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의 묘/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파리에는 몽파르나스 묘지, 페르 라쉐즈 묘지, 몽마르트르 묘지 등 3곳의 큰 공동묘지가 있다. 그중 내가 찾아간 곳은 몽파르나스 공동묘지. 공원처럼 꾸며 놓은 이곳에는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와 시인 보들레르, 소설가 모파상,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 작곡가 세자르 프랑크 등이 영면을 취하고 있다.
작은 키에 사팔뜨기였지만 유머를 잃지 않아서 주변을 곧잘 웃겼다는 사르트르. 나는 그를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기억한다.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는 독일에 저항하다 전쟁 포로가 되기도 했고,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을 벌이기도 했다는 게 그 증거다. 그는 또 노벨상이 서구 작가들에게만 치우쳐 있어서 공정성을 잃었다는 이유로 1964년 노벨문학상을 거절하기도 했다.
샤를 보들레르의 묘/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가까이 다가가 묘비에서 주인을 확인했더니 역시 샤를 보들레르(Charles Pierre Baudelaire, 1821~1867). 19세기 프랑스가 낳은 가장 위대한 시인. 저주 받은 천재시인. 현대시의 시조라고 불러지며 상징시의 산맥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사람. 46년이라는 길지 않은 생을 살면서 숱한 수식어를 남기고 떠난 시인의 무덤 앞에서 내 심장은 감동으로 거칠게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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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의 삶을 따라가 보면 그가 읊었던 바보 같은 바닷새 알바트로스를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있다. 아니 보들레르뿐 아니라 모든 시인이 그럴지도 모른다. 보들레르가 스스로 저주받았다고 말했듯이 저주받고 태어난 모든 존재가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지도….
'악의 꽃', '파리의 우울' 정도나 알고 있는 내가 그에 대해 더 이상 말할 게 뭐 있을까. 그저 술이라도 한잔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에 묘 앞을 서성거릴 뿐이었다. 살아서 불행했을지 모르지만 죽어서는 행복하겠구나. 누군가 정성스레 쓴 편지 앞에 서서 나도 마음의 편지를 썼다.
보들레르를 떠나 묘지들 사이를 오랫동안 걸었다. 멀리서 볼 때 비슷해 보이던 묘들도 자세히 보면 하나하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살아서 그랬듯이, 죽어서도 개성대로 누워 있는 셈이었다. 누구는 철학자로 누구는 소설가나 시인으로 누구는 음악가로…. 그들이 이 시대에 전하고 싶은 말을 들어보려고 귀를 기울여보기도 했다. 사랑, 평화, 행복…. 가슴으로 들리는 옛사람들의 전언을 차곡차곡 마음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