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7일 이임한 하창우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사진=뉴스1
하창우 전 변협 협회장 명의로 2월 15일 발표된 성명서 중 일부
그렇다면 하 전 협회장이 자신의 임기 마지막 달에 유별스레 '열심히' 일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보통의 기관장들은 임기 마지막달에는 인수인계에 집중하며 조용히 보낸다. 그런데 하 전 협회장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외에 변협 입장을 밝히는 '성명서'를 더 자주 내며 목소리를 더 높였다.
하창우 전 집행부가 2월에 낸 14건 중 6건은 보도자료, 8건은 성명서였다. 이중 행사안내·설문결과 등을 담은 보도자료를 제외하고 '의견과 주장'을 주로 담은 8건의 성명서가 문제다. 여기에 하창우 전 변협 집행부의 성격과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매달 1~3건씩 내던 성명서가 마지막달에 8건으로 3배 가까이 늘기도 했다.
눈에 띄는 성명서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를 반대한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변호사 개업신고를 철회하라', '교육부 법학전문대학원 결원보충제를 즉각 폐지하라' 등이다.
국회 법사위 고위 공수처 공청회 진술인
자유한국당·바른정당 등 범여권은 반대하는 사안이다. 법사위 공청회에서도 여권이 부른 진술인들은 모두 반대하는 취지로 진술했다. 때문에 야당 법사위 관련자들 사이에선 변협이 굳이 공청회 이틀전에 반대 성명을 발표한 것은 의도가 불순한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여야가 명백히 의견이 갈리는 정치적 사안에 대해 변협이 문제가 될 만한 의견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2월 테러방지법으로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할 때에도 하창우 변협 집행부는 '전부 찬성'의견을 내 논란을 자초했다. 게다가 당시 하 전 협회장을 중심으로 한 일부 집행부가 전체 회원은 물론이고 집행부 구성원 의견도 묻지 않고 법안검토 의견을 일반적으로 결정하는 절차도 생략한 것이 드러나 협회장 사퇴요구까지 나왔었다.
이번 공수처 반대 성명서는 변호사사회에서 크게 거론되지 않고 그대로 묻혔다. 하지만 그 내용과 시기로 볼 때 테러방지법 사태의 데자뷰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테러방지법 사태에서 이미 큰 홍역을 치렀던 하 전 협회장 집행부는 공수처 반대 성명서가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될 것을 우려했던 것을 성명서 내용에 스스로 드러냈다. 성명서 첫머리에 2014년 2월 위철환 전 협회장 시절 상설특검 도입에 찬성 의견을 냈던 보도자료까지 언급하며 공수처 반대가 이전 집행부에서부터 이어진 의견이라고 주장했다.
변협은 2년마다 선거를 통해 집행부가 바뀌면 전 집행부와 사실상 '단절'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성격이 확 바뀐다. 그럼에도 하창우 전 집행부가 굳이 위철환 전 집행부 시절 보도자료까지 언급한 것은 '공수처 반대'에 대해 혹시라도 나올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구구절절 '공수처 반대' 근거가 과거 집행부에서 이어온 것임을 강조하고 오랜 연구결과임을 여러 번 밝힌 것 자체가 하창우 전 집행부의 '의도'가 읽히는 대목이다.
이임식을 겨우 10여일 앞둔 협회장이 굳이 정치적으로 여야가 대립하는 '공수처 설치'에 대해 변호사 전체를 대표하는 변협 명의로 의견을 밝혀야 했나는 생각해볼만하다. 국회 법사위나 정치권에서 변협에 의견을 물은 것도 아니었다.
테러방지법 사태처럼 논란이 커지지 않았지만 변호사들 사이에선 '황당하다', '생뚱맞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과연 하창우 전 집행부가 임기 마지막달 열심히 성명서를 낸 게 변호사 사회 전체를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었는지에 대한 평가는 2만여 변호사회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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