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주요내용]문재인 "潘, 기득권 특권 누리며 마른자리만 다녀"

머니투데이 최경민 기자 2017.01.16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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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17일 대담형식 신간 출간 예정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5일 여수 수산시장 화재현장을 방문해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측 제공) 2017.1.15/뉴스1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5일 여수 수산시장 화재현장을 방문해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측 제공) 2017.1.15/뉴스1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책 <대한민국이 묻는다 - 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가 17일 출간된다. 문단의 중견작가인 소설가 문형렬씨가 문 전 대표와 오랜 기간 진행한 인터뷰를 대담형식으로 구성했다.

문 전 대표의 국가비전을 밝힌 책으로 정치를 하면서 느꼈던 소회, 정치역정에서의 비사, '최순실 게이트' 전후로 벌어진 한국사회에 대한 진단, 국가 대개조에 대한 향후 비전 등이 담겼다.



일부 공개된 책 내용을 보면 문 전 대표는 대권 경쟁자인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을 겨냥해 "기득권층의 특권을 누려왔던 분"이라며 "마른자리만 딛고 다닌 사람은 국민의 슬픔과 고통이 무엇인지 느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또 박사모,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에 대해서는 "거의가 편 가르기를 하는 정치에 자신도 모르게 동원된 것이다. 편 가르기 정치가 없어지면 극단적 대결도 해소될 수 있다"며 통합의 정치를 언급했다.



다음은 출판사측이 공개한 문 전 대표의 신간 일부 내용.

● 본문 중에서

-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아버지가 왜 그러셨는지 비로소 이해가 됐다거나, 아버지의 모습이 더 잘 보였다거나, 그런 일이 있다면?
▷대학 다니던 중 구속되고 제적까지 됐죠. 구속돼 있는 동안 아버지는 면회를 한 번도 안 오셨어요. 나는 그것이 아버지가 말씀은 하지 않으셔도 저를 나무라는 것이라고, 또는 저를 원망하는 것이라고 느꼈어요. 옳은 일이라도 가족을 생각한다면 그럴 수는 없다고, 마음으로 용서하시지 않은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감옥을 나오고 난 다음 아버지가 저에게 꾸짖는 말씀도 하시지 않는 겁니다. 아버지는 그때 그 상황이 그냥 아프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를 원망하거나 나무라는 심정을 가졌던 게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 제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을까 그렇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아버지의 그런 마음을 알아선지, 제가 부모가 되고 나니 자식이 잘못해도 나무라거나 그러지 않게 됩니다.(23~24쪽)

- 남북 평화통일이 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옛날엔 통일 되면 흥남에 가서 변호사를 해야지, 했습니다. 통일은 결국 자본주의 체제로의 통일이 될 텐데, 북한 사람들은 자본주의에 훈련이 되지 않았으니 상당히 순진할 수밖에 없고 어려운 일을 많이 당할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흥남에서 무료 변호 상담, 무료 변론을 하면서 거기서 생을 마쳐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었지요.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평화통일이 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아흔이신 어머니를 모시고 어머니 고향을 찾는 것입니다. 제 친가 쪽은 할아버지 여섯 형제의 자식들이 피난을 왔지만 외가 쪽은 어머니 한 분만 내려오셨어요. 우리 외가는 성천강(城川江)을 가로지르는 만세교(萬歲橋)로 연결돼 있는데, 그 만세교를 유엔군이 철수하면서 차단했어요. 그래서 성천강 이북 사람들은 피난을 오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빼고 우리 외가분들은 아무도 못 내려왔기 때문에 외가의 뿌리를 찾아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개마고원 트레킹을 해보고 싶습니다. (29~30쪽)

-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상식과 정의 아니겠습니까? 국가를 위해 헌신하면 보상받고, 국가 반역자라면 언제든 심판받는 국가의 정직성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성실하게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 이런 상식이 기초가 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럴 수 있는 기회를 두 번 정도 놓쳤다고 생각해요. 한 번이 해방 때였죠. 해방 때 친일 역사가 제대로 청산되고, 독립운동을 한 사람과 유족들에게 제대로 포상하고 그 정신을 기렸어야 사회정의가 바로 서는 것이었죠.

