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 or ‘항거’…어렵고 무거운 ‘보통사람’의 정의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7.03.1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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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무비] ‘보통사람’…권력 앞에 보통사람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기생’ or ‘항거’…어렵고 무거운 ‘보통사람’의 정의


“당신 뭐 하는 사람이야?”라고 물을 때 그냥 나오는 대답, “전 보통사람입니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보통사람’의 정의는 쉽게 인지됐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정의는 안개처럼 뿌옇게 다가올 뿐이다.

상식이 통하지 않을 때 본능적으로 대항하는 인간이 보통사람인가, 아니면 내 가족의 선을 지키기 위해 악으로 변질할 수밖에 없는, 소위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이 보통사람인가.



그것의 정의는 헌법재판소가 밝힌 상대적이고 추상적인 ‘성실’의 정의만큼 어렵고 헷갈린다.

이 영화는 보통사람의 정의를 밑바닥에서부터 끌어올려 정수리에 놓고 실험한다. 평화로울 때 보통사람은 눈에 띄지 않아 ‘보통’일 뿐이지만, 위태로울 때 보통사람은 환경에 따라 ‘특별’해진다.



강력계 형사 성진(손현주)과 신문사 기자 재진(김상호)은 권력의 입김이 닿지 않을 때만 해도 ‘보통사람’이었다. 친형제보다 더 가까운 이들은 그러나 안기부 실장 규남(장혁)이 끼어들면서 ‘보통’의 정의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단순 살인자를 연쇄범으로 몰고 가라는 규남의 공작을 두고 성진은 ‘국가를 위하는’ 일이라는 명목 앞에 아픈 아들의 수술까지 약속받는 은혜의 대가로 점점 특별해진다. “상식이 통하는 시대에 살고 싶은 보통사람”을 자처하는 재진은 그러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기 앞에서도 여전히 ‘상식’을 강조한다.

‘기생’ or ‘항거’…어렵고 무거운 ‘보통사람’의 정의
영화는 민주화 운동이 거셌던 1987년 전두환 정권 시절을 배경으로 삼았다. 직선제를 거부하고 기존 헌법을 고수하며 정권을 유지하려 했던 이 정권이 획책한 공작들은 국민의 분노를 일으켰지만, 권력과 직접적으로 얽힌 ‘보통사람’들은 곧바로 시험대에 올랐다.


‘왜 부정에 대항하지 못하느냐’고 상식을 묻는 건 쓸모없는 질문일지 모른다. 희생은 보통사람에게 크나큰 대가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의를 수호하려는 특별한 ‘보통사람’은 부정한 권력에 맞선다.

영화 속 규남은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최연소 사법고시 합격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권력의 실세로 등장한다. 3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에서 많이 거론된 우병우 전 민정수석비서관의 이미지와 겹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면초가에 놓인 규남은 6.29조치에 따라 직선제로 바뀐 민주화 분위기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세상이 바뀐 것 같지. 아니, 바뀐 척할 뿐이야.”

이 섬뜩한 말을 ‘상식’으로 믿는 권력자들은 보통사람들을 개나 소로 보는 인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촛불집회’를 열며 작은 힘을 보태는 특별한 보통사람들이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권력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보통사람들 옆에 작은 항거로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보통사람들이 서 있다. 이 엇갈린 ‘보통사람’의 정의는 여전히 어렵고 무겁다. 2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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