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 벌레인 나, 앉은뱅이 풀과 내통했다

머니투데이 공광규 시인 2017.02.1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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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이인주 시인 ‘초충도’

[시인의 집] 벌레인 나, 앉은뱅이 풀과 내통했다


꽃과 새를 그린 것을 화조도(花鳥圖)라 하고, 꽃과 풀을 그린 것을 화훼도(花卉圖)라고 한다. 또 깃과 털이 달린 짐승을 그린 것은 영모도(翎毛圖)이다. 당연히 풀과 벌레를 그린 것을 초충도(草蟲圖)라고 한다. ‘초충도’는 조선시대 신사임당이 가장 유명하다. 요즘 나는 TV 드라마 ‘신사임당’에 빠져있다.

화자는 자신을 “난생의 벌레인 나”로 비하한다. 대부분 시에서 자기비하는 반전을 위한 진술 전략이다. 화자 스스로 “한 마리의 벌레인 나”는 등을 웅크리고 산 아버지나 애인을 기억하는 존재다. 화자의 사유와 언어도 등을 웅크린 소외된 자아와 닮았다. 이 벌레에 불과한 소외된 자아는 “먹물을 쏟아내어 울음을 그”리며 ‘지하’로 침잠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다른 시 ‘수월관음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려 시대의 불화를 형상한 것이다.



“얼핏 낯익은 듯도 한 버들가지 손, 주름진 연꽃 맨발로 피운 여인의 옷자락을 만진다. 주르르 마엽무늬 물처럼 흘러내린다. 베일에 감싸인 시간의 속살 아늘아늘 헤엄치자면 무량겁은 걸리겠다. 선연히 부딪친 눈빛이 정병에 화들짝 꽂힌다.”(‘수월관음도’ 부분)

이렇듯 표현이 아름답다. 이 그림은 화엄경 설화에 근거한 것으로 구도의 뜻을 품은 선재동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떠난 여행지인 보타낙가산을 방문해서 관음보살을 대면하고 불법을 듣는 장면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고려 충선왕 왕비였던 숙비(淑妃)가 8명의 궁정화가를 동원해 1310년 5월에 완성한 공동작품이다. 지금은 일본 신사에서 소장하고 있는데, 고려의 왕실에서 제작돼 1391년 일본 승려 료우켄(養賢)이 가가미신사에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수월관음도는 고난의 세계에서 안락한 세계로 중생을 이끌어 준다는 자비를 상징하는 관세음보살이 신비하고 은은한 달빛을 배경으로 앉아있는 그림이다. 화자는 깨끗한 몸과 화려한 의상이 인상적인 그림 속의 인물이 “낯익은 듯도 한 버들가지 손”을 가졌거나 옷자락이 “주르르 마엽무늬 물처럼 흘러내린다”고 묘사한다.

1965년 칠곡에서 태어난 이인주 시인은 2003년 불교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평사리 문학 대상 등 여러 개의 상을 받았다. 현재 대구 정화여고에 재직 중이다. 시인은 그림이나 그림 기법, 또는 그림 양식을 아름다운 시로 형상한다. 그림과 시가 어우러진 그의 시들에는 흰 화선지에 먹물 스며들 듯 불교 흔적이 곳곳이 묻어있다. 이인주 시인만이 갖는 개성, 그것도 동양화와 관계 맺는 독특한 창작의 세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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