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500년 조선왕실 이야기 여기 다"

머니투데이 대담=신혜선 부장, 정리=김유진 기자 2017.01.07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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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국립고궁박물관장 "국내 유일의 조선왕실 전문 박물관…연구 가치 있는 유물로 가득"

지난해 10월 임명된 김연수 국립고궁박물관장. 그는 "박물관은 연예인이나 마찬가지"라며 "많은 국민이 찾아줄 수록 그 가치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사진=김휘선 기자지난해 10월 임명된 김연수 국립고궁박물관장. 그는 "박물관은 연예인이나 마찬가지"라며 "많은 국민이 찾아줄 수록 그 가치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사진=김휘선 기자


국립고궁박물관은 조선 시대라는 특정 시대의 왕(족), 궁궐의 삶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누군가는 “국립중앙박물관도 있는데, 굳이 특정 시대 궁과 왕족의 일상을 별도로 보존할 이유가 있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일제 침략으로 식민지 시대를 겪으며, 역사의 많은 부분을 잃고, 왜곡된 정보를 받아 안아야 했다. 비록 멸망한 왕조일지라도, 조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승자인 조선이 껴안은 고려와 삼국시대 등 더 오랜 우리 뿌리를 잃게 되고, 그마저도 일본이 덧씌우고 지운, 왜곡되고 왜소해진 조선의 역사만을 기억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조선 시대가) 가까운 역사라고 해서 잘 알고 있느냐, 그렇지 않지요. 근대로 넘어오는 시기에 일제강점기와 분단을 겪은 결과죠. 그것 자체도 대부분 ‘편린’(일면)으로 존재하면서 연구도 미진합니다. 연구 가치가 충분히 있는데도 모르는 게 너무 많지 않나요? 국립고궁박물관이 존재해도 되는 타당한 이유입니다.”



김연수 국립고궁박물관장의 이런 설명을 들으니 그저 지나친, 경복궁 귀퉁이 쪽문으로 들어가면 만나는 기와 지붕 건물의 존재감이 명쾌하게 와 닿았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유물과 문화재가 돼야 했을 많은 것들은 침략과 해방 그리고 전쟁을 거치며 훼손되고 뺏겼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 80년대 후반 학번으로 국사학을 전공했는데 그땐 박물관 견학 수업이나 과제조차 없었어요. 고고학 ‘탁본 뜨기’도 있었는데. 조선 시대 궁궐 생활을 알 수 있는 박물관 견학 한번 하지 않고 조선 시대사를 배운 건가요?
▶(하하) 늦게 만들어졌으니까요. 박물관 전신이 있어요. ‘궁중유물전시관’입니다. 그 전시관을 만든 이유의 시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992년 ‘영친왕(·비)’의 복식이 일본에서 환수돼 돌아옵니다. 그걸 보관하기 위한 시설을 만들자는 취지였죠. (첫 전시실은 덕수궁에 만들어졌다.) 당시 궁은 다 목조건축물입니다. 오래된 문화재를 보관할 때 가장 중요한 조건이 항온항습인데 영친왕 복식을 보관하고 나니 궁에 있던 유물들을 좀 더 잘 보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이른 거죠. 2005년에 지금 경복궁 안에 맨 윗 층을 우선 개관하고 2007년에 전 관을 개관했습니다.



-방문객 수가 꽤 많다고 들었어요. 어떤 강점이 작용한 결과일까요.
▶ 꽤 많죠. 1년에 130만 명 정도? 편차는 있지만 100만 명 이상 꾸준히 옵니다. 국립중앙박물관하고 비교하는 건 대기업과 중소기업 비교라 적당하지 않고요. 그(국립중앙박물관)에 비하면 우리는 굉장히 작은데도 방문객이 많은 겁니다. 경복궁 안에 있는 지리적 요건도 작용한다고 봅니다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서울이 10년 여전보다 역사도시로서 느낌이 훨씬 강해진 긍정적인 변화도 한몫했다고 봅니다. 궁을 연계한 여러 가지 문화 인식에 대한 안목이 달라졌다고 할까. 과거만 해도 궁은 공간적으로 ‘공원적’ 의미가 강했는데 지금은 역사성이 강조되면서 의미를 배우니 훨씬 더 입체감 있게 받아들이는 거 같습니다.

