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말 대한민국 국민들은 ‘대통령의 약물 투입 가능성’을 처음 겪으면서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지만 외국 정치가들의 약물 남용은 특별하거나 새로운 일이 아니다.
1956년 수에즈 위기 당시, 통증으로 고생했던 영국의 수상 앤서니 이든은 내각 회의를 주재하기 직전 아편에서 유도된 물질인 펜티딘을 복용했다. 그는 바비튜레이트(진정과 수면 기능을 발휘하는 향정신성의약품)를 수면제로, 암페타민(아주 강력한 중추신경 흥분제)을 각성제로 사용했다. 그는 퇴임을 앞둔 몇 주 동안 늘 암페타민에 취해 있었으며, 각료들 앞에서 이 사실을 숨기지도 않았다.
존 F. 케네디는 1938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요통에 시달리자 하루 세 번, 때로는 그 이상 프로카인(합성 코카인 유사체) 주사를 맞았다. 그는 기분 전환을 위해 암페타민 같은 약물을 복용했는데, 그 효과를 ‘들뜬 기분’ 혹은 ‘행복감’으로 묘사했다. 취임 전과 재임 기간 코카인도 남용했다. 백악관에서는 연인들과 함께 마리화나와 LSD를 복용했으며 여러 명의 의사가 서로의 처방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약을 처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이유가 마약 남용을 용인해줄 수 있는 일이어서일까. 저자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단지 국민에게, 이를 감시할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디크 스왑은 독자에게 “우리는 한 나라를 통치하는 정치가들에게 적어도 자동차나 비행기를 운전하는 사람에게 하는 정도의 요구는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묻는다. 국민에겐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정치가들의 알코올, 마약, 그리고 의약품 남용 여부를 알 권리가 있다는 얘기다.
그는 음주벽이 있었던 리처드 닉슨이 1969년 북한이 미국 정찰 비행기를 격추했을 때 만취한 상태로 외무장관 키신저에게 외쳤던 말을 ‘검사’가 필요한 이유로 든다. “헨리, 우리 거기다 핵폭탄을 날리자고!”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은 1994년 술에 취해 아일랜드 정부 각료들이 환영차 나와 있는 비행기 착륙장에 내리지 않아 행사를 펑크내기도 했다.
568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뇌에 대한 보고서에는 약물 중독·남용 외에도 수없이 많은 우리의 행동을 분석할 뇌과학적 틀이 담겨있다. “평범한 사람은 종교를 진실로, 현자는 거짓으로, 지배자는 유용한 것으로 여긴다”는 세네카의 말처럼 우리는 왜 종교에 빠져드는지, ‘입신’과 같은 종교적 망상이 뇌의 어느 부분 이상으로 인해 발생하는지 등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다.
◇우리는 우리 뇌다= 디크 스왑 지음. 신순림 옮김. 열린책들 펴냄. 568쪽/2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