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YS, DJ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패러디

머니투데이 배성민 증권부(국제경제팀)장 2016.12.03 09:40
글자크기
“이(위)대한 국민 여러분. 학(확)실히~~ ” “에~~,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

한국 야당(또는 민주화세력)의 대명사로 불렸던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말들이다. 하지만 이 말들은 경상도 억양이 강한 YS와 전라도 사투리가 짙게 밴 DJ의 육성이라기보다는 그들을 코미디(개그)소재로 삼은 이들의 작품성격이 더 짙다. 개그맨들이 코미디 소재로 쓰면서 DJ와 YS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젊은 층에게까지 친근감을 줬다.

본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자신을 코미디의 소재로 써도 좋다’는 말을 던짐으로써 대통령에 대한 개그의 물꼬가 트였다. 물론 소재로 인기가 더 있던 이들은 노태우보다는 YS, DJ였다. 노태우는 김종필 (JP) 전 국무총리에게도 밀렸다.



YS는 집권 초기 자신을 소재로 한 유머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YS는 못 말려’가 히트를 치자 ‘YS는 끝내줘’ 라는 속편까지 나왔다.

이런 식이었다. <YS가 안기부장의 국무회의 불참을 지시하자 기자들이 배경을 물었다./"안기부장의 참석은 관례였는데 불참토록 한 배경이 뭡니까?"/YS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장관과 대통령이 회의하는데 어떻게 부장이 끼노? 국장도 못끼는 자린데.">



DJ도 못지 않았다. TV토론에서 어려운 질문을 받자 ‘부채도사에게 물어봐야겠다’라고 답할 정도였다. 부채도사는 당시 인기있던 개그프로 속 인물이었다. 대선 후보자 시절에는 인기코너 ‘이경규가 간다’에도 흔쾌히 출연했다. 이제는 역사가 된 인물들의 얘기를 꺼낸 건 박근혜 대통령과 코미디 프로의 악연이 끊임없이 이어져서다.

과거 ‘SNL코리아’의 한 코너였던 ‘여의도 텔레토비’도 청와대로부터 제재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12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 이 코너가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 당시 대선후보들을 인형극 캐릭터에 빗대 풍자했던 게 불씨가 됐다. 당시 새누리당은 박 후보 캐릭터가 욕을 자주 한다며 선거방송심의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CJ 총수일가에 대한 사법처리와 퇴진 요구 등 문제 제기의 빌미가 됐다는 추측도 이어졌다.

최순실씨의 국정농단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한복판에서 또다시 이같은 의혹이 불거진다. 최순실과 그의 딸 정유라를 패러디하며 ‘최순실 게이트’를 신랄하게 풍자해 화제가 된 tvN 코미디 프로그램 ‘SNL코리아-시즌8’의 PD가 돌연 교체된 것이다.


해당 PD가 내년 초 시작할 새 프로그램 기획을 맡게 됐다고 회사측에서 밝혔지만 방송계에선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것도 아니고 시즌 중 PD를 교체하는 건 이례적”이라는 분위기다. 영화 '변호인'의 주연 배우 송강호는 변호인 출연 이후 대형 영화사의 주연 자리를 맡을 수 없었다고 하니 더 의심이 더 한다.

정치 패러디의 원조라는 미국에서는 대통령(또는 후보)가 개그의 단골 소재다. 레이건이 대통령일 때 나온 영화 ‘백 투 더 퓨처(1985)’에는 과거로 간 주인공 마티가 브라운박사에게 레이건이 대통령이라고 하자 박사가 “그런 얼치기 배우가 대통령이라니 그럼 미키 마우스가 유엔 사무총장이겠네”라고 비웃는 장면이 나온다. 최근에는 유명 배우 알렉 볼드윈이 오락프로에 트럼프처럼 분장하고 출연했다. 특유의 머리 모양도, 말투도 영락없는 트럼프였다. 여배우 메릴 스트립도 트럼프 흉내에 도전했다.

다시 대한민국 얘기다. 대통령이 일개 개인에게 국정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직간접적으로 기업들에게서 ‘성의 차원’의 어마어마한 돈을 뜯어낸 현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같고 코미디보다 더 코미디스럽다. 패러디나 풍자는 막아놓고 스스로 허무맹랑한 영화 속 스토리의 실제 주인공이 된 것이다.

“정부가 시민들을, 이 지구를, 우리 아이들과 부모를 보호해주지 않고 우리 인권도 지켜주지 않을 것이란 두려움이 있다.” 지난 18일 저녁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해밀턴에 출연한 뮤지컬 배우가 관람객인 펜스 부통령 당선인에게 내뱉은 충고 형식의 성명서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차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자괴감이 든다’,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다' 는 말을 꺼냈다. 벌써 패러디가 한창이다. 도올 김용옥은 '국민들의 울화가 치밀게 하는' 담화를 계속 내놓는 박 대통령에 대해 '상습 담화범'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이러려고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나’라고 후회하는 이들이 ‘이러려고(대통령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게 하려고)’ 촛불을 들고 나선 것이다. 미국 배우나 한국 촛불 시민들이 후회와 두려움을 불사르고 위정자에게 던지는 일갈은 한가지다. "국가의 가치를 지키고 모든 국민을 위해 일하도록 영감을 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부통령역을 했던 미국 배우의 부통령 당선자에 대한 충고 중 일부)고.
머니투데이 증권부 기자머니투데이 증권부 기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