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에서 첫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된 것은 1967년 제3대 대선이다. 여당 후보로는 현직인 이승만 대통령이 나섰고 무소속 조봉암, 신민당 신익희 후보가 이에 맞섰다. 3대 대선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야가 맞붙은 대선으로도 평가된다. 민주당은 ‘못살겠다 갈아보자’며 정권교체를 외쳤고 여당인 자유당은 ‘구관이 명관이다’로 맞섰다. 그러나 신 후보가 선거유세 도중 급서하는 바람에 정권교체는 실현되지 못했다. 4대 대통령선거 역시 이승만 대통령이 ‘어부지리’로 승리를 거뒀다. ‘죽나 사나 결판내자’라는 결연한 슬로건을 걸고 출마한 조병옥 민주당 후보는 대선을 한달여 앞두고 신병치료차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때문에 이승만 대통령은 선거도 치르지 않고 당선이 확정됐다.
군사독재의 기나긴 터널을 지나 직선제가 다시 실시된 것은 1987년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6·29선언으로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다. 당시 대선의 시대정신은 ‘민주화’였다. 국민들은 군사정권 종식’을 염원했지만 대선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야권 성향의 김영삼, 김대중 후보가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표가 분산돼 결국 군부 출신의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2002년 9월 당시 대선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 민주당 후보, 정몽준 무소속 후보의 3파전이었다. 이회창 후보와 정몽준 후보가 1위자리를 놓고 경합하고 있었고 노무현 후보는 3위로 추격하던 상황이었다. 판세를 뒤집은 건 11월말 노무현-정몽준의 후보단일화였다. 노 후보는 정 후보의 지지층 상당부분을 흡수해 단일화 효과를 톡톡히 봤고 대선에 승리했다.
2007년 대선은 역대 대선 중 가장 싱겁게 승부가 갈렸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내세운 ‘실천하는 경제대통령’의 슬로건은 국민의 마음을 흔들었고 대선 당일까지 단 한 번의 역전을 허용하지 않은 채 48.7%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2012년 대선은 '박정희 vs 노무현'의 대리전 양상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근대화 향수와 함께 '퍼스트 레이디를 경험해본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점이 국민의 마음을 파고들어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