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R&D예산은 '쌈짓돈'…대학·부처 등 203억원 유용

머니투데이 세종=정혁수 기자 2017.03.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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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총리실 부패척결추진단, 대학·중앙부처 등 조사…167건 적발해 이중 21건에 대해 수사의뢰

#사례1. 수도권에 위치한 A대 산학협력단 B교수는 주변에 '능력있는' 교수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남들은 1년에 고작 한 건 하기도 급급한 정부 연구용역 수주를 2년새 12건이나 따내며 이를 입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능력 못지않게 부패도 심했다. B교수는 2013~2015년까지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연구원 25명의 인건비 통장을 직접 관리하며 이를 해외연수비용 및 개인카드 결제대금 등으로 유용하는 등 총 1억3062만원을 사적으로 사용했다.

#사례2. 2015년 4월 한 공공기관에서 발주한 '특수목적기계 등 개발' 프로젝트 수주를 놓고 관계자들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사업 예산이 총 229억원에 달하다 보니 경쟁열기는 대단했다. 심사 결과 과제 주관기관으로 C대학교 컨소시엄이 선정됐다. 하지만 경쟁에서 탈락한 민간기업 D연구원 컨소시엄은 이에 불복하고 발주기관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중앙부처에 청탁을 재평가를 요청했다. 결국 중앙부처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공공기관은 탈락한 D연구원을 C대학교 컨소시엄에 참여시켜 5년간 29억원의 예산을 집행했다.



정부의 국가연구개발(R&D) 사업이 허술하게 관리되면서 연구원들의 인건비 횡령, 유용은 물론 과제 선정을 둘러싼 부당한 압력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는 이를 근절하기 위해 '범부처 연구비 집행 통합 모니터링시스템' 구축을 서두르기로 했다.

국무총리실 부패척결추진단은 연구비를 당초 목적과 달리 부정하게 사용한 대학 산학협력단 등 총 167건(203억원 규모)의 위반사항을 적발해 이중 21건에 대해 수사의뢰하는 한편 해당 기관에 대해 관련자들의 문책을 요구했다고 7일 밝혔다.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실시된 이번 조사는 2016년10월~2017년 1월까지 국가R&D예산 5천억원 이상인 7개부처 34개 주요사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점검 결과 연구비 부정사용 등 총 167건의 위반사항이 적발됐으며 관련 예산규모는 203억원에 달했다. 적발 대상 기관을 살펴보면 대학 산학협력단이 77건(46.1%)으로 제일 많았고, 중앙부처·지자체·공공기관 47건(28.1%), 민간기업 43건(25.8%)으로 조사됐다.

대부분의 불법행위가 집행단계에서 이루어 진다는 조사결과도 흥미롭다.


실제 적발 건수를 진행단계별로 살펴보면, '집행단계'(연구원의 인건비 횡령·과다지급 등)의 부정행위가 144건(86.2%)이나 돼 비중이 제일 컸다. '정산단계'는 12건(7.2%), '사후관리 단계'(연구기관 보유기술 불법이전 등)는 6건(3.6%), '연구기획 및 과제·기관 선정단계'(부당한 압력행사 등)는 5건(3.0%)을 차지했다.

정부는 이같은 부정사례 근절을 위해 그동안 부처별로 각자 운영해 온 연구비관리시스템을 '범부처 연구비 집행 통합 모니터링시스템'으로 통합·관리할 계획이다.

올 연말까지 미래부, 교육부, 산업부, 중기청의 시스템을 우선 통합하고 내년까지 이를 복지부 등 12개 부처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 국세청과 협업해 연 1회 전자세금계산서 취소·변경 여부를 확인해 허위거래 등을 차단할 방침이다.

아울러 민간 수행기관이 일정금액 이상의 국가R&D 관련 물품을 구입할 때에도 부처 평가단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등 구매기준을 마련키로 했다.

백일현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은 "이번에 적발된 위반자들에 대해서는 소속기관의 문책과 향후 최대 5년간 연구과제에 참여를 제한하는 등 강력하게 대처해 나갈 계획"이라며 "정부는 앞으로 부처간 협업 시스템 구축 등을 통해 국가R&D사업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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