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오늘… '크리스마스의 기적' 만든 한국의 쉰들러 눈감다

머니투데이 진경진 기자 2016.11.25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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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한국전쟁 당시 흥남부두 몰려든 피난민 구한 현봉학 선생 사망

한국전쟁 당시 흥남 철수 직후 폭파된 부두와 미국의 배./사진=위키미디아한국전쟁 당시 흥남 철수 직후 폭파된 부두와 미국의 배./사진=위키미디아


9년 전 오늘… '크리스마스의 기적' 만든 한국의 쉰들러 눈감다
"(영어) 부탁드립니다. 여기서 우리가 떠나버리면 저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중공군의 공격에 몰살당하고 말 겁니다. (미동도 없는 미국 장교) 장군님 제발, 우리 불쌍한 국민들을 살려주세요. 제발…."(영화 '국제시장' 중 현봉학 선생 대사)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흥남부두로 향했다.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한 후 전세가 불리해지자 미군과 국군병력 10만명, 군수물자 등을 후방으로 철수시키기 위해서였다.



당시 흥남부두는 미군과 한국군 10만5000여명과 피란민 9만명 등이 뒤섞여 매우 혼잡했다. 미군의 철수 소식을 들은 북한 주민들이 중공군을 피해 부둣가로 모여든 것이었다.

하지만 미 화물선은 군과 군수품을 부산으로 실어 나르는 것이 공식임무였던 만큼 피란민까지 수송할 계획은 없었다.



이때 한국인 통역관이던 현봉학씨가 나섰다. 그는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한 뒤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28세의 젊은 의사 겸 대학강사였다.

현봉학 선생은 당시 미 육군 제10군단장 에드워드 알몬드 사령관에게 북한 주민을 부산으로 함께 데려가 달라고 애원했다. 에드워드는 주저했지만 결국 현봉학 선생의 간곡한 부탁을 받아들였다.

일본과 부산에서 모인 11척의 배는 열흘에 걸쳐 피란민들을 실어 날랐다. 이렇게 남한으로 내려간 북한 피란민은 9만8000명. 기네스북에 등재될 만큼 세계 전쟁사에 있어 가장 큰 철수작전이었다.


특히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24일 마지막으로 흥남부두를 출발한 배는 미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였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정원은 60명이었는데 이미 선원 47명이 타고 있었기 때문에 추가로 태울 수 있는 인원은 13명뿐이었다.

에드워드 장군은 배 안에 있던 수천톤의 군사무기를 버리도록 했다. 피란민들도 자신의 짐을 버렸다. 2000명 이상 탈 수 없다던 이 배에는 1만4000명의 피란민이 탑승했다. 버려진 군수품은 북한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폭파했다.

이틀간 계속된 항해. 눕지도 앉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단 1명도 사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5명의 새 생명이 탄생했다. 흥남철수 사건을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이유기도 하다.

한국전쟁에서 기적을 만들어낸 현봉학 선생은 독립운동가인 서재필 기념재단 초대이사장을 비롯해 안창호, 안중근, 장기려 등을 기리는 사업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보건의료협력본부 고문 등을 지내는 등 이후에도 조국을 위한 일에 늘 앞장섰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임상병리학 연구에도 크게 기여했다. 특히 199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적 권위인 '이스라엘 데이비슨상'을 수상했고 2005년에는 제2회 서재필 의학상을 받았다.

현봉학 선생은 2007년 11월25일 미국 뉴저지주 뮐렌버그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올해 12월25일쯤에는 서울 남대문 세브란스빌딩 앞에 그의 동상이 세워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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