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동북쪽 외곽의 4환과 5환 사이 차오양구 왕징 대서양신청 아파트는 유난히 빈집이 많았다. 1년 8개월 전 베이징 특파원으로 처음 이곳에 정착했을 때 우리 앞집도 빈집이었다. 한국 돈으로 200만원이 넘는 월세를 받을 수 있는데도 집주인이 빈집으로 놔두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의문은 1년이 지나 풀렸다. 지난 4월부터 집을 보러오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느는가 싶더니 이내 매매 계약이 이뤄졌는지 내부 공사가 진행됐다. 부동산 중개업소는 매매가가 1400만위안(당시 환율 24억5000만원)이라고 귀띔했다. 입주 15년차가 넘는 방 3개짜리 130㎡ 아파트다. 매매가가 이 정도다보니 집주인은 세입자 때문에 골치 아픈 월세보다 단 한번의 매매를 원한 것이다. 최근 아파트 곳곳에는 내부 공사가 유난히 눈에 많이 띈다.
인민은행은 돈만 푼 게 아니다. 2015년 3월 주택 대출비율을 큰 폭 늘려주며 베이징이나 상하이, 심천 등 1선도시의 부동산에 불을 질렀다. 이것도 모자라 베이징이나 상하이, 심천 같은 주택 구입 제한 도시를 뺀 전 지역에서 주택 대출비율을 80%로 높였다. 인민은행의 이 같은 주택거래 활성화 대책은 지난 2월까지 계속됐다.
"돈은 얼어붙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돈의 방향이 너무 한쪽으로 쏠린다고 판단했는지 인민은행은 다시 수도꼭지를 잠갔다. 지난 2월 말 이후 금리인하는 물론 지급준비율 인하에도 나서지 않고 있다. 집값 급등에 다급해진 중국 정부도 대책을 내놓는다. 지난 국경절 연휴 기간 베이징과 선전, 텐진 등 20개가 넘는 시 정부가 앞 다퉈 주택 대출비율을 낮추고, 외지인의 주택 구입을 막는 거래 억제책을 발표했다. 사실상 중앙정부가 지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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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지방정부의 대책은 부동산으로 유입되는 자금을 얼어붙게 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일부에서는 내년 2분기 이후 부동산 가격이 하락세로 반전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돈은 고이면 썩는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돈은 고이면 썩는다. 당장 부동산시장에도 지난해 6월부터 올초까지 이어졌던 증시 대폭락의 데자뷔가 어른거린다. 2014년 6월13일 2070.71이었던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1년만에 수십조 위안이 몰리며 2015년 6월12일 5178.19로 최고점을 찍는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부터 대폭락이 시작돼 6개월만에 2638.30까지 밀렸다.
이제 부동산시장에서 불려진 돈은 또 다시 더 낮은 곳을 향해 급격히 방향을 틀 조짐이다. 그 대상은 중국 정부가 원하는 증시일 수도 있고, 창업일 수도 있고, 기업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고인 물이 빠진 자리는 큰 후유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는 ‘2개의 100년 목표’로 2020년까지 전면적 샤오캉(중산층) 사회 건설을 내걸고 있다. 1인당 소득수준을 2010년 대비 2배로 끌어올린다는 청사진이다. 이 꿈이 실현돼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 시대로 접어든다 치자. 그래도 베이징의 130㎡ 아파트를 구입하려면 평균 94년, 왕징 아파트는 208년이 걸린다. 소득이 2배가 됐다고 그들은 과연 행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