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대통령의 그림자' 비서실장

머니투데이 구경민 이재원 ,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기자 2017.03.2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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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종합

부통령·킹메이커·왕실장…'명성날린' 역대 정권 비서실장은
그래픽=유정수 디자이너그래픽=유정수 디자이너


대통령 비서실장의 역사는 60년 가까이 된다. 최고 실세 권력을 누린 이들이 적잖다. ‘왕실장’으로 불린 이들이다. ‘호가호위’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반대로 존재감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인물들도 있다.

◇막강 권력 '이후력'-최장수 '김정렴'-'킹메이커' 김윤환 =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첫 비서실장은 김양천 전 경무대서장이다. 이기붕 전 부통령도 한때 비서실장을 맡아 '2인자'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 때 비서실 역할이 단순 비서·사무보조 역할에 국한돼 있어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는 윤보선 전 대통령 시절 임명된 이재항씨로 본다. 이 씨를 시작으로 현 정부의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포함하면 모두 39명. 이른바 ‘실세’ 비서실장이 등장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63년 12월이다. 민정 이양 약속을 깨고 대선에 출마해 당선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군 출신 이후락씨를 비서실장에 앉혔다. 이 실장은 6년간 자리를 지키며 박정희 정권의 실세로 자리잡았다. 대통령 최측근으로 장관 인사와 여당인 공화당 공천 과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사라진 직제였던 '부통령'이란 별칭까지 붙었다.



뒤를 이은 김정렴씨는 최장수 실장으로 기록된다. 9년2개월간 비서실장을 지냈다. 상공부 장관을 지낸 경제 전문가였던 그는 조용한 참모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유신시대에 맞는 경제·행정 비서였다는 평가도 있다. 퇴임 직후 "승지나 도승지는 말이 없는 법"이라고 측근에게 말한 뒤 외부 접촉을 끊은 것도 '묵묵한 보필'을 위해서였다. 뒤이은 김계원 비서실장, 최규하 정권 시절의 최광수‧김경원 비서실장은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5공화국 청와대 비서실장의 힘은 이전 정권에 비해 약했다. 5공화국의 실질적 설계자 허화평, 허삼수가 청와대 수석으로 국정전반에 막강한 힘을 행사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문민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군 출신이 아닌 이범석, 함병춘씨 등을 내세운 것도 한 요인이다. 5공화국말이던 1987년 6·29선언 이후 새 정부 출범 전까지 전두환 정권의 과도기 시절에 비서실장을 지낸 김윤환씨는 '킹 메이커'라는 별칭을 얻으면서 승승장구했다. 아호 허주(虛舟)로 불렸던 김 실장은 '김영삼 대통령'을 만든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노태우 정부의 첫 비서실장인 홍성철씨는 2년이라는 비교적 장기간 재임을 하면서 어느정도 개인적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평가다. 홍 비서실장 이후 임명된 노재봉 비서실장은 노태우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워 비서실장 9개월 만에 총리로 영전했다.

◇'DJ 영원한 비서실장' 박지원-유력 대권 주자로 뜬 '문재인' = 1993년 등장한 문민정부에선 4선 의원인 박관용씨가 첫 비서실장을 맡았다. 정치적 경륜을 토대로 2년 가까이 비서실장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훗날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때 국회의장을 맡기도 했다. 주미 대사 출신 한승수를 거쳐 김광일이 비서실장 바통을 이어 받았다.

최초의 평화적·수평적 정권 교체를 이룬 김대중 대통령은 초대 김중권 비서실장에 이어 한광옥, 이상주, 전윤철, 박지원 등 5명의 비서실장을 뒀다. 김중권 실장은 6공의 마지막 정무수석이었지만 동서화합과 국민통합의 카드로 발탁된 케이스로 이후 새천년민주당 대표까지 지냈다. 전윤철 비서실장은 재임기간이 2002년 1월29일부터 4월15일까지로 역대 최단명 기록을 갖고 있다. 김대중 정부 마지막 비서실장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리는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였다. 김대중정부에서 공보수석·정책기획수석·정책특보에 이어 비서실장까지 DJ 청와대에서만 4번째 직책을 맡았다. 박 대표는 이후락씨 이후 대표적 실세 비서실장으로 꼽힌다.


