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노믹스', 신흥시장에는 '트럼프의 저주'될까

머니투데이 주명호 기자 2017.01.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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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트럼프노믹스]통화약세, 수출 이득보다 금융 손실이 더 커…성장 타격 불가피

'트럼프노믹스', 신흥시장에는 '트럼프의 저주'될까


신흥시장은 이미 두려움에 떨고 있다. 작년 11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두 달 동안 신흥국 통화들은 예외 없이 가파른 속도로 추락했다. 여기에 예상보다 빨라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기준금리 인상 행보는 채권시장 투매로 직결됐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전초전에 불과하다. 이달 출범할 트럼프 행정부가 재정부양책을 본격 가동하고 FRB가 예정대로 금리 정상화에 나서면 달러 가치는 더욱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른 자금 엑소더스로 부채 우려가 가중되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던 성장세마저 급격히 내려앉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트럼프노믹스'가 신흥시장에는 '트럼프의 저주'로 각인되는 셈이다.



통화 약세는 보통 호재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저렴해진 생산단가로 수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금융에는 악재가 된다. 자국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외채부담은 높아지는 반면 상환 능력은 반대로 줄어든다.

문제는 신흥국의 경우 대부분 호재보다 악재의 여파가 더 크다는 점이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국제결제은행(BIS)이 내놓은 연구보고서를 인용해 22개 신흥국 중 13곳이 통화 강세일 때 경제성장률이 올랐고 약세일 때 둔화했다고 지적했다. 통화 약세로 인한 금융 악재가 경제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작년 전세계 채권발행액은 약 6조6200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초저금리 기조에 힘입어 선진국, 신흥국 모두가 채권을 통한 자금조달에 나선 까닭이다. 하지만 달러화가 강세로 돌아서면서 막대한 부채는 이제 고스란히 부담으로 바뀌었다. 경제 기반이 취약한 신흥국이 받을 부담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길었던 저금리시대가 끝났다며 신흥국이 받을 충격을 예고했다.

신흥국 경제는 과거에도 가파른 달러 강세에 힘을 잃고 무너진 적이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980년대초 상황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감세정책과 폴 폴커 당시 FRB 의장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1979년~1985년 사이 달러화 가치는 80% 이상 폭등했다. 반면 이로 인해 자국 통화가치가 바닥 밑으로 떨어진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부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앞서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올해 1분기 신흥시장에서 투매 현상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FRB의 가속화된 금리인상 행보와 트럼프의 재정부양책이 현실화된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위안화 약세에 따른 중국의 자본 유출이 가장 극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작년 위안화 가치는 달러대비 7% 가까이 떨어져 1994년 이후 22년만에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통화 약세에 따른 물가 상승도 신흥국 경제에는 부담이다. 물가가 높을수록 중앙은행의 부양 행보는 그만큼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라구람 라잔 전 인도중앙은행(RBI) 총재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경제부양책에도 불구하고 금리인상에 나섰던 이유도 물가 안정의 필요성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인도 물가가 안정권에 들어서면서 우르지트 파텔 신임 RBI 총재는 작년 10월 취임 즉시 금리를 낮출 수 있었다.

하지만 작년 11월 이후 급등한 달러화 가치로 신흥국의 추가 통화부양은 사실상 보기 힘들 전망이다. 이미 고물가 상태를 지속 중인 신흥국들의 고통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아르헨티나가 대표적이다. 아르헨티나 물가상승률은 20%대에 이르는데 이마저도 작년초 40% 수준에서 낮춘 것이다. 아르헨티나 기준금리는 24.75%지만 달러 강세로 11월말 이후 금리 인하할 염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다른 국가와 달리 매주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는 지난달 프로젝트신디케이트에 기고한 '인플레이션의 파괴력'이란 글에서 고물가, 고금리가 아르헨티나 경제에 심각한 해를 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 역시 경제둔화 우려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 작년말 달러화 강세에 중국 채권시장은 말그대로 투매세가 펼쳐졌다. 막대한 부채 규모를 더 이상 지속시키기 불가능하다는 우려가 커지면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6.5% 경제성장률 목표치 하회를 요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2020년까지 설정한 성장률 목표를 사실상 포기하겠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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