고궁박물관은 이웃한 민속박물관과 대비된다. “민속박물관은 그야말로 고유한 민속이라 시대를 따지지 않는다고 보고요. 이름 자체를 고궁박물관이라고 한 이유는 소장품 대개가 조선 시대 궁에서 나온 유물들이기 때문이죠.” 수도 서울 안에 궁이 5개다. 비록 많이 훼손됐지만, 임금과 왕족이 거처한 궁 모든 유물은 여기 고궁박물관에 오면 볼 수 있다. “조선왕실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전문박물관이라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김 관장이 국립고궁박물관의 특별전 '영건, 조선 궁궐을 짓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김 관장이 국립고궁박물관의 특별전 '영건, 조선 궁궐을 짓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보유한 유물은 어느 정도인가요.
▶세트 기준으로 4만5000점 정도입니다. 왕족이라 해도 사람이 살던 곳이니까 하다못해 부지깽이부터 먹는 것 입는 것, 의례 등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어찌 보면 주제가 좁아 보이지요? 하지만 각 연관성이 깊어서 다른 쪽보다 스토리 라인이 흥미롭습니다. (조선 시대) 가장 초기 것이라고 한다면 지금 연대를 뚜렷이 알 수 있는 것은 ‘세종대왕 어보’가 아닐까 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고려) 태조의 ‘태 항아리’가 있네요. 고려 물품이긴 한데.

- 박물관으로 개관하기로 한 뒤 10년이 넘었어요. 첫 전시는 어땠을까요. 규모도 커지고 많이 변했죠. 관장님도 실무자에서 이 자리에 오르시고.

▶큰 전시만 보면, 10년이 넘었으니 한 해 2회씩 해서 올해 마지막 전시까지 26회 정도 했나 봅니다. 정식 박물관으로 확대해 오면서 한 일은 ‘주제’ 별 전시였어요. 제왕기록, 의례처럼 카테고리 화하는 것이죠. 조금 더 세분화해서 묶어내려고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제왕기록이 첫 전시 주제였죠. 제왕에 관련된 모든 기록물을 보여주는. 거기에는 어진도 있고 어보도 있고. 그때는 그렇게 네 글자를 맞추는 게 유행이라고 해야 하나요. 왕실문화, 왕실생활, 이런 식으로. 지금은 조선의 국왕, 주제를 좀 더 쉽게 초점도 명확하게 하려 합니다. 사실 제왕기록만 해도 뭐랄까 대상도 애매하고 어렵잖아요? 제가 가장 자부심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요새는 왕실, 궁중 등에 대한 연구가 많아요. 2005년만 해도 관련 연구 부분이 굉장히 소수였는데. 박물관 전시가 역할 했다고 생각해요.

- 생각보다 조선에 대한 연구가 덜 됐다? 근대화를 거치며 역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작용한 거 아닌가 싶네요.

▶ 동의해요. 건드리기가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 많았을 겁니다. 500년 역사인데, 자랑스러운 거만 뽑았죠. 세종, 영·정조…. 나머지는 선입견이 작용하죠. 특히 고·순종 등 후기로 가면 ‘나라 망하게 했다’는 식으로. 왕실 중에서도 친일도 하고, 부끄러운 역사가 사실이니까요. 마지막 조선 역사는 부정적으로 배운 기억이 납니다. 조금 더 균형적으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 측면도 있지요.

-고궁박물관 역할, 해야 할 일이 나오는 듯하네요.

▶그렇습니다. 유물 전시 초기에, 연구자 중에서도 ‘처음 봤다’, ‘몰랐다’ 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패망하면서 중요도와 상관없이 창고에 그냥 물품처럼 보관돼있었으니. 손실도 많이 됐죠. 많이 훼손됐습니다. 저도 조선 시대 연구자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깜짝 놀란 것이 많았어요. 연구자들은 다 봤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는 거죠. 정상적으로 발전하고 쇠락한 역사라면 가치를 알고 받아들였을 텐데 폄훼한 측면도 있죠. 그런 부분을 복구하는 게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뚜껑 안 닫히고, 섞여 있던 것들, 어딨었는지도 모르는 것들을 제 짝과 제 자리를 찾아주는 일요.

-전시하면서 스토리 텔링을 염두에 두니 새로운 연구 성과도 나올 거 같습니다.

