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뀌면 휴지통으로"…'비전 2030'은 어떻게 잊혀졌나

머니투데이 세종=정현수 기자 2017.02.27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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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절벽을 넘어라]<7>-②수십명의 전문가 동원해 미래전략 만들어도 정권 교체되면 무용지물

안희정 충남지사는 지난 7일 한 시민단체가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노무현 정부의 비전 2030을 계승해 복지국가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당수 사람들에게 '비전 2030'은 다소 낯선 개념이다. 공직사회 내부에서도 잊혀진 지 오래다.

'비전 2030' 작성에 관여했던 한 고위공직자는 "공직사회의 에이스들이 대거 참여한 훌륭한 보고서였지만,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정부와 민간이 함께 작성한 최초의 국가 장기종합전략 보고서"라며 기대를 모았던 '비전 2030'은 어떻게 생명력을 잃게 됐을까.



노무현 정부는 2005년 6월 '비전 2030'이라는 이름을 꺼내 든다.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된 저출산·고령화와 저성장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당시에도 5~10년을 내다보는 중기대책들은 있었지만 장기대책을 만드는 시도는 없었다.

상황은 절박했다. 2000년 1.467명이었던 합계출산율은 이후 급감했다. 2005년 합계출산율은 1.08명으로 역대 최저까지 떨어졌다. 2003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합계출산율이 1.6명이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적게 낳는 나라가 됐다.



6~8%대에 이르던 성장률 역시 1990년대 중반 이후 하향세를 보였다. 2000년대에는 4% 중반까지 내려갔다. 정부 내부적으로는 위기감이 감돌았다고 한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선진국으로 가지 못한다는 위기감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7월 60여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민간작업단을 띄운다. 민간작업단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등 대다수 국책연구기관의 박사들과 서울대, 연세대, 서울대 등의 대학교수 등이 참여했다.

민간작업단은 비전총괄팀, 성장동력팀, 인적자원팀, 사회복지팀 등 총 7개팀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60여차례의 토론회와 5차례의 세미나를 개최해 의견을 수렴했다. 각 부처의 핵심 관료들이 여기에 가담한다.


그리고 2006년 8월 말 정부·민간 합동작업단은 '함께가는 희망한국 비전 2030'이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발표한다. 당시 보고서의 서문에는 "비전2030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전략적 사고를 토대로 만든 대한민국 희망지도"라고 나와 있다.

보고서에는 정년조정과 학제개편, 건강보험 개혁, 보육서비스 확대, 국방개혁 등 50대 핵심과제가 담겼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육아비용의 부모 부담률을 절반으로 줄이고, 국가경쟁력을 10위로 끌어올린다는 '장밋빛 계획' 밝혔다.

하지만 분위기는 냉담했다. 보고서가 발표되자마자 증세 없이 불가능한 '세금폭탄'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후 각종 논의가 이어졌지만, 시간은 계속 무의미하게 흘렀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로 넘어가면서 '비전 2030'은 그대로 묻혔다.

정부 관계자는 "정권이 바뀌면 이전 정권의 핵심 정책들이 힘을 잃는 게 사실"이라며 "저출산 문제처럼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해야 하는 정책 역시 같은 길을 걷는 건 되짚어볼 만한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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