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먼저 살다 간 이의 이야기를 마음에 담다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16.10.15 07:03
글자크기

<39> 몽파르나스 공동묘지에서

편집자주 여행은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이다.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는 수단이다. 여행자들이 전하는 세상 곳곳의 이야기는 흥미와 대리만족을 함께 안겨준다. 이호준 작가가 전하는 여행의 뒷얘기와 깨달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의 묘/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의 묘/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여행은 살아있는 사람뿐 아니라 먼저 살다 간 이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으러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어느 도시에 가든, 시간만 허락하면 공동묘지에 들른다. 공동묘지는 땅 위에 기록해놓은 그 도시의 역사다. 서양의 묘지는 우리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대개 주거지 인근에 함께 있기 때문에 찾기도 쉽다. 어느 오래된 교회는 뜰이 공동묘지다.

파리에는 몽파르나스 묘지, 페르 라쉐즈 묘지, 몽마르트르 묘지 등 3곳의 큰 공동묘지가 있다. 그중 내가 찾아간 곳은 몽파르나스 공동묘지. 공원처럼 꾸며 놓은 이곳에는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와 시인 보들레르, 소설가 모파상,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 작곡가 세자르 프랑크 등이 영면을 취하고 있다.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라는 이름이 적힌 묘는 입구에서 멀지 않았다. 다른 묘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평범했지만 사람들이 자주 다녀간 흔적이 눈에 띄었다. 꽃다발 몇 개와 캔 음료… 낡아서 형태를 잃어가는 여러 장의 편지. 죽어서도 편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면 한 생을 경작하는데 실패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저절로 경의가 일었다. 꽃들 옆에는 숱한 지하철 티켓들이 놓여있었다. ‘당신을 보러 먼 곳에서 왔어요. 미처 꽃을 준비하지 못해서 지하철 티켓이라도 놓고 갑니다.’ 그런 뜻이 담겨 있는 것일까?

작은 키에 사팔뜨기였지만 유머를 잃지 않아서 주변을 곧잘 웃겼다는 사르트르. 나는 그를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기억한다.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는 독일에 저항하다 전쟁 포로가 되기도 했고,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을 벌이기도 했다는 게 그 증거다. 그는 또 노벨상이 서구 작가들에게만 치우쳐 있어서 공정성을 잃었다는 이유로 1964년 노벨문학상을 거절하기도 했다.



사르트르의 묘에는 그의 ‘영원한 연인’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가 함께 묻혀있다. 비석에 이름을 나란히 적은 그녀 역시 사르트르의 영향을 받은 실존주의 소설가이자 사상가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관계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좀 난감하다. 공식적으로 그 두 사람의 관계를 표현하라면 계약결혼 부부? 그런 이름보다는 동반자라는 이름이 나을 것 같다. 그 둘은 자유롭게 각자의 연애를 했고 삼각관계에 빠지기도 했다. 비로소 죽어서 하나가 된 셈이다.

샤를 보들레르의 묘/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샤를 보들레르의 묘/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사르트르, 보부아르와 작별하고 보들레르를 만나기 위해 천천히 묘지들 사이를 걸었다. 보들레르의 묘를 찾는 건 예상외로 쉽지 않았다. 입구의 안내판에서 분명히 위치를 확인했는데, 독도법을 배우지 않고 지도를 펴든 군인처럼 막막했다. 그렇게 한참 헤맨 끝에 발견한 것이 유난히 꽃이 많이 놓여있는 묘.

가까이 다가가 묘비에서 주인을 확인했더니 역시 샤를 보들레르(Charles Pierre Baudelaire, 1821~1867). 19세기 프랑스가 낳은 가장 위대한 시인. 저주 받은 천재시인. 현대시의 시조라고 불러지며 상징시의 산맥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사람. 46년이라는 길지 않은 생을 살면서 숱한 수식어를 남기고 떠난 시인의 무덤 앞에서 내 심장은 감동으로 거칠게 뛰었다.


보들레르의 삶을 따라가 보면 그가 읊었던 바보 같은 바닷새 알바트로스를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있다. 아니 보들레르뿐 아니라 모든 시인이 그럴지도 모른다. 보들레르가 스스로 저주받았다고 말했듯이 저주받고 태어난 모든 존재가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지도….

'악의 꽃', '파리의 우울' 정도나 알고 있는 내가 그에 대해 더 이상 말할 게 뭐 있을까. 그저 술이라도 한잔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에 묘 앞을 서성거릴 뿐이었다. 살아서 불행했을지 모르지만 죽어서는 행복하겠구나. 누군가 정성스레 쓴 편지 앞에 서서 나도 마음의 편지를 썼다.

보들레르를 떠나 묘지들 사이를 오랫동안 걸었다. 멀리서 볼 때 비슷해 보이던 묘들도 자세히 보면 하나하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살아서 그랬듯이, 죽어서도 개성대로 누워 있는 셈이었다. 누구는 철학자로 누구는 소설가나 시인으로 누구는 음악가로…. 그들이 이 시대에 전하고 싶은 말을 들어보려고 귀를 기울여보기도 했다. 사랑, 평화, 행복…. 가슴으로 들리는 옛사람들의 전언을 차곡차곡 마음에 담았다.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먼저 살다 간 이의 이야기를 마음에 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