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주주는 주식 소유자 아닌 '명부'에 이름 올린 사람"

머니투데이 박보희 기자 2017.03.23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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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서 선임된 이사·감사…회사와 별도 계약 안해도 법적 지위 인정"

사진=대법원사진=대법원


다른 사람 명의로 주식을 인수했다면 실제 주주는 명의를 빌려준 사람일까 명의를 빌린 사람일까. 대법원은 '주주 명부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 주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주주총회를 통해 선임됐다면 회사 대표이사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이사와 감사가 됐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3일 신일산업 개인투자자인 황모씨가 신일산업을 상대로 낸 주주총회 결의 취소소송에서 "주주 명부에 이름을 올린 주주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주식을 사거나 양도받았다고 해도 주주로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회사가 주주 명부상 주주 외에 따로 주인이 존재하는지 알았거나 몰랐거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명부에 이름이 기제된 자의 주주권 행사를 거부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회사가 명부에 이름을 올린 사람을 거부하고 명부에 없는 사람을 주주로 인정하는 것은 상법상 주주명부 제도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회사가 누구를 주주로 인정할지 선택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불합리하다"고 설명했다.



황씨는 2014년 신일산업 정기주주총회는 무효라며 소송을 냈다. 당시 신일산업은 주주총회를 열고 이모씨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황씨는 "최대주주와 경영진이 주주총회 의사진행 권한을 남용해 파행적으로 진행했다"며 "결의 방법 등에 하자가 있어 총회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신일산업 측은 "황씨는 다른 주주에게 명의를 빌려준 형식상의 주주에 불과하다"며 "소송을 낼 자격이 없다"고 맞섰다.

1,2심 재판부는 신일산업의 손을 들어줬다. 황씨가 형식상의 주주에 불과해 소송을 낼 자격이 없다고 보고 각하 판결을 내렸다. 명의만 주주이지 실질적 주주가 아니기 때문에 소송을 낼 자격이 없다고본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주주에게 단순히 명의만 빌려준 자는 회사의 주주로 볼 수 없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주주총회 무효 등을 청구할 지위가 없다"며 "황씨를 실질적 주주가 아닌 형식상 주주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황씨는 회사 마음대로 진짜 주주인지 명의상의 주주인지 판단해 차별을 할수 있도록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항고했다. 황씨는 "회사가 실질주주인지 여부를 파악하는 것은 사실살 불가능하다"며 "회사의 인식 여부에 따라 주주마다 차별적 취급을 허용하면 회사에게 주주총회 결의 결과에 대한 자의적 선택권을 부여하는 셈이 된다. 이는 주주총회 운영의 법적 안정성을 훼손하는 것으로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2심 재판부 역시 황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회사 나름의 판단과 인식을 무조건 자의적으로 볼 수 없고, 주주는 소송을 해서 회사의 판단, 인식에 대해 다툴 수 있다"며 "형식적 주주에 불과한 자에게 주주총회 결의 효력을 다툴 지위를 주지 않는 것이 제3자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풍기 제조 업체로 유명한 신일산업은 지난 3년간 경영권 분쟁을 겪어왔다. 분쟁 과정에서 황씨와 현 경영진은 경영권을 놓고 줄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이날 황씨 측이 회사를 상대로 낸 이사 및 감사 지위 확인 소송 역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주주총회에서 선출된 감사나 이사의 지위는 선임 결의와 당사자의 승낙만 있으면 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대표이사의 권한에 이사나 감사의 선임 권한은 포함돼있지 않다"며 "주주총회 결의는 경영진을 교체하는 성격도 있는데 대표이사와 계약하지 않아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면 주주로서 효과적인 권한 행사를 할 수 없게된다"고 설명했다.



황씨 측은 2014년 주주총회를 열고 황씨를 감사로, 이모씨를 사내이사로 선임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회사는 "(황씨가 소집한) 주주총회는 불법집회"라며 "회사는 이들과 임용계약을 맺은 적이 없어 이사와 감사라 할 수 없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황씨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주주총회에서 결의된 이사와 감사를 회사 경영진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거부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결국 대표이사에게 이사 선임 거부권을 주는 셈"이라며 "이사 선임 최종 권한이 주주총회가 아니라 대표이사에게 있게 되는 것인데 이는 '이사와 감사는 주주총회에서 선임한다'는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부당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2심 재판부는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와 감사 선임 결의를 한 것은 유효하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임용계약을 체결하지는 않았으니 사내이사와 감사가 됐다고는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사와 감사의 선임에 관한 주주총회 결의는 회사 내부 결정에 불과해 결의가 있었더라도 바로 이사나 감사 지위를 취득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며 "주주총회 결과에 따라 회사의 대표 기관이 임용계약을 해야 이사나 감사 지위에 취임해 직무를 수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대법원 판결에 앞서 사내이사에 선임된 이모씨는 자진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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