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대통령에 'NO'…의원에 '월급도둑'이라 한 그들

머니투데이 오동희 기자 2016.11.13 14:19
글자크기
2011년 2월 22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실리콘밸리 기업인들을 저녁에 초대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상황을 전한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애플의 CEO였던 스티브 잡스에게 "미국에서 아이폰을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산업1부 재계팀장(부장)산업1부 재계팀장(부장)


질문의 요지는 미국 기업으로써 왜 미국에 투자해서 고용을 늘리지 않느냐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대답은 간단했다.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였다. 뉴욕타임스는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등을 만드는데 필요한 일자리는 결코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에서의 생산 스피드와 효율이 훨씬 뛰어남을 강조했다.

애플 측은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이 인색하다는 비난에 대해서도 "우리의 임무는 가능한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지 실업률을 낮추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한 어조로 얘기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소개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의 협조 요청(?)에 이처럼 강하게 'NO'라고 답할 수 있는 환경이 될까. 또 더 나아가 기업의 역할이 자국 내 실업률을 낮추는 게 아니라고 강하게 항변할 수 있는 기업인은 과연 몇이나 될까.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불리는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국내 주요 기업 총수들의 검찰에 줄소환됐다. 가장 먼저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검찰청 앞 포토라인에 섰다.

기업들이 정치 권력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처럼 언제든지 기업 총수를 검찰이나 경찰로 불러 위협(?)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또 국세청이나 공정위 등 기업을 손볼 수 있는 수단은 권력에게는 많다.


이 기업인들의 순응(?)을 두고 비겁하다고 부르기에는 아직 한국 사회의 선진화 수준이 미국의 그것에 비해 훨씬 못미친다는 얘기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서도 권력 실세에 대한 대접(?)이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다. 결국 국민들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지 않으면, 미국처럼 기업 CEO가 대통령의 말에도 꿈쩍하지 않고 자기의 길을 가는 사회 선진화는 요원한 일이다.

거의 비슷한 시기(2011년 2월 21일)에 일본에서 있었던 일이다.

"세금으로 밥을 먹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지금의 상황은 봉급 도둑과 같다."

언뜻 보기에도 국민을 대표하는 선량인 국회의원을 '월급 도둑'이라고 칭하며 강하게 밀어붙이는 간 큰 사람이 누구일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또 이런 발언이 비공개적인 장소나 실언이 아니라 기자회견에서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궁금증이 더해질 듯하다.

이 같은 얘기를 한 사람은 우리로 치면 최근 '최순실 게이트'로 논란의 중심에 선 전경련격인 일본 최대 재계 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의 요네쿠라 히로마사 회장의 기자회견 중 발언이다.

당시 요네쿠라 회장은 정치권이 예산안과 관련한 법안처리, 소비세 인상을 비롯한 세제개혁,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참여 등 일본 내 현안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정쟁에만 몰두하자 불같이 화를 내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을 하느니 마느니의 상황이 아니라 여야가 협력해 일을 해야 한다"며 "정국에만 몰두하는 것은 국민의 생활과 국익을 무시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정권의 심부름꾼 역할을 한 전경련과 달리 정치권을 '식충'으로 묘사한 게이단렌의 강단 있는 자세가 부럽기만 하다. 이런 발언이 한국에서 나왔다면 전경련은 지체 없이 해체수순을 밟았을 듯하다. 현재 허창수 회장의 후임 전경련 회장을 찾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굳이 나서서 이득될 게 없는 한국적 정계와 재계의 역학 관계 때문이다.

재계 총수들도 잘못한 게 있으면 법의 심판대 위에 서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는 그 책임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함께 따져봐야 한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