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의 몰락과 폼나게 돈쓰는 법

머니투데이 송정렬 중견중소기업부장 2016.11.22 05:00
글자크기

[송정렬의 Echo]

창조경제의 몰락과 폼나게 돈쓰는 법


"정권 바뀌면 다 문닫을 것이다.” 2014년 9월 대구를 시작으로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전국 주요거점에 일사천리로 들어서던 당시 일부 벤처 및 산업계 인사들은 이같이 단언했다. 마치 최순실 게이트로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뭇매를 맞으며 문을 닫을 위기에 내몰린 작금의 현실을 미리 본 것처럼 말이다.

당시 이같은 발언에 대한 대다수의 반응은 ‘설마’였다. 임기 2년차에 접어든 정부는 힘이 넘쳤고, 창조경제혁신센터 사업에 대한 추진의지도 강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대기업이 손잡고 창업열기를 전국방방곡곡으로 확산할 거점을 마련, 이를 통해 창업기업을 육성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명분에 대놓고 토를 달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더구나 청년들이 연애,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하는 우울한 시대상을 감안하면 반대의 목소리는 더욱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등 그동안 정부 주요정책들의 얄궂은 운명을 지켜본 이들의 경험칙은 이같은 용감한 예언으로 이어졌다.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한 정책에 대기업을 물주로 동원하는 구시대적인 사업방식은 창조경제혁신센터의 비극적 운명을 예견할 수 있는 단초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창조’ ‘혁신’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름과 달리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전혀 창조적이지도, 혁신적이지도 않은 방식으로 추진됐던 셈이다.

대신 명분과 포장은 화려했다. IT(정보기술)부터 스마트팩토리, IoT(사물인터넷), 태양광, 빅데이터, 문화까지 온갖 첨단 사업과 기술들이 지역별 특화사업으로 정해졌다. 여기에 삼성, 현대자동차, LG, SK, 네이버 등 주요 대기업들에 전담기업이라는 감투를 씌워주고 하나 또는 두 개의 센터를 맡겼다. 정부가 센터의 운영을 주도하지만, 정작 투입되는 돈의 절반 이상을 대기업이 떠맡는 이상한 구조였다. 특히 개소식이 열릴 때면 아무리 바쁜 국정에도 대통령은 시간을 쪼개 지방까지 찾아가 자리를 빛내줬다. 재주는 누가 부리고, 생색은 누가 낸 셈이다.



일부에선 단기실적에 치중하는 등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사업이라는 비난도 나왔다. 그래도 성과가 없진 않았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올해 8월말까지 2842개 창업중소기업을 지원, 3094억원의 투자를 이끌어 냈다. 1443개의 일자리도 창출했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누군가의 말처럼 바람 앞의 촛불 신세로 전락했다.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인물중 한명인 차은택씨가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장을 맡아 창조경제센터 운영에 한 발을 걸쳤고, 잇따라 비리 관련 의혹들이 제기되면서다.

검찰이 사업 전반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미 창조경제혁신센터 지우기는 가시화되고 있다. 서울시가 내년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등 지자체들은 손을 떼는 수순을 밟고 있다. 그나마 대기업들은 입주스타트업들과의 협력과 지원 등을 이어가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입장이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정말 이대로 첫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말끔히 정리하는 게 정답일까. 애꿎은 입주 스타트업의 피해는 어떻게 막을 것이며, 그동안 애써 구축한 지역 창업 생태계 인프라는 어떻게 할 것인가. 속은 후련할지 몰라도 최선은 아닐 듯 싶다.

창업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지속될 키워드다.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이 고조되고, 한국경제의 성장여력이 떨어지고 있는 현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정부는 차제에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규모는 대폭 줄이더라도 일부 대기업만이라도 ‘자발적으로’ 지역 창업생태계 활성화에 변함없이 매진하는 해법은 어떨까.

물론 적잖은 돈이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탐욕스런 권력의 지갑을 채워주는 것보다 미래 한국경제의 동량을 키워내는 일이 100배, 1000배 가치있고 폼나게 돈쓰는 방법은 아닐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