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담장' 못 넘는 회장님들의 '운동장론'

머니투데이 변휘 기자 2017.03.0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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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투자업계는 은행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하고 있다. 증권업계가 예금을 받겠다고 하지 않듯이 은행도 자산운용은 건드리지 말아라."(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은행은 축구장에서, 증권은 농구장에서 경기하라는 것이 전업주의다. 지금은 전업주의가 아니라 농구, 축구, 배구를 함께하는 종합운동장 격인 겸업주의 도입이 절실하다."(하영구 은행연합회장)



최근 '운동장론'으로 설전을 펼친 황 회장과 하 회장은 닮은 점이 많다. 서울대 무역학과 1년 선후배인데다 금융권에서 흔치 않은 '스타 CEO(최고경영자)'들이다. 황 회장이 삼성그룹 금융 계열사 2곳과 우리금융, KB금융 등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CEO를 지냈고, 하 회장은 옛 한미은행장으로 출발해 한국씨티은행장을 역임했다.

'야인(野人)'이던 두 사람의 현업 복귀 무대 역시 금융 관련 협회장이었다. 황 회장과 하 회장 모두 강한 카리스마와 대내외를 가리지 않는 거침없는 언변을 자랑해 온 탓에 각 업권에선 "업계 이익을 대변하는데 최적의 인물들"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설전을 바라보는 제3자들은 "아쉽다"는 반응이다. 증권의 법인지급결제 허용, 은행의 불특정금전신탁 허용은 '해묵은' 과제인 동시에 금융시장 근간을 흔드는 내용이다.

시야를 넓혀봐도 증권·은행 업무 논란은 어느 한쪽이 대세로 자리 잡지 못했다. 미국도 금융위기 후 은행 대형화를 제한하는 '볼커룰'을 도입했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겸업화를 곁눈질 중이다. 우리 당국 역시 쉬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글로벌 시장 진출을 통한 '파이 키우기'가 시급한 가운데 이번 설전은 서로의 '밥그릇 뺏기'에 지나지 않는다. 금투협 회원사의 해외법인·지점·사무소 갯수는 2013년 말 108곳에서 작년 58개로 줄었고, 은행권 역시 조금씩 해외 영업망을 늘리고 있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기자수첩]'담장' 못 넘는 회장님들의 '운동장론'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황 회장과 하 회장에 대한 기대가 업계는 물론 당국에서도 컸는데, 이번 다툼은 두 분의 '그릇'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운동장이 얼마나 기울었는지, 얼마나 넓은지를 얘기하기보다 담장 너머를 바라보는 두 협회장의 혜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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