친일세력이 해방되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떵떵거리고, 독재 군부세력과 안보를 빙자한 사이비 보수세력은 민주화 이후에도 우리 사회를 계속 지배해나가고, 그때그때 화장만 바꾸는 겁니다. 친일에서 반공으로 또는 산업화 세력으로, 지역주의를 이용한 보수라는 이름으로. 이것이 정말로 위선적인 허위의 세력들이거든요.

또 한 번의 기회를 놓친 건 1987년 6월항쟁 땝니다. 이후에 곧바로 민주정부가 들어섰다면 그때까지의 독재나 그에 부역했던 집단들을 제대로 심판하고 군부정권에 저항해 민주화를 위해서 노력했던 사람들에게 명예회복이나 보상을 해줬을 것이고, 상식적이고 건강한 나라가 됐을 겁니다. 하지만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회를 또 놓쳤죠. 제가 지난번에 국민성장을 비전으로 제시하면서 부패 대청소라는 표현을 썼지 않습니까? 부패 대청소를 하고 그다음에 경제교체, 시대교체, 과거의 낡은 질서나 체제, 세력에 대한 역사교체를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법적, 제도적으로 근본적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고요. (67~68쪽)

- 남쪽에 적응하기 위해 그래도 모든 아버지, 어머니처럼 애쓰셨겠지요.
▷아버지가 다닌 장소들이 어딘지 다 알지는 못하지만 여수, 순천, 목포 쪽을 많이 다니셨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여수, 순천, 목포 하면 아련한 그리움 같은 게 있지요. 그래서 지금도 그쪽에 가면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지만 아버지 발길이 닿았던 곳이라는 감회가 느껴집니다. 그 시절에는 부산에서 여수나 목포로 가는 육로가 너무나 멀었습니다. 거의 비포장도로였고요. 그래서 아버지는 부산에서 통영, 거제, 남해, 여수, 이렇게 해서 목포로 가는 뱃길로 많이 다니셨습니다. 지금은 금방 육로로 갈 수 있는데 저는 땅길이 좋아지고 나서도 그쪽으로 여행할 때는 일부러 여객선을 더 많이 탔어요. 아버지 발자취를 따라가듯이 그랬죠.(80쪽)

- 세월호 참사 이후 광화문광장에서 단식도 했죠. 어떤 심정이었습니까?
▷박근혜 게이트는 제2의 세월호 대참사입니다. (중략) 세월호 유가족들이 청운동주민센터 네거리 한귀퉁이 노천에서 여러 달 동안 장기 농성을 했는데, 청와대에서 단 한 사람도 나와보지 않았습니다. 경악할 일이죠. 참여정부 때도 청와대 앞에서 농성이 있었습니다. 지율 스님이 하셨던 농성이 가장 유명했지요. 저는 누가 농성을 하든 퇴근할 때마다 거기 들렀습니다. 그분들 주장에 동조하든 동조하지 않든 말입니다. 그냥 그렇게 고생하고 있다는 데 대해 위로하고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그랬죠. 그런데 하물며, 그 생살 같은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이 청와대 앞에 와서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만나게 해달라고 농성을 하는데 어떻게 한 사람도 나와 보지 않고 한마디 위로도 하지 않습니까? 오히려 유가족들을 적대시하고 관변단체들 동원해 유족들을 공격하게 했지요. 국가의 이런 몰염치와 부도덕을 저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광화문광장에 나가 단식을 하게 됐던 겁니다. (90쪽)

- 페스카마 15호 변론을 맡았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원양어선 페스카마 호 살인사건에 저는 소설가로서 관심이 많았습니다.(페스카마 15호는 1978년 일본 조선소에서 건조된 배로 25명이 타는 254톤급 참치잡이 배였다. 1996년 8월 2일 조선족 선원 6명이 참치잡이 항해 중 한국인 선원 7명, 인도네시아 선원 3명, 조선족 선원 1명을 살해한 비극적 사건이 그 배에서 일어났다.)

