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 마에스트로가 말러음악을 말하다

머니투데이 고혜련 동네북서평단 교수 2016.11.05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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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북] <30>‘오자와 세이지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악보를 읽는다는 의미는?

편집자주 출판사가 공들여 만든 책이 회사로 옵니다. 급하게 읽고 소개하는 기자들의 서평만으로는 아쉬운 점이 적지 않습니다. 속도와 구성에 구애받지 않고, 더 자세히 읽고 소개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래서 모였습니다. 머니투데이 독자 서평단 ‘동네북’(Neighborhood Book). 가정주부부터 시인, 공학박사, 해외 거주 사업가까지. 직업과 거주의 경계를 두지 않고 머니투데이를 아끼는 16명의 독자께 출판사에서 온 책을 나눠 주고 함께 읽기 시작했습니다. 동네북 독자들이 쓰는 자유로운 형식의 서평 또는 독후감으로 또 다른 독자들을 만나려 합니다. 동네북 회원들의 글은 본지 온·오프라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동양인 마에스트로가 말러음악을 말하다


이 책은 음악애호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2010년 11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도쿄, 호놀룰루, 스위스 등지에서 오자와 세이치와 인터뷰를 하며 만든 대화체 음악이야기이다. 음악을 만들어내는 마에스트로와 이를 감상하는 문학인의 솔직한 대화는 우리를 또 다른 음악 세계로 이끈다. 무라카미는 오자와씨가 말하는 단어를 “오자와 語”라고 명명하며 세련되지 못한 말투이지만 그속에 담긴 감정은 음악인만이 느낄 수 있는 노래같은 언어라고 하였다.

악보(score)를 읽는다는 의미



오자와 세이치와 무라카미 하루키는 초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일에 몰두하며 그책임을 다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 둘의 작업을 뜻하는 “악보(score)를 읽는다”와 “글을 쓴다”는 개념은 예술의 통시적 관점에서 보면 결국 같은 말이다. “악보를 읽는다”는 것은 과거 고전 음악가들이 보낸 암호를 해독하는 작업이고 오자와 세이치는 이를 재해석하여 자신의 색을 입히고 법고창신을 한다. 오자와의 창작세계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음악애호가 무라카미는 “체내에 신선한 음악을 정기적으로 주입하지 않으면 생명자체를 유지할 수 없는” 마에스트로 오자와의 음악여정을 대화를 통해서 직접 추적한다.

오자와는 중학교부터 지휘를 했으며 일본인 스승 사이토 히데오에게 철저하게 지휘하는 방법과 지휘자의 역할을 배우고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제자가 된다. 그후 뉴욕필하모니의 레오나드 번스타인의 부지휘자가 되고 번스타인 밑에서 말러음악 연주를 배운다. 당시 번스타인외에는 말러의 전곡연주자가 없었다. 오자와는 토론토와 샌프란시스코에서 말러 전곡을 연주하면서 번스타인의 뒤를 잇는다. 오자와 음악의 기본은 독일 고전음악에 대한 독일식 해석을 따랐으나, 비독일적으로 해석하는 번스타인의 영향도 받게 된다. 그는 박봉이었던 부지휘자시절에도 경제적인 곤란에 허덕이면서 언제 본인에게 지휘를 맡길지도 모른다는 책임의식을 갖고 전곡을 외우며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철저한 악보암기는 그의 일본 스승 사이토 히데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사이토선생은 어린 오자와에게 악보를 암기할 때는 마치 자기가 그 곡을 작곡했다 생각하고 집중해서 읽고, 곡을 연습한 후에는 그 곡의 악보를 외워서 그려보라고 했다. 그리고 악보암기의 최종목적은 외우는 것이 아니라 곡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이토 히데오로부터 이런 교육을 받은 오자와에게 “악보를 읽는다”는 의미는 곧 악보를 읽을 줄 알아야 음악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오케스트라에서 각각의 악기가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내는 이야기(음악)를 청중에게 잘 전달할 수 있는 준비작업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부분이 전문인과 비전문인의 벽이며 좋은 지휘자는 둘의 격차를 좁히고 자연스런 공감이 있는 음악세계로 인도할 수 있어야 한다.

음악은 현장성이 중요한 시간예술이다


말러의 곡은 악보에 모든 정보가 존재한다. 세세한 음표와 강약뿐만 아니라 독일의 음악. 유대인의 감성, 보헤미안의 민요, 동양적 세계관 등이 악기의 감성과 표현에 녹아 있어 그 곡을 연주하는 지휘자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


예를 들면 카라얀은 말러음악의 잡다한 특성을 견디지 못하여 자기 음악세계에 어울리는 작품만 골라 연주를 한다. 즉 “말러라는 그릇을 빌려 자기음악을 연주한다”는 뜻이다. 오자와 세이치의 말러연주는 카라얀보다는 번스타인의 해석을 닮았고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동질감을 이룬다. 오자와는 말러음악의 내용을 확실히 읽어 거기에 그 만의 감정을 싣는다. 말러의 음악은 다조성을 통해서 본능적인 혼란을 끌어들여 동시대에 살았던 프로이트의 심층의식을 그의 음악에서 맛볼 수 있다.

오자와는 말러음악이 독일음악의 정통성을 의식적으로 고수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 동양인 연주자들이 파고들어 갈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서양음악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말러음악은 연주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지휘를 시작하지만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음이 현장에서 스스로 움직여 지휘자의 머릿속에서 짐작했던 소리가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화음이 창출된다. 즉 악보에서 읽을 수 있는 “음악적인 언어”하고 라이브 공연에서 오케스트라가 탄생시키는 리듬과 하모니는 아무리 명지휘자의 이해력이라도 따라가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동양인 마에스트로가 말러음악을 말하다
마에스트로 오자와 세이치는 보스톤 심포니의 음악감독과 빈 국립 오페라 극장 음악감독으로 일을 했으며 그의 스승을 기리는 사이토 기넨 음악제를 개최하여 일본 음악수준을 보스톤 심포니와 비슷한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또한 후학을 위해 래비니아 음악제와 탱글우드 음악제 감독을 맡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오자와 세이지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오자와 세이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영주 옮김. 비채 펴냄. 364쪽/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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