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내걸었던 슬로건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였다. 정치와 경제는 뗄 수 없는 관계다. 한 국가의 경제적 실패에서 문제의 근원이 경제가 아니라 정치에 있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는 게 최근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투표다. 전문가들은 정치인들의 선동과 이를 추종한 투표행위가 영국과 유럽, 나아가 전세계의 경제에 파급효과를 야기했고 앞으로도 파장을 가져올 것이라고 분석한다.
리처드 위트만 영국 런던 싱크탱크인 차텀하우스 선임연구원은 “브렉시트는 포퓰리즘에 기반한 캠페인이었다”며 “대중들이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한 채 메시지가 더 간결했고 이해하기 쉬웠던 브렉시트 찬성파의 정치적 메시지에 끌려 이뤄진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중국에서 열린 ’G20(주요20개국)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 G20경제수장들 역시 브렉시트를 보호주의 및 정치적 포퓰리즘이 확산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저성장이 길어지고 소득분배 개선이 지연되자 브렉시트라는 정치적 이슈를 제기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 국회의사당의 모습/사진= 정혜윤 기자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포퓰리즘에 기인한 국가적 손실이나 사회, 경제적 비용은 점점 커져 왔다. 영남권 신공항 건설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10년간의 내홍, 퍼주기 수당이란 비판을 자초한 서울시의 청년수당(청년활동지원비) 논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지난 5월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지하에 20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19대 의원들이 폐기 한 서류가 쌓여 있다. 2015.5.25/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단통법이 대표적이다. 단통법은 거대 사업자를 규제한다는 평등주의적 사고방식에서 출발해 결국 소비자 이익은 물론 단말기 유통점포 고사와 기업 경쟁력 저하까지 불러일으켜 폐지론에 휩싸였다. 윤상호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들 법안이 모두 시행됐다면 경제성장률이 1%대로 하락할 것”이라며 “현재 단통법 등 4개는 이미 시행 중인데 손실 규모는 8조5956억원으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정치가 경제를 망친 셈이다.
정치권이 이처럼 포퓰리즘의 덫에 빠져, 국가의 중요 문제들을 미래 지향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당리당략에 빠진 정치는 결국 포퓰리즘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며 “국회의원들은 오직 국민들만 바라보겠다는 첫 다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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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업체도 좀 더 쉽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게 하고, 실업급여 기간도 단축했다. 이전보다 실업자 스스로 일자리를 적극 찾도록 의무를 강하게 부과했다. 이런 조치는 당연히 인기가 없다. 슈뢰더는 ‘어젠다 2010’이 의회 동의를 얻지 못하면 총리직을 사임하겠다는 정치적 배수진을 치고 연방의회 표결에 부쳤다. 앙겔라 메르켈이 이끄는 우파 성향의 야당 기민당이 개혁안에 동의한 덕분에 ‘어젠다 2010’은 연방의회를 통과했다. 평소 상대 당을 비난하며 다툰 독일 정치인들은 국가 미래가 달린 정치적 결단 앞에선 아군과 적군이 없었다.
제조업의 디지털화가 핵심인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정책은 정치 리더십을 통한 산업개혁 산물이다. 2006년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취임 초기부터 의회의 지지를 받으며 산업계, 학계 등과 머리를 맞대고 제조업 혁신 방안을 찾았다. 강한 정치 리더십을 바탕으로 150명의 산학연 전문가가 만들어낸 게 ‘인더스트리 4.0’이다. 정치권 도움도 컸다. 정치권의 지지를 받은 이 프포젝트는 제조업과 ICT(정보통신기술)를 접목해 국가가 총력적으로 대응해야할 산업 정책으로 이어졌다. 현재 전세계에서 독일은 4차 산업혁명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독일은 비단 노동 개혁 뿐 아니라 난민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도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일관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지난 한 해만 독일은 난민 110만명을 받아들였다. 난민 유입으로 범죄와 테러가 잇따르면서 여기저기서 주민들의 민원과 여론으로 휘청거리고 있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의회의 도움을 받으며 난민 포용 정책을 꿋꿋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토마스 라인 독일연방노동청 소속 노동시장과 직업연구소(IAB) 연구원은 “이민자들이 독일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반대 여론도 있지만 이민자 유입에 따른 노동력 강화 등 국가 전체의 경제적 이익과 문화적 다양성 등을 고려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