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송고한 뒤 “시간 되면 저녁이나” 하자는 제안에 베른의 한 식당으로 향했다. CJ그룹의 고위임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냐”고 의아해 하자 “중동 일이 있던 참에 들렸다”고 말했다. 자연스레 대화는 다보스포럼 ‘한국의 밤’ 행사에 참석한 이 부회장 얘기로 흘러갔다.
CJ는 박근혜 정부와 관계를 트지 못해 벌어진 일로 여겼고, CJ가 ‘창조경제’의 약어라는 조롱 섞인 말까지 들어가며 정책 홍보에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였다. CJ 대관 업무 담당자들은 정권 핵심부 내 기류 파악을 위해 청와대 눈치를 살피며 어렵게 기자들과 접촉했다. 그런 상황에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을 빛내주기 위해 다보스에 나타났다. “이제 웬만큼 관계가 풀어졌나 보죠?”라고 묻자 한동안 뜸을 들인 후 “아직도 어렵다”는 임원의 답이 돌아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1월 21일 오후(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 벨베데레호텔에서 열린 "한국의 밤"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사진 오른쪽이 이미경 전 CJ그룹 부회장(청와대)
그런데 최근 조원동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2013년 12월 박 대통령 지시로 이 부회장의 퇴진을 압박했다는 녹취가 폭로됐고,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동원하려 했다는 정황도 나왔다. 복기해보니 이 부회장은 필사적으로 대통령의 오해를 풀어야 했고, 여러 경로를 동원해 다보스포럼을 그 장소로 택한 거였다. 사진 속 찍어내려는 자와 버티려는 자는 서로를 향해 웃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심정이었을까. 청와대에 휘둘렸던 CJ는 창조경제 응원과 ‘국뽕’ 영화를 기획했고, 이 회장은 풀려났다. 권력은 사악했고, 기업을 부조리하게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중 ‘권력은 이제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했지만, 여전히 구중궁궐 청와대에 있었다. 국정운영을 '소꿉놀이'이 하듯 한 정권이 이를 온몸으로 입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