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시장] 깨진 신뢰를 회복하는 길

머니투데이 전선애 법무법인 로쿨 변호사 2016.09.04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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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달간 남자 연예인들이 성폭행 혐의로 피소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가수 겸 배우로 큰 인기를 누리던 박유천씨가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하자 그의 팬클럽 가운데 한 곳은 지지 철회 의사를 밝혔다. 같은 혐의로 고소당한 엄태웅씨는 최근 한 육아 프로그램을 통해 자상한 아빠의 이미지를 구축해오던 터라 이번 사건이 알려지자 큰 논란이 일었다.

이런 사건이 알려지면 이들에 대한 신뢰를 한 순간에 무너진다. 진위 여부는 둘째 문제다. 팬들의 지지를 받는 연예인으로서, 혹은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깨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이들이 치러야 할 부담과 고통은 결코 만만치 않다. 그동안 쌓아온 노력의 몇 배를 들이더라도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는 보장할 수 없다.



한 의뢰인이 묻는다.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51·구속기소)를 둘러싼 법조비리 이야기다. 현직 부장판사까지 연루돼 구속된 사건이니 궁금해 할 만하다. 그동안 의뢰인들이 전관예우 등 법조비리에 대해 물어오면 '전관들의 로비로 판결이 뒤바뀌는 일은 없다'고 단호하게 답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같은 대답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수십억대 수임료를 받은 전관의 로비로 판결이 뒤바뀌고 수백억대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이 선처를 받는 사건들이 연일 보도되는 가운데 1심에서 패소한 후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믿음으로 항소심 상담을 오는 의뢰인들에게 변호사로서 어떤 답을 줄 수 있을까.

68주년 제헌절을 기념해 헌법재판소가 일반 시민 655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모든 국민이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헌법 원칙이 잘 지켜진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81%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연일 신문 1면을 장식하는 법조비리 사건을 마주하며 '법 앞의 평등'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싶다.



한편 오는 28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을 앞두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법의 적용대상이 400만명에 이르다보니 각계에서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심지어 '란파라치'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김영란법 위반 현황을 포착해 신고하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다. 포상금과 보상금 한도가 다른 법에 비해 큰 만큼 일부 파파라치 학원에서는 김영란법 특강까지 이뤄진다고 한다. 각종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에서는 소속 직원들을 대상으로 김영란법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초·중·고등학교 교사들은 교육청이 주관한 김영란법 연수를 받고, 경찰들은 수사지침 마련에 한창이다.

일각에선 과잉단속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농·어민과 자영업자 등 관련 업종 종사자들의 피해, 무분별한 신고로 인한 사생활 침해, 공직자 업무 위축 등 예상되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이때문에 법원에서도 벌써부터 관련 사건을 어떻게 심리할지에 대한 고민이 깊다.


그럼에도 김영란법이 결국 단행되는 이유는 '신뢰 회복'에 있다. 김영란법 1조는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청탁 및 공직자 등의 금품 수수를 금지함으로써 이들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2014년 권익위원회가 실시한 국민들의 부패인식도 조사에서 응답자 62.8%는 '우리사회가 부패하다'고 답했다. 사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매우 낮다는 것이다. 문제는 한번 깨진 신뢰를 회복하기 힘들다는데 있다. 연예인과 팬의 관계이든, 국민과 사회제도의 관계이든 마찬가지다. 하물며 법을 집행하는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더욱 그렇다. 깨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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