▷그 사건은 1심에 변호인 선임 없이 국선변호인으로 진행됐는데 다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재판 과정에 피고인 가족들 방청이 안 돼 한 사람도 와보지 못하고 제대로 된 변호 한번 받지 못한 채 전부 사형선고를 받았어요. (중략) 그렇게 무료변론을 했는데, 주범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뒤에 주범도 무기징역으로 특별감형을 받게 됩니다. 제가 재판 중에 그 가족들을 한국에 초청했어요. 항소심에서야 비로소 가족들이 한국에 와서 방청을 했지요. 무료변론을 해주고 그 가족들도 재판을 방청하면서 조선족 사회도 마음이 좀 풀렸고 《길림신문》과 《요녕신문》에서도 고마워했습니다. 나중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결과에 대해서도 ‘중국이었다면 아무리 딱한 사정이 있다 해도 무조건 사형이었을 것이고 이미 집행도 다 되었을 것이다’라고 보도를 했죠. 그때 부산에서는 그들을 돕는 모임도 만들어져서 면회도 가고 영치금도 넣어주고 그랬습니다.(101~104쪽)

 15일 오후전남 여수 수산시장 화재 피해복구 대책본부를 찾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화재 발생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은 후 상인들의 조속한 영업 재개 방안을 주문하고 있다.2017.1.15/뉴스1  15일 오후전남 여수 수산시장 화재 피해복구 대책본부를 찾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화재 발생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은 후 상인들의 조속한 영업 재개 방안을 주문하고 있다.2017.1.15/뉴스1
- 정계에 입문하면서 만났던 김대중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김근태 의원에 대한 남모르는 기억이 많을 것 같은데요.

▷김대중 대통령은 <사상계>라는 잡지를 통해 처음 만났습니다. 1960년대 당시 노동문제연구소 소장으로서 노동문제에 관한 글을 쓰셨죠. 그 시기에 노동문제에 관해 지금의 ‘노동삼권 보장’ 같은 시각을 지녔다는 건 정말 보기 드문 일이었습니다. 굉장히 진보적이었고 지금의 노사정위원회, 노사정 대타협에 대한 개념도 이미 그때부터 갖고 계셨어요. 아마 대통령이 되신 뒤에 만든 노사정위원회도 그때부터 다듬어온 결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여러 번 뵙고 말씀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제가 이 시대에 만난 정치인 중 가장 진보적인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진보정당 분들도 있지만 그분들은 현실에 뿌리내리지 않은 관념적인 진보인 경우가 많은데, 김대중 대통령은 현실에 뿌리내린 가장 진보적인 정치인이셨죠. 우리 시대의 정치지형이 그분을 따라가지 못해 자신의 이상을 다 실천하거나 구현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 말씀을 듣다 보면, 그분은 정치가이기 전에 사상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이런 부분입니다. 우리 역사의 어떤 시기에 서양은, 중국은, 일본은 어떤 상황이었고 어땠는지 연대기적으로 쭉 관통하는 거예요. 보통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기 힘든데 말이죠. 예를 들어 다산 선생이 활동하던 시기에 유럽과 중국 등 외국의 사회적 분위기는 어땠는지 전부 꿰뚫어 말씀하십니다. 그 이야기의 도도함에 늘 감탄하곤 했죠.

김영삼 대통령도 여러 번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3당 합당 전, 민주화운동을 이끌고 특히 영남지역에서는 상징적인 분이었죠. 그분은 늘 경청하는 분이었습니다. 제게는 개인적으로 같은 거제 동향 선배기도 하고, 경남중고등학교 선배기도 합니다. 저보다 22년 선배시죠. 처음 만났을 때가 야당 총재였을 땐데, 그때 우리 연배는 사회초년병으로 시민운동이나 민주화운동을 막 시작하는 단계였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셨어요. 김대중 대통령은 한 시간 만나면 제가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2, 3분이라면, 김영삼 대통령은 만날 때마다 대체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스스로는 말을 적게 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긴 시간의 모습을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110~112쪽)

- 최근 강조하는 표현이 ‘국가 대개조’인데, 개조라는 표현이 조금 구식 같기도 하네요. 모든 면에서 모든 걸 다 바꿔야 한다는 의미입니까?
▷우리가 이제껏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개혁’이라는 말을 죽 써왔는데, 지금 필요한 건 그걸 뛰어넘는 겁니다. 저는 과거부터 유력 정치인 가운데 가장 좌파라는 흑색공격을 많이 받아왔기 때문에 표현할 때 자기검열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가장 강렬하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정치의 주류 세력들을 교체해야 한다는 역사적인 당위성입니다. 그런 말을 하고 싶은데, 그것을 국민들이 심정적으로 가장 원한다 해도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죠. 그래서 대청산, 대개조, 시대교체, 역사교체, 이런 식의 표현들을 합니다. 기존의 우리 주류정치 세력이 만들어왔던 구체제, 낡은 체제, 낡은 질서, 낡은 정치문화, 이런 것들에 대한 대청산, 그리고 그 이후 새로운 민주체제로의 교체가 필요하다고 봅니다.(118~119쪽)

