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의 이상과 비트코인 투자

머니투데이 서재영 한국투자신탁운용 투자솔루션부문 차장 2016.11.09 16:55
글자크기

[머니디렉터]서재영 한국투자신탁운용 투자솔루션부문 차장

비트코인의 이상과 비트코인 투자


얼마동안 잊혀졌던 디지털 화폐인 비트코인 얘기가 주위에서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부총리 내정자이기까지 한 금융위원장이 디지털 통화의 제도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하니 빨리 비트코인을 사서 투자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면서 지인들은 미증유의 투자아이템에 대한 질문을 던져 왔다.

최근 어느 일간지의 헤드라인에는 '비트코인, 제도권 통화로 들어온다', '정부가 비트코인 등의 디지털 통화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을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며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이 더 이상 재미있는 아이템으로만 그치지 않고 화폐나 투자대상으로까지 부각되고 있다.



비트코인은 전자화폐(electronic cash)다. 교통카드와 같은 IC카드 속의 잔액, 인터넷 뱅킹을 통해 사용하는 화폐도 전자화폐인데 기존의 IC카드형과 네트워크형과 구별해 디지털캐쉬(digital cash)로 다시 구분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비트코인 ATM이 설치되는가 하면 온라인 공간에서도 지급결제에 비트코인 사용이 확산되고 있어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이미 법정화폐와 구별하는 것이 모호해지는 시점에 이르렀다.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싸이월드의 도토리나 페이스북의 크레딧과도 다를 바가 없고 기존의 전자화폐와 비교해봤을 때에도 비트코인이 특별하게 취급되어야 할 이유는 따로 없어 보인다.



화폐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부터 비트코인 출현이 갖는 의미를 되새겨보아야 할 시점이다. 최초의 화폐는 교환의 수단으로서 자연적으로 출현했다가 이후 상품가치의 측정 및 저장수단 그리고 유통 및 지급수단으로 주요한 기능이 변화해 왔다. 그 형태는 채집사회에서는 조개껍질로 나타났고 농경사회에서는 쌀이나 삼베와 같은 곡물과 직물로 나타났다. 금이나 은 그리고 철이나 구리처럼 그 자체만으로 가치를 가진 금속이 화폐로 쓰였고 지폐와 같은 가치가 없는 것에 명목적, 제도적으로 가치를 부여한 형태로도 존재해 왔다. 심지어 현대에는 교통카드나 인터넷 상거래에서 사용되는 형태조차 없는 전자화폐가 널리 쓰이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화폐의 본질이 기능이나 형태에 의해서만 한정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존의 전통적 화폐기능에 더해 지금의 시대가 원하는 어떤 새로운 기능이 더 필요한 것일까.

교통과 기술의 발달로 전 세계에 멀리 떨어진 다양한 경제주체들이 그 어느 시대보다도 자유로운 거래를 할 수 있게 된 자유무역의 전성기에 각국 정부나 중앙은행은 자국 화폐의 발행량 조절을 통해 '화폐전쟁'이나 '환율전쟁'에 참여하면서 보호무역의 움직임은 오히려 고조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기축통화 국가들이 경쟁적인 통화확장 정책으로 자국통화의 가치를 낮추고 수출확대를 통해 경기회복을 모색하면서 교역상대국을 궁핍하게 만드는 '근린궁핍화'가 이뤄지고 있다. 로스차일드가 '나에게 화폐발행권을 준다면 법은 누가 만들어도 상관없다'라고 한 것처럼 미국 등은 화폐발행이 국제권력에 작용하는 원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막강한 국력과 경제규모를 바탕으로 기축통화의 특권을 잘 누려왔다.

그러나 중국 위안화의 지위상승과 금융위기로 기존의 기축통화 가치의 불안정성 문제가 부각됐고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했던 루비니 교수는 미국 달러화의 몰락으로 세계경제와 금융시스템이 붕괴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어쩌면 이 시대에 진정한 화폐가 수행해주어야 하는 기능은 국가간의 공정하고 자유로운 거래의 기능, 이른바 '공정환율 기능'이 아닐까.

법정화폐는 국가나 중앙은행, 싸이월드 도토리나 페이스북 크레딧은 기업들이 화폐의 발행권을 갖고 있는데 비트코인이 이들과 다른 것은 법정화폐가 아니면서 화폐의 발행권자가 특정 국가를 초월한 불특정 다수이고, 특정한 주체가 발행속도나 총 발행량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즉 비트코인은 법정화폐가 아니면서 어떤 국가나 기업으로부터도 자유로운 화폐다.

사토시 나카모토(필명)라고 알려진 정체 불명의 비트코인 개발자가가 추구했던 이상은 지금의 불평등하고 불안정한 국제교역과 금융의 시스템을 자유롭고 평등하며 안정적인 것으로 바꾸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화폐발행의 무정부주의, 국제교역의 평등주의, 통화학파의 준칙주의를 담고 있는 이 신선한 전자화폐의 출현이 갖는 의미가 매우 커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비트코인에 대한 각국의 반응은 제각각이고 전문가들의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미국 텍사스주 연방법원은 셰이버스 사건에서 비트코인을 화폐로 간주한 판결로 규제의 근거를 마련했고 영국은 국세청이 감독하는 가상화폐 거래소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며 태국은 비트코인의 사용을 금지시켰다. 독일은 당국의 승인을 통해 비트코인 거래를 인정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13년 폴 크루그먼 교수는 화폐로서의 발전 가능성을 일축했으나 이후에도 이를 화폐로 활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핀테크와 전자상거래의 활성화로 가상의 전자화폐에 대한 수요가 앞으로도 확대될 것은 제법 자명해보인다. 하지만 화폐로서의 거래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예측만으로 이를 향후 비트코인의 가치가 현저하게 상승할 것으로 기대해 투자의 수단으로서 검토해야 할 근거는 여전히 빈약해 보인다.

언제나 그렇듯이 금융당국이나 언론이 제시하는 참신한 아이템과 이를 테마로 한 투자의 결과는 그다지 좋은 연계성이 있는 것 같지 않다. 현재로서는 미국 대통령 후보인 트럼프가 멕시코 국경지역의 미국인들에게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치겠다!'고 한 것과 같은 상징적인 표현쯤으로 생각해볼만한 사건으로 보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 투자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다음의 질문에 스스로 답해보기를 권한다.

만약 당신에게 비트코인 발행권을 준다면 법은 누가 만들어도 상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