▶예. 궁 전시가 그 이전하고 다르게 촉매제 역할 한 게 있어요. 옛 연구자들은 문헌사만 봐요. 서지자료 중심으로. 반대로 미술사, 고고학 하신 분들은 유물 중심으로 보죠. 조선은 기록의 나라인데, 이 기록과 유물이 매치 되는 게 바로 우리 박물관이죠. 따로 연구하던 분들이 우리 박물관에서 문헌사와 미술사 하시는 분들 같이 연구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아주 일반화됐죠. ‘관인 전’을 예로 들게요. 관, 문헌사 연구하는 분들이 문서만 보다가 관인 얘기를 들은 거예요. 와서 이건 뭐지? 보니 대단한 거죠. 당시 여러 관청이 있고, 실제 관인이 찍힌 문서도 있고. 그분들은 책만 보다가 도장을 이제야 본 거죠. 고문헌 하는 분들이 당시 ‘어머 이게 있긴 있네’라며 기뻐하시는 모습. 15세기 도장이라니, 그 어려운 역사 상황에도. 그게 굉장히 감격스러웠고, 문헌사 하는 분들도 반가웠죠. 그런 전시 할 때 굉장히 쾌감을 느끼고, 아주 특별한 의미로 다가갈 수 있는 전시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김 관장은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여전히 연구할 것이 많다"며 "아직 연구되지 않은 유물들의 가치를 복구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말했다. /사진=김휘선 기자김 관장은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여전히 연구할 것이 많다"며 "아직 연구되지 않은 유물들의 가치를 복구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말했다. /사진=김휘선 기자
-고궁박물관 유물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뭘까요.

▶글쎄요, 대게가 다 보물이어서. 의궤, 실록, 국새 등등. ‘황제어새’라고 고종임금이 사용하던 도장이 있어요. (황제어새는 러시아, 이탈리아 등 각국에 일본을 견제하고 대한제국의 지지를 요청하는 친서 전달에 제작 사용하던 인장이다.) 공영방송에서 얼마 전, 유물 지정해서 설명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가장 호감 있는 유물 투표에서 황제어새가 1위를 했답니다. 청중들이 감동적으로 보셨나 봐요. 외교문서에 왕이 찍었던 것이니. 옛날 천문도 돌에다가 새긴 거랍니다.

- 올해 전시기획 소개해 주시죠.

▶‘조선왕조 포장예술’이라고 해서 겉에 쌌던 것들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보자기부터 함까지. 왕실 포장 도구는 그 자체로 굉장히 귀합니다. 격보, 홑보, 종이, 천으로 만들고 누비도 있고 나전칠기도 있고요. 또 하나는 ‘돌아온 왕실문화재’라고 해서 외국에서 찾아온 유물 전시입니다. 전에 한 번도 안 보여줬던 유물은 아닌데 한꺼번에 모아보자. 2015년 덕혜옹주 복식도 찾아왔고, 의궤나 실록도 일본에서 가져왔으니 한꺼번에 선 보일만 합니다. 어려움이 있지만, 공간이 된다면 현판도 쭉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양이 엄청나게 많아요. 궁궐 건물에 걸었던 현판, 집현전부터 온갖 전각까지. 건물이 헐리면서 떨어져서 훼손된 것도 많은데 누가 썼느냐, 담긴 의미, 모양 등 다양한 소재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작명을 굉장히 잘했어요. 의미를 풀면 지금 알고 있는 간판 정도가 아니라 깊은 뜻이 담겨있습니다.


김 관장은 “박물관은 연예인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사랑해주면 그 사람의 가치가 더 높아지는 것처럼 박물관도 그렇다는 얘기다. 박물관도 노력하겠지만, 많은 국민이 찾아주길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해 10월, 김 관장 임명 소식에 ‘우리나라에 박물관 부부관장 탄생’은 덤으로 딸려온 소식이었다. 이영훈 중앙국립박물관장(2016년 3월 취임)이 남편이다. 관장 취임 소식에 남편으로부터 어떤 축하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별 얘기 없는데요?”라고 웃는다. ‘업무 얘기는 절대 집에서 하지 않고, 직장에서 공식 절차를 밟아서 한다’가 원칙이란다.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그게 풀기도 훨씬 좋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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