 규제는 왼쪽 길?

머니투데이 이하늘 기자 2017.04.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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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들은 오른쪽 길~♪ 사람들은 왼쪽 길~♪’. 30대 중반 이상이라면 한번쯤 들어본 동요다. 해외 대부분 국가는 차량과 보행자의 통행방향이 같다. 반면 한국은 2010년 7월 ‘우측보행’ 시행 전까지 차량과 보행자의 이동 방향이 각각 다른 규칙이 60년 이상 이어졌다.
1921년 조선총독부가 사람과 차량의 통행 방향을 좌측으로 결정했지만 미 군정 이후 우측통행을 차량에만 도입하고, 보행방향을 그대로 유지한 탓이다. 우측보행이 사고위험을 20%가량 줄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규칙이 바뀌었지만 오랜 관행을 바꾸는데 적지 않은 시간과 혼돈, 홍보예산을 들여야 했다.

최근 국내 경제와 산업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핀테크 등 새로운 산업이 등장,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일제 강점기 영향으로 대륙법의 포지티브 시스템에 기반한 한국의 법체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법률에 열거한 허용 조항만 합법으로 인정하는 포지티브 시스템에선 신기술이 나와도 법률 개정 없이는 이를 시행할 수 없다. 신기술을 도입하는 자체가 불법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한국 핀테크 산업의 태동이 늦어지고, 우버가 국내시장에서 철수한 이유다. 데이터가 생명인 AI 산업 역시 개인정보 보호 가운데 비식별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규제 개선 작업이 지연되면서 애를 먹고 있다. 신기술은 우측통행을 하는데 일부 법률이 좌측통행을 하면서 곳곳에서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이같은 문제를 풀기 위해 규제 목록만 정하고 나머지는 허용하는 영미법의 네거티브 시스템을 일부 신기술 분야에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하지만 몇몇 정책과 법률을 바꾸는 것만으로 이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히려 기존 법체계가 흔들려 혼란만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기자수첩]미래산업은 오른쪽 길, 규제는 왼쪽 길?


때마침 대선국면을 맞아 정치권에서는 ‘국가 시스템 개혁’이 화두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표 계산 탓인지 국민 관심과 다소 거리가 먼 헌법 개정에만 화두가 쏠린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 창의적 아이디어와 새로운 기술이 활약할 수 있는 법체계 환경 개선을 위한 고민과 논의가 정치권에서 먼저 진행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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