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은의 폴리티션!]반기문 그리고 '대선 방정식'

머니투데이 김태은 기자 2017.01.1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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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대망론' 허물어트린 두 가지 패착

[김태은의 폴리티션!]반기문 그리고 '대선 방정식'


귀국한 지 1주일. '대망(待望)'은 '대망(大亡)'이 될 위기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권 행보를 둘러싼 ‘구설수’는 논외로 치자. 이보다 정치권 내 ‘반기문 대망론’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게 위기 요인이다.

반 전 총장에 목을 맬 줄 알았던 ‘보수신당’ 바른정당은 ‘저울질’을 시작했다. 반 전 총장 측의 지분 요구를 받아들여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이다. 바꿔 말하면 '와주시기만 하면 감사합니다'가 아니라는 뜻이다.



바른정당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안철수 사당'을 거부하고 '반기문 텐트'를 펼치는 듯 했던 국민의당의 기온도 달라졌다. "우리와 정체성이 맞지 않다"는 말이 거침없이 나온다. '불임 정당’ 위기에 빠진 새누리당조차 ‘여차하면 황교안’이라며 배짱을 부린다. 1주일 전만 해도 ‘반기문’ 중심의 빅텐트였는데 이젠 반 전 총장이 텐트를 찾아 헤매야 할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기대에 못 미치는 ‘반풍(潘風)’을 접한 정치권의 약삭빠른 행동에 불과하다고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 반 전 총장과 기존 정치권 인사들의 ‘대선 방정식’이 다른 게 핵심이다. 70대의 반 전 총장과 그의 외교관 측근 그룹에겐 이번 대선이 단판 승부의 일차 방정식이다. 반면 정치권 인사들에게 대선은 고차 방정식이다. 내년 지방선거, 2020년 국회의원 선거, 개헌까지 고려하면서 풀어야 하는 복집하고 난해한 문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9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아 현충탑에서 참배를 마치고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2017.1.19/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9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아 현충탑에서 참배를 마치고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2017.1.19/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반 전 총장의 대선 승리가 확실하면 고차방정식의 문제 풀이도 쉽다. 그가 대통령이 안 되더라도 확고한 지지 기반을 갖고 있다면 그를 구심점으로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대선 이후 정치권 인사의 미래를 누가, 어떻게, 무엇으로 담보해 줄 수 있을까. 반 전 총장이 보수 진영의 집권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이른바 보수정당의 선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새누리당은 약 10%의 지지율을 토대로 국회 의석을 건질 가능성이 있고 바른정당도 수도권, 영남 등에서 야당 포지션을 취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괜히 ‘낙동강 오리알’이 되기보다 새누리당이나 바른정당에 붙어 있는 게 나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보수진영 인사들의 고차방정식 접근법이 이렇다.

반 전 총장이 인물 경쟁력만 믿고 독자세력화 후 통합의 수순을 택한 게 ‘실책’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탄핵정국에서 치러지는 이번 대선은 인물 선거가 아니라 구도 선거라는 점을 보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실제 인물이 구도를 뛰어넘지 못하는 환경 탓에 반 전 총장의 통합 행보는 어설퍼 보인다. 윤태곤 의제와전략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박근혜 반대’, ‘정권교체’ 슬로건도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든 판국”이라며 “시작부터 ‘비박비문’식으로 ‘여집합의 합집합’을 꾀하는 것 자체가 극히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제3지대 빅텐트'의 지역 버전인 충청과 호남의 '뉴 DJP연합' 구상은 호남에서 거부당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한 국민의당에선 최근 "반기문과 손잡으면 호남이 문재인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국민의당이 반 전 총장에게 쉽사리 손을 내밀 수 없게 된 것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가 반 전 총장을 향해 "실패한 정권 사람들과 함께 박근혜 정권의 뒤를 이어가려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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