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자는 자신을 “난생의 벌레인 나”로 비하한다. 대부분 시에서 자기비하는 반전을 위한 진술 전략이다. 화자 스스로 “한 마리의 벌레인 나”는 등을 웅크리고 산 아버지나 애인을 기억하는 존재다. 화자의 사유와 언어도 등을 웅크린 소외된 자아와 닮았다. 이 벌레에 불과한 소외된 자아는 “먹물을 쏟아내어 울음을 그”리며 ‘지하’로 침잠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다른 시 ‘수월관음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려 시대의 불화를 형상한 것이다.
이렇듯 표현이 아름답다. 이 그림은 화엄경 설화에 근거한 것으로 구도의 뜻을 품은 선재동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떠난 여행지인 보타낙가산을 방문해서 관음보살을 대면하고 불법을 듣는 장면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고려 충선왕 왕비였던 숙비(淑妃)가 8명의 궁정화가를 동원해 1310년 5월에 완성한 공동작품이다. 지금은 일본 신사에서 소장하고 있는데, 고려의 왕실에서 제작돼 1391년 일본 승려 료우켄(養賢)이 가가미신사에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1965년 칠곡에서 태어난 이인주 시인은 2003년 불교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평사리 문학 대상 등 여러 개의 상을 받았다. 현재 대구 정화여고에 재직 중이다. 시인은 그림이나 그림 기법, 또는 그림 양식을 아름다운 시로 형상한다. 그림과 시가 어우러진 그의 시들에는 흰 화선지에 먹물 스며들 듯 불교 흔적이 곳곳이 묻어있다. 이인주 시인만이 갖는 개성, 그것도 동양화와 관계 맺는 독특한 창작의 세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