노무현 대통령은 문희상, 김우식, 이병완, 문재인 비서실장과 함께했다. 참여정부 시절 당청간 관계가 재정립되고 정책실장이 신설되면서 국정 2인자로서의 비서실장 이미지는 약화됐다는 평을 받는다. 가장 눈에 띄는 인사는 문재인 실장이다. 노 전 대통령의 변호사 동업자이자 인권변호사 동지였던 그는 2번의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정무특보를 거쳐 마지막 비서실장에 올랐다. 특히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친노(친노무현) 진영을 대표할 대선 주자로 급부상했고 현재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떠올랐다.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대선주자로 선출된 것은 문 실장이 처음이다.

◇MB 비서실장 대신 대통령실장 = 이명박 대통령 때는 류우익, 정정길, 임태희, 하금열 등 4명의 실장이 나왔다. MB정부는 '청와대 비서실장'을 '대통령실장'으로 명칭을 변경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했지만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MB시절 비서실장은 상대적으로 대통령 보좌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였다. 류우익 초대 대통령실장은 미국산 쇠고기 파동과 촛불집회로 불과 4개월 만에 물러났다.



뒤이은 정정길 실장도 이명박 정부의 중간선거 격이었던 2010년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뒤 물러났다. 임태희 실장은 '50대 젊은 청와대론'에 힘입어 비서실장에 임명됐고 고용부 장관까지 지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통상 비서실장 인선부터 시작하고 내각을 꾸리던 관례를 깨고 취임 1주일 전에서야 허태열 비서실장을 지명했다. 허 실장은 대통령의 여름휴가중 청와대를 지키고 있다가 경질되는 초유의 기록도 남겼다. 뒤를 이은 게 김기춘 비서실장이다. 김 실장은 '아버지 박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관계는 다양하지만…시대와 국가 뛰어넘은 막강 권력 '비서실장'



그래픽=유정수 디자이너그래픽=유정수 디자이너
#2008년 말, 스테니 호이어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은 비서실장 내정자인 램 이매뉴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이매뉴얼은 "저기, 전 바쁘니 대통령과 좀 통화하시죠?"라며 옆자리의 오바마 당선자에게 전화를 건넸다.

#2014년 어느 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대신은 각료 회의를 주관하던 중 일정 문제로 자리를 비우게 됐다. 자리를 뜨며 그는 자신의 비서실장 격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에게 이렇게 말한다 "관방장관, 각료회의를 부탁합니다".



명칭과 직제는 다르지만 어디에나 최고 권력자의 옆에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비서실장들이 있다. 최고권력자를 보필하는 만큼, 역할은 막중하다. 그에 비례해 큰 권력을 휘두른다. 그 방식과 최고권력자와 관계도 각양각색이다.

◇상호 보완적 관계, 미 대통령과 비서실장= 미 대통령실 수장이자 비서실의 수장인 백악관 비서실장은 백악관 보좌진들을 감독하고 통솔한다. 장관급으로 각료회의 참석 자격도 있다. 의회나 다른 부처의 장관들에게 대통령의 뜻을 전달하고 이들과 협상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갖는다.

이렇게 막강한 권력을 갖는 비서실장과 미 대통령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상호 보완적이다. 대표적인 예가 2008년 당선된 오바마 대통령의 첫 인사였던 램 이매뉴얼이다. 능력으로는 정평이 났지만 시카고트리뷴이 "자신의 평판에 대해서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싸움꾼"이라고 묘사할 정도로 거침없고 공격적인 성향이었기에 뜻밖의 인사라는 평가였다.



차분하고 온화한 이미지의 오바마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러나 오바마는 오히려 그의 공격적인 면과 강력한 추진력을 높게 샀다. 자신의 경험 부족을 보완하고, '유연한 리더십'으로 대변되는 자신과 균형을 맞출 강한 추진력을 가진 이를 기용한 것이다.