- 양산 집에 있는 감나무가 궁금합니다. 양산 집 감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으면 자른다고 해서 내내 감나무에게 말을 걸었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거든요. 정말 감나무가 그 목소리를 알아들었을까요?
▷그럼요. 아주 오래전에 제가 감나무를 사다가 집 마당에 심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심은 지 3년이 되도록 감이 한 알도 맺지 못하는 거예요. 감나무가 좀 허약하고 건강하질 못해 잎에 하얀 반점이 생기고 통 열매를 맺지 못했죠. 아내는 감나무가 비실비실하고 나무 밑의 화초들이 자라지 못한다며 자꾸 베어버리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한 해만 더, 한 해만 더 하다가 제가 물 주고 거름 주고 지극정성으로 돌보면서 감나무한테 말을 걸었어요. 너 이번에도 감을 못 맺으면 우리 마누라가 널 베어버리란다, 빨리 건강해져서 올핸 꼭 감이 열리도록 해라, 그랬죠. (중략) 그렇게 마음으로 격려하고 응원을 해주면 언젠가는 그 목소리가 들리죠. 저도 열매를 맺지 않는 감나무한테 중얼중얼 말을 걸고 둥치를 쓰다듬었어요. 그러니까 3년째 되던 해 정말 열매가 열리더라고요.(135~136쪽)

-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실패, 그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인사정책 실패일까요, 아니면 사익추구일까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점이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더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준 건데, 공통점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대통령 또는 최고 고위공직자들의 공공성이 실종됐습니다. 국가권력을 아주 사사롭게 여기고 권력을 사익추구의 수단으로 삼는 공공성 결여가 우리나라 주류정치 세력과 새누리당의 공통점이었죠. 원래 보수란 국가, 민족, 공동체를 중시하고, 이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품격과 고귀함을 존중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집권세력은 그야말로 가짜 보수, 사이비 보수였던 거죠. 그저 극우적인 수구세력이었을 뿐입니다. 새누리당 의원들 가운데 합리적인 보수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극소수일 뿐이었죠. 그런 실체들의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했는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1차, 2차, 3차 대통령 담화는 국민의 분노만 더욱 부추겼습니다. 사과는 하지만 자신이 한 일은 전부 공익이나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였을 뿐이라고 하면서, 모든 사태를 사람을 잘못 믿은 탓으로 돌렸습니다. 본인은 잘못이 없다는 겁니다.(144~145쪽)

- 지금 모욕감, 분노, 불안, 슬픔이 우리 국민의 정서입니다. 가장 많은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청소년과 청년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들 마음도 더할 나위 없이 그렇겠지만요. 그래서 그들 또한 촛불을 밝히고 나왔겠지요.
▷수원 촛불집회에 갔다가 열일곱 살 여고 2학년 학생의 발언을 들었는데, 그 학생의 말에 답이 있었습니다. 학생이 열심히 공부해야지 왜 이런 델 나오냐, 그런 얘길 하는 어른들이 있는데,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게 먼저 보장돼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그러면서 지금 세상은 열심히 하는 것과 성공은 별개의 문제고, 아무리 열심히 해봐야 소용없고 부모 잘 만나야 성공하는 그런 세상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와 사랑하는 부모님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 우선은 열심히 노력하면 그에 대한 보상이 따르는 세상을 만드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 세상이 오면 자기는 열심히 공부하겠다고요. 그런 세상을 만들어주지 못한 어른으로서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학생들, 젊은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이 사회의 불공정함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아무리 공부해야 돈 있고 빽 있는 특권층 자녀들에게 밀려나고, 청년들은 일할 자리가 너무 적은데다 그 적은 일자리마저도 흙수저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으니까요. 그 불공정함의 극단을 이번에 최순실의 딸, 정유라를 통해서 보지 않았습니까?

