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탈북민, 현대차 지원받아 라멘집 차린 사연

머니투데이 박상빈 기자 2016.12.1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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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지원 'OK 셰프' 1호점 연 이성진씨 "통일되면 동생 제사상 차려주고파"

(왼쪽부터) 허용준 미래나눔재단 이사, 홍용표 통일부 장관, 1호점 사장 이성진씨, 박광식 현대자동차그룹 부사장, 박찬봉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김동호 사단법인 피피엘 이사장이 14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한 'OK 셰프' 1호 매장에서 축하떡을 커팅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제공=현대자동차그룹(왼쪽부터) 허용준 미래나눔재단 이사, 홍용표 통일부 장관, 1호점 사장 이성진씨, 박광식 현대자동차그룹 부사장, 박찬봉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김동호 사단법인 피피엘 이사장이 14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한 'OK 셰프' 1호 매장에서 축하떡을 커팅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제공=현대자동차그룹


14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는 특별한 일본식 라멘 가게가 개업했다. 북한이탈주민인 이성진씨(26)가 현대자동차그룹의 지원을 받아 대표가 돼 연 '이야기를 담은 라멘집'이다. 열다섯 북한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이씨는 어렸을 적부터 꿈꾸던 요리사의 꿈을 이뤄냈다.



스물여섯 이씨는 11년 전인 2005년 북한에서 한국으로 건너왔다. 먹을 것이라곤 옥수수 가루와 강냉이 죽이 전부였던 어렸을 적 그는 가난 때문에 동생을 잃었다.

"부모님이 장사를 나갔고 도둑까지 들었던 날 밤 겨우 배 밭에 가서 손으로 녹여 먹은 언 배를 동생은 소화시키지 못해 죽었어요. 일곱살뿐인 제 인생도 끝난 것만 같았죠. 동생 제사상에 올릴 음식도 없었습니다."



이씨는 동생을 잃은 뒤 어머니와도 헤어져 조부모님과 생활했다. 어머니가 죽었다고 들었을 당시에는 우울증까지 앓았다. 그런 힘들고 어린 삶을 살던 중 그는 죽었던 것으로 알았던 어머니가 남한으로 내려갔던 사실을 듣게 됐다. 어린 손자를 걱정한 조부모님은 거짓말을 했다. 이후 이씨는 용기를 내 북한을 빠져 나와 한국으로 왔다. 탈출 첫 시도에 군인에게 잡히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보내준 돈으로 탈북에 성공했다.

고생 끝에 온 한국이지만 생활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열다섯 나이에 입학한 초등학교 6학년은 적응하기 조차 쉽지 않았다.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로 이해 받기도 어려웠던 생활이었다. 그러던 중 만난 중학교 선생님은 이씨를 많이 아꼈다. 선생님은 이씨가 진학을 원하던 요리 특성화 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씨는 특성화 학교에 이어 경기대 외식조리학과에 다니며 요리사의 꿈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나 요리를 더 배우고 싶어도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마땅히 할 수 있었던 게 없었다. 한 대기업 식품회사는 면접에서 이씨를 앞에 두고 북한 사람에 대한 차별적 평가도 서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죽은 동생에 대한 미안함에 요리사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알게 된 'OK(One Korea) 셰프(chef)' 사업은 이씨가 마침내 요리사의 꿈을 이뤄내도록 길을 열어줬다.

현대차그룹과 사단법인 피피엘,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이 지난해 9월부터 북한이탈주민 자립 역량 강화 프로젝트로 진행해온 'OK 셰프'에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OK는 통일 한국 시대인 '원 코리아'(One Korea)를 염원한다는 뜻이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북한이탈주민들이 높은 실업률과 저소득을 겪는 것을 고려해 실질적인 자립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이 사업을 준비해왔다.

이씨는 지원자 20명을 뽑은 'OK 셰프' 1기에 뽑혀 기초 교육부터 실제 식당이 운영되는 전 과정을 체험하며 요리사 인생을 준비했다. 마침내 개업한 '이야기를 담은 라멘집'은 가게 이름에 북한이탈주민의 자립에 대한 꿈과 희망 등의 의미를 담아냈다.

이씨는 "언젠가 동생에게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음식과 요리에 대한 꿈이 생겼다"며 "통일이 되면 제일 먼저 동생의 묘에 가서 맛있는 음식들, 제사상을 제대로 차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가게의 사장으로서 요리를 하고 싶거나 식당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기회를 꼭 주겠다고도 다짐했다.

현재 'OK 셰프' 1기는 선발인원 20명 중 15명이 교육을 수료, 이번 1호 매장을 오픈한 이씨에 이어 이달 중 서울 광진구 세종대 인근에 '이야기를 담은 라멘집' 2호점 개업을 앞두고 있다. 8명은 취업에 성공했고 5명은 취업과 창업을 모색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기존과 다르게 종합적인 시각으로 접근해 북한이탈주민의 자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번 사업을 준비해왔다"며 "앞으로도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북한이탈주민의 정착과 자립역량 강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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