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적벽
문제는 獐項里을 장항마을로, 卵山里를 난산마을로 표기할 때 발생한다. 獐項을 그냥 장항으로 표기하면, 원래 뜻이 노루목이라는 것을 절대로 알 수 없는 하나의 (발음)기호에 불과하게 된다. 노루목이라는 역사와 문화를 가진 마을의 실체는 없어지고 ‘장항’이라는 기호만 남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長項線(장항선)의 종점인 충청남도 長項의 장항과 헷갈리게 된다.
潭陽(담양)의 錦城山城(금성산성)에 있는 輔國門(보국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輔國(보국)은 나라를 돕는다는 뜻으로, 崔濟愚(최제우)가 세운 ‘東學(동학)’이 내세운 創敎(창교)이념 가운데 하나다. 원래 최제우는 ‘나라를 보호한다’는 뜻의 ‘保國(보국)’이란 단어를 썼다. 나라를 보호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保國安民(보국안민)’이 그것이다. 그런데 2대 동학 교주였던 崔時亨(최시형)이 保國을 輔國으로 바꿨다. 억울하게 교수형에 처해진 최제우 교주의 伸寃(신원, 원한을 풀어줌)운동에 도움이 되고, 동학에 대한 탄압을 줄여보기 위해 표현을 완화한 것이다.
그런데 그냥 ‘보국’이라고 쓰면, 保國인지 輔國인지 전혀 알 수 없다. 문맥에 따라 의미를 알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 경우는 문맥을 아무리 따져도 保國과 輔國을 구별할 수 없다. ‘ 글전용’의 한계다(한글전용이라는 말도 한글專用이 아니라 ‘ 글 오로지 쓰기’로 바꿔야 진짜 한글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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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이름은 뫼골이다. 뫼는 山이니 산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이를 한자식으로 부르려다 보니 산곡(山谷) 묘곡(墓谷) 묘골 등으로 표기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어원을 따지면 뫼골이 맞는다. 이를 산곡이나 묘곡이라 부르고 쓰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語不成說, 어불성설)
노루목을 장항이라고 쓰고, 알메골을 난산마을이라 쓰고, 뫼골을 산곡이라고 표기하면 그 뜻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한글 전용론자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