-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혁명뿐이다, 라고 해서 과격한 것 아니냐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그 혁명은 구체적으로 어떤 혁명을 말합니까?
▷바로 주권자혁명입니다. 혁명이라는 용어에는 가슴이 뛰는 순결한 정신적인 가치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시민혁명’이라고 표현하든, ‘명예혁명’이라고 표현하든, 다 주권자혁명입니다. 촛불혁명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혁명이란 참 정신적이고 명예롭고 고결한 것인데, 혁명이란 말에 약간 경기를 일으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다른 사람이 혁명을 말하면 괜찮은데 제가 혁명을 말하면 불온하게 여기는 이유가 있습니다. 군사정권 이후 기득권을 누려온 세력들이 바로 5.16 군사 쿠데타를 혁명이라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의 뇌리 속에 ‘혁명’은 군사 쿠데타입니다. 그것은 사실 정신적인 것인데 말이죠. 이들에게는 혁명이 총칼처럼 아주 폭력적인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주권자혁명은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혁명입니다. 우리에게 일상적인 행복을 빼앗아간 비겁한 권력으로부터 우리의 행복을 되찾아 오는 혁명이고요.(173~174쪽)

- 사드 배치 결정으로 북한은 물론 중국과의 관계도 상당히 민감해진 상황인데 사드 배치, 어떤 해법이 있겠습니까?
▷지금은 이미 사드 배치에 한미간 합의를 했기 때문에 다시 논의를 한다는 게 복잡하죠. 이 국면에서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이 우리 한반도를 중심으로 각축을 벌인 일은 구한말에도 있었습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 강대국들의 각축이 한반도를 무대로 한반도 위에서 일어난 겁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국권을 잃는 뼈아픈 역사를 겪었거든요. 그런 비극은 피해야죠. 사드 배치는 한반도 안에서 또 한 번 강대국들의 각축을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북핵문제에 대한 대응을 넘어서 민족사, 문명사 같은 큰 차원으로도 바라봐야 합니다. 과연 무엇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우선 무엇보다 과정과 절차가 필요한데, 박근혜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결정했죠. 이런 문제는 국회의 비준동의가 필요한 만큼 국회에서 충분히 검토해서 결정했어야 할 일입니다.

사드 배치에 대한 한미간 합의 자체가 대단히 성급하고 졸속으로 이뤄졌습니다. 그렇게 합의를 하기 전에,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사회적인 공론화가 이뤄졌어야 합니다. 사드가 북한의 고고도미사일에 대해 우리 한반도 내에서 효용이 있는지, MD체제와 별개로 우리가 추구해왔던 K-MD의 일부로 기능이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MD체제에 필연적으로 편입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충분히 검토했어야죠. 그다음 이에 대해 중국 쪽의 반발이 없을지, 이것을 중심으로 중국과 러시아와 북한이 결합하고 한미일이 대치하게 되는 외교적 상황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이런 많은 검토들이 필요했습니다.

사드의 효용은 미국에서조차도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미국 텍사스에 사드가 배치되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텍사스에는 사드가 배치된 게 아닙니다. 배치를 못 하고 그냥 텍사스에 있는 거예요.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어쨌든 지금은 한미간 협의를 했고, 그나마 효과를 볼 수 있다면 북핵문제로 불안해하는 국민들에게 심리적으로 불안을 덜어주는 정도겠죠. 또 북한을 압박하는 효과가 있다면 그런 정도도 인정할 수 있겠고요.(192~194쪽)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촛불시위 이후에 국민들이 모두 강력하게 권력 재편을 요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검찰 개혁과 관련해서 지방분권 강화 전에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검찰에 너무 많이 집중된 권한을 법으로 조정하는 겁니다. 집중된 권한 때문에 ‘무소불위의 검찰’이 되었고 권력의 눈치를 보는 정치검찰도 등장했습니다. 현재 검찰이 갖고 있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서 수사권은 경찰에게, 기소권은 검찰에게 분리 조정하는 것이 가장 빠르게 개혁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중략) 우리가 하려고 노력했지만 끝내 해내지 못한 과제 중 하나입니다. 실패한 이유가 있어요. 당시에 우리가 사법개혁위원회 같은 기구에 맡겨서 객관적으로 제도개혁을 했어야 했는데, 그걸 검경 간 자율적인 조정으로 맡겨놨습니다. 결국 접근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국회 법사위에서 법안 통과가 막혀버렸죠.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해야 검찰의 비리나 잘못, 위법에 대해 수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국민들도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검찰이 다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잘못이나 치부에 대해서는 제대로 수사하지도 않고 팔이 안으로 굽는 식으로 해결해버리는 거죠. 수사권이 경찰에게 간 다음에도 경찰이 검찰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거라고 봅니다. 그게 완전히 제대로 되기 전까지는 고위공직자들이 수사를 받는 기구가 한시적으로 필요합니다.(213~214쪽)

