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히든챔피언' CEO의 줄담배

머니투데이 강경래 기자 2016.08.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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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분이 있는 최고경영자(CEO)를 만날 때마다 말한다. 한국 금융을 절대 이용하지 마라. 망하는 지름길이다."

김덕용 케이엠더블유 (14,640원 ▲150 +1.04%) 회장은 줄곧 입에서 담배를 떼지 않았다. 기자와 만나는 2시간 내내 줄담배가 이어졌다. 탄피처럼 재떨이에 꽂힌 수많은 꽁초들은 김 회장의 최근 답답한 심경을 대변하는 듯했다.

김 회장은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변대규 휴맥스 회장 등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1세대 벤처기업인으로 꼽힌다. 김 회장이 1991년 창업한 케이엠더블유는 26년이 지난 현재 통신장비 중견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이 회사의 2013년 매출액은 3179억원(영업이익 435억원)에 달했다.



케이엠더블유가 꾸준한 성장을 이어왔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이 회사는 100만불(김영삼정부), 3000만불(김대중정부), 5000만불(노무현정부), 1억불(이명박정부), 2억불(박근혜정부) 등 '수출의 탑'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상했다. 이 회사는 2013년 중기청으로부터 한국형 히든챔피언인 '월드클래스300'에도 선정됐다.

하지만 케이엠더블유의 통신장비 수출은 2014년 이후 차질을 빚었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시장을 중심으로 4세대 이동통신(LTE)에 대한 2차 투자가 지연되는 업황 부진의 탓이었다. 지난해까지 2년 연속 수백억대 적자에 기록한 이유다.



그러자 케이엠더블유는 주거래은행으로부터 최근 차입금에 대해 연이율 12.3%를 내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 은행과는 수년 동안 4% 안팎의 이율로 거래해온 터였다. 이를 지난해 7%대, 최근에는 두 자릿수로 올린 것. 또 다른 은행에서는 케이엠더블유를 잠재부실기업, 이른바 '좀비기업'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제2, 제3금융권도 아닌 시중은행에서 우리 같은 수출주도형 중견기업에 두 자릿수 연이율을 제시했다. 은행이 금융이길 포기하고 고리대금업체로 전락했다. 은행에서 돈 빌릴거면 한국에서 더 이상 기업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수년 전 우리 중견·중소기업(이하 중기)을 신음케 했던 금융권 이슈가 있었다.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가 그것이다. 중기들은 당시 대기업 하청 중심의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수출을 통해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외환 손실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막'이라는 금융권의 말에 현혹돼 가입했던 키코는 오히려 족쇄가 돼 돌아와 중기들의 목을 옥죄었다.


한때 '한국의 퀄컴'이라 불리며 팹리스(반도체개발 전문회사) 업계를 이끌던 엠텍비젼은 키코로 인해 800억원 이상 손실을 본 후 코스닥에서 퇴출됐다. 국내 전자부품 업계 최초로 연간 1조원 매출액을 돌파하며 승승장구했던 디에스(DS) 역시 1400억원 가량 키코 손실을 입은 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키코 손실로 인해 법정관리 등 아픔을 겪은 조붕구 코막중공업 사장은 최근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를 꾸리고 거대 금융권을 상대로 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케이엠더블유 역시 키코로 400억원 가량 손실을 봤다. 본업이 아닌, 금융권 때문에 산전수전을 겪어야 했던 김 회장이 한국 금융을 향해 쓴소리를 던졌다. "햇볕 날 때 우산을 주더니, 비가 오니 우산을 빼앗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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