이런 상보적 관계는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이어진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13일 초대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라인스 프리버스 공화당 전국위원회 위원장을 낙점했다. 공화당에서 트럼프를 반대할 때부터 지지해왔다는 '충성심'도 반영됐지만 무엇보다 유한 성격으로 당 내 입지가 넓은 것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거칠고 공격적인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부족함을 채울 온화한 성격의 비서실장을 기용한 것이다.

비서실장들은 대통령의 든든한 방패가 되는 한편 거침없는 직언을 하는 조언자가 된다.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도널드 럼즈펠드는 비서실장의 역할에 대해 "대통령에게 '욕을 퍼붓는다'고 생각할 정도로 거리낌없이 말할 수 없거나 그럴 용기가 없다면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장관 중의 장관' 日 '관방장관'…개혁 주도하는 中 '중앙판공청 주임'= 의원내각제(내각책임제)인 일본은 대통령이 없으니, 대통령 비서실장도 없다. 대신 내각총리대신을 보좌하는 조직인 내각관방이 있고, 이를 통솔하는 관방장관이 비서실장 역할을 한다. 아베 내각에선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이를 맡고 있다.

관방장관의 기본적인 업무는 오전, 오후 두 차례 정례 기자회견이다. 정부의 '입' 역할을 하는 장관 중 한 명에 불과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장관 중의 장관'으로 불리며 강력한 권한을 행사한다. 주로 총리를 그림자처럼 보좌하며 내각이 결정한 사항을 행정 각 부가 제대로 시행하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내각을 대표해 국회와 의사소통하는 역할도 맡는다. 관방장관의 말은 곧 총리의 말이다.

그래서 관방장관은 총리가 되기 위한 필수 코스로 여겨지기도 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역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 시절인 2005년 10월부터 약 1년간 관방장관을 지냈다.



당이 국가를 이끄는 중국의 경우 국가주석의 비서실장 격으로 '당 중앙판 공청 주임'이 있다. 현재는 시 주석의 정치 입문때부터 옆을 지켰던 리잔수 주임이 맡고 있다. 직제상으로는 '허약'하기 그지없다. 명시된 공식 임무는 주석의 일정관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막강한 '문고리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시 주석의 일정과 만나는 이들을 조율하고, 각 부처의 현안을 종합해 보고하는 것 역시 그의 몫이다. 최근에는 1980년대 폐지된 당주석제 부활을 포함해 시 주석으로의 권력 집중 개혁안을 주도적으로 준비 할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시대에도 있었던 비서실장…결국 권력자 하기 나름= 왕이 통치했던 조선시대에도 비서실장이 있었다. 왕명 출납기구인 승정원의 우두머리인 '도승지'가 그것이다. 정3품 당상관으로 차관보급이었던 도승지는 때에 따라 국무총리급인 정승을 압도하기도 했다.



도승지는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승정원에서는 매일 국왕에게 보고할 문서들을 검토했는데 도승지는 신하들이 제출한 문서를 보류하거나 반려하는 식으로 권력을 행사했다.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문구를 조정해 보고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권력을 휘둘렀던 도승지로는 정조 때 홍국영이 있다.

이처럼 국가와 시대를 건너 제각기이지만, 대체로 비서실장에는 큰 권력이 위임된다. 그러나 이 권력이 최고권력자의 눈과 귀를 덮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예컨대 중국의 경우도 리 주임의 권한이 막강해지면서 시 주석과 참모들의 소통이 줄고, 시 주석의 대외안보 정책에서의 예측불가능성이 높아지는 등의 부작용이 관측된다는 후문이다.



이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권력자가 비서실장에 권력을 나눠줌과 동시에, 참모들과 적극 소통하는 것이 답이라는 조언이다. 참여정부에서 초대 비서실장을 역임한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고리 권력이 아무리 커진다고 해도 대통령이 (장관 등 참모들과) 적극 소통하기만 하면 비서실장이 그 권력을 휘두를 수 없다"며 "비서실장의 힘은 결국 대통령이 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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