-예산을 사적으로 유용하고 자원외교를 빌미로 이득을 챙긴 이들에 대해서는 사라진 돈들의 행방도 추적해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에서도 국가권력을 사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고 그런 일들이 많았죠. 범죄행위고 할 수 있는 한 심판하고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4대강 같은 정책적인 오류가 단순한 판단오류가 아니라 고의가 개입된 오류라면, 정책을 결정한 당국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동조한 전문가와 지식인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봅니다. (230~231쪽)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2016.12.31/뉴스1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2016.12.31/뉴스1
- 권력을 통해서 어떤 가치를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 과거 집권세력과 달리 어떻게 명예를 지킬 것인가, 살아온 정치적 기반과 권력에 대한 정치철학의 기반은 무엇인가, 그런 게 궁금합니다.

▷우리가 권력을 갖는다면 기존 권력과 기반 자체가 다릅니다. 기득권자들의 권력은 그 세력들 간의 공고한 연합, 카르텔 같은 거지요. 실제로 그런 힘들이 권력의 기반이 되는 건데, 그에 맞서는 우리 권력의 기반은 도덕성과 역사적 소명의식입니다. 그 힘으로 기득권 세력의 연합을 우리가 깨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또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고요. 참여정부를 겪으면서 느낀 소회는 그렇습니다. 국민의 손을 꼭 붙잡고 함께 가야 합니다. 그 손을 놓아버리면 절대로 이겨낼 수가 없죠.

-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담배를 끊었는데 무슨 금연 비결이 있습니까?
▷담배를 제대로 핀 건 고3 때부터였죠. 1970년부터니까 35년 정도 피웠네요. 그 무렵엔 고3쯤 되면 흔히 담배를 다 피웠어요. 물론 그때도 고약한 선생님이 때때로 가방을 뒤져서 담배를 찾아내가지고 벌을 주는 일이 있긴 했지만 대체로 그냥 용인하는 분위기였죠. 2교시 마치면 우르르 학교 뒷산에 올라가 담배를 피우고 내려오고, 그다음 점심시간에 가서 또 피우고, 두 시간마다 한 번씩은 피웠던 것 같아요. 막걸리도 허용하는 분위기였죠. 당시엔 고등학생이면 이미 어른 대접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오래 담배를 피워왔는데 히말라야에서 한 번에 딱 끊어버렸어요. 제가 참여정부 민정수석을 그만둔 다음에 히말라야로 떠났습니다. 히말라야 대자연의 산길을 걷는데 담배가 저절로 끊어지더라고요. 왜 진작 못 끊었나 싶기도 했죠.(271~273쪽)

-지금 우리 국민들이 가장 바라는 행복은 무엇일까요?
▷공정한 세상 아니겠습니까? 적더라도 함께 나누는 세상, 배고프더라도 함께 먹는 세상, 그리고 억울한 사람이 없고 안전한 세상을 바라죠. 중년세대는 제게 말씀하십니다. 자식이 행복해야 부모가 행복하다고. 자식이 정말로 노력했는데도 성공은커녕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밀려나고, 누군가는 또 아무런 노력 없이 부모 덕에 모든 걸 얻고, 이런 불평등과 불공정을 보고 겪는 게 국민들의 불행이겠죠. 세상이 공평하다고 느낀다면 함께 고통을 겪고 극복해나갈 수 있습니다.(274쪽)

