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지난 22일 88세를 일기로 별세한 '출판계 거목' 故 박맹호 민음사 회장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1966년 서울 청진동 옥탑방을 시작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출판계를 이끌어온 출판 1세대인 고인은 5000종이 넘는 책을 출판하며 한국 출판계의 산 증인으로 불렸다. 2017.01.23.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지난 50여년 문단과 재계, 문화계, 대중문화계를 아울렀다고 할만한 이같은 인맥 모두를 관통하는 인물이 있다. 지난 22일 타계한 출판계의 거목 박맹호 민음사 회장이다. 1966년부터 출판업을 시작한 이래로 그는 늘 한결같았던 문단과 학술계의 ‘큰바위 얼굴’같은 존재였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잘 팔릴 책’보다 ‘세상에 필요한 책’을 내는 데 누구보다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척박하기 그지 없었던 80년대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서적의 부재를 아쉬워하며 대우학술총서를 맡아서 냈다. 당시 세계를 호령하던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학술.출판 지원 의지에서 잉태됐지만 총서 발간을 도맡는 것은 박맹호 회장과 민음사 인력들이었다. 1983년부터 16년까지 발간된 '대우학술총서'를 통해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과 들뢰즈·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 등 400여권의 책을 출간했다.
지방지 신문기자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 3회 ‘오늘의 작가상’에 가작 후보로 거론될 때 본상 수상을 주장한 것도 박 회장이었다. 신진작가 이문열에게 한글세대 독자들에게 맞는 문체와 서사를 갖춘 ‘삼국지’집필과 신문연재를 권유한 것도 그였다.
1974년 기획된 '오늘의 시인총서'를 통해서는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 김춘수의 '처용' 등을 내 거장의 반열로 끌어올렸다. ‘김수영전집’, ‘정지용전집’ 등이 나오게 된데도 박 회장과 민음사의 노력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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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76년 가을 창간된 계간 문예지 ‘세계의 문학’을 통해서는 30대의 소장평론가이던 김우창 유종호 등이 10년 가까이 책임편집을 맡았고 이후 문학평론가 이남호 우찬제 이광호 권성우 류철균(필명 이인화) 등도 가세했다.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도 빼놓을 수 없다. 박 회장은 평소 즐겨들어왔던 이미자, 하춘화, 남진, 나훈아와 같은 국민가수들에 대한 자료 정리가 부족하다며 대중문화평론가에게 이같은 작업을 주문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최근에는 박 회장의 손녀가 공중파의 오디션 프로에 나와 가창력을 뽐내기도 했다. 박 회장의 손녀는 제작자 유희열의 그룹 토이 객원싱어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학업과의 병행을 이유로 다른 연예제작사(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맺고 활동 중이다.
박 회장은 출판계의 변방에 있던 공상과학(SF)과 판타지 문학 등에도 관심을 기울여 자회사 '황금가지' 브랜드를 통해 '이갈리아의 딸들'로 시작해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 등을 펴냈다. 어린이도서 전문브랜드 비룡소를 통해서는 존 버닝햄, 앤서니 브라운 등의 여러 책을 발간했다.
23일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와 유종호 연세대 전 석좌교수,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박 회장의 문우이자 고향 친구이기도 한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등이 문상했고 출판계와 문화계 인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고은 시인은 “한국 출판계에서 낡은 사고에 머물지 않고 늘 새로운 것을 추구했던 이례적인 존재”라고 박 회장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소설가 이문열 성석제, 평론가 김병익 정과리, 시인 정현종 신달자씨도 빈소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