- 지금 촛불을 들고 나오는 국민들은 제왕적이고 동시에 재앙적인 대통령만 하야하길 요구하는 게 아니라, 제왕적 기업, 끝없는 혐오와 갑질, 관피아, 모피아, 이런 부분들도 상식적으로 바로잡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면 불공정신고센터를 두고 싶습니다. 제가 얼마 전 촛불집회에 갔다가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말할 기회가 없으니까 미리 편지를 써와서 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날 한 분이 또 저한테 편지를 주셨어요. 사범대학을 나와서 여러 해 임용고시에 낙방해 서른이 넘도록 합격을 못 한 분이었습니다. 임용고시 경쟁률이 30 대 1 정도 된다고 합니다. 임용고시 불합격은 자신의 노력 부족이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채찍질하곤 했는데, 사립학교 교원은 빽 있는 사람들이 경쟁도 하지 않고 척척 된다는 겁니다. 사립학교 교원도 국립학교 교원과 대우가 똑같고 국민세금으로 월급을 받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눈에 보이는 부분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까지 다 불공정하게 굴러가고 있는 겁니다. 공공부문뿐만 아니라 적어도 국가의 세금이 적용되는 데는 민간 부문이라도 불공정 요소가 없어지도록 해야 합니다.(279~280쪽)

- 적어도 출산과 교육에 대한 문제는 획기적이고 집중적인 정책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프랑스가 예전에 대표적인 저출산 국가였죠. 그런데 지금은 저출산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OECD 국가 중 출산율이 가장 높은 나라로 대변신을 했어요. 아동수당을 비롯해 임신부터 보육 단계까지 재정적인 지원이나 보장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출산에 대해 보호를 해줍니다. 우리나라는 미혼모를 사회적으로 죄악시하다 보니 낙태 건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미혼모뿐만 아니라 정식으로 혼인하지 않은 혼외자 등의 모든 출산에 대해 똑같이 보호하고 차별하지 않습니다.(287쪽)

- 새롭게 하는 것, 체제를 바꾸는 것,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를 만드는 구체적인 전략은 무엇입니까?
▷제가 지난번 대선에 실패했기 때문에 권력의 사유화 같은 참담한 일들이 생겼고, 그래서 더욱 뼈아프고 송구스러운 마음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하늘이 제게 조금 더 준비할 시간을 주고 단련을 시켰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전까지는 현실정치 속에서 뜻을 구현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타협적인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망쳐온 근본적인 원인들을 확실히 청산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주류정치의 교체가 필요하다는 데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 점에서만큼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들면서 해나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무엇보다 대청산, 대개조를 위한 청사진을 국민과 함께 실천해야죠.(304쪽)

-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분들에 대한 인물평을 듣고 싶습니다.
▷우선 안희정 지사는 젊고 스케일이 아주 큽니다. 포용력이 있죠. 앞으로 훨씬 더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박원순 시장은 따뜻하고 헌신적이죠. 이재명 시장은 선명하고 돌파력이 있습니다. 김부겸 의원은 뚝심이 있어요. 말이 굉장히 구수하고 입담이 좋아서 소통능력도 좋지요. (314~315쪽)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유엔사무총장을 지냈으니 그분은 외교관으로 유능하겠죠. 다른 면은 제가 본 적이 없어서 알 수는 없고요. 그동안 기득권층의 특권을 누려왔던 분입니다. 지금 우리 국민이 요구하는 건 구시대 청산,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 등 새로운 변화인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그리 절박한 마음은 없으리라고 판단합니다. (중략) 어쨌든 그동안 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쪽에 서본 적은 없다, 그런 노력을 해본 적은 없다는 생각입니다.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 통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더 곪게 되죠. 마른자리만 딛고 다닌 사람은 국민의 슬픔과 고통이 무엇인지 느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315~316쪽)

- 탄핵 반대집회에 나오는 박사모 회원들, 그들도 우리 국민 아니겠습니까? 그들과의 화합이나 통합의 방식은 어때야 할까요?
▷우리 사회가 가야 하는 목표 중 하나가 통합이죠.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큰 잘못 중 하나가 국민 편 가르기를 한 겁니다. 자신을 비판하는 수많은 국민들을 적처럼 만든 게 가장 큰 죄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가 가장 발전된 단계를 통합민주주의라고 봅니다. 우리가 말한 청산은 과거의 범죄나 악에 대한 청산이고, 국민들은 네 편, 내 편 없이 서로 대화하고 협상하는 겁니다. 설령 지금 박사모, 어버이연합, 이런 분들도 거의가 편 가르기를 하는 정치에 자신도 모르게 동원된 것이죠. 편 가르기 정치가 없어지면 극단적 대결도 해소될 수 있습니다. 이제 혐오를 끝내고 진정한 화쟁의 시대로 가야 합니다. 작은 상처들은 보다 큰 상처로 품어서 치유해야지요.(328~3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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