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갤러리] 남극의 펭귄과 초원의 기린이 만나는 자리

머니투데이 김현이 작가 2016.08.2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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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김현이 '애니몰랜트' (2015)

편집자주 미술시장 사각지대에 있는 신진 작가를 발굴해 고객과 접점을 만들어 주고 온·오프라인에서 관람객에게 다앙한 미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아트1'과 함께 국내 신진 작가의 작품을 소개한다. 그림에 딸린 글은 작가가 그림을 직접 소개하는 '작가 노트'다.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손안의' 혹은 '책상 위'의 갤러리에서 한편의 그림을 감상하고 여유롭게 시작해보자.

김현이의 애니몰랜트 19(The Animalant 19), 2015, 종이 위에 혼합재료, 38 x 45.5cm. 김현이의 애니몰랜트 19(The Animalant 19), 2015, 종이 위에 혼합재료, 38 x 45.5cm.


보통 학창 시절 같은 학급이 된 수십 명 중 따로 말 붙이고 마음 열며 친해지는 친구는 몇 명뿐이다. 또 그중 지금까지 연락하는 인연을 손가락으로 꼽아볼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일 것이다.

‘직장을 잘 다니던 A씨가 더 이상 공장의 회색빛 각 잡힌 부품처럼 느껴지는 자신의 모습을 못 견뎌 하던 일을 패기 있게 그만두고 티켓 하나 끊어 떠난 여행에서 우연히 말이 잘 통하는 인도에서 온 처녀 B양을 만났다' 라는 긴 문장을 적어본다. 이 문장의 우연을 두고, 세상에 우연이란 것이 존재하는지 혹은 모든 만남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 뿐인지를 고민한다.



옷깃이라도 스쳤던 많은 사람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내 삶에 출연하도록 정해진 등장인물들이었는지 아니면 우발적으로 내 삶에 내가 끌어들인 사람들인지의 문제다. 그리고 나의 관심은 필연으로도 우연으로도 만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있다.

태어나서 우연으로도, 필연으로도 만날 수 없던 수 많은 사람에 대한 생각은 언제나 나를 차분하게 한다. 동시대인뿐만 아니라 나보다 지구에 먼저 태어나 살다간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다.



'애니몰랜트'(Animalant)는 내가 이름 붙인 하나의 세상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서로 마주칠 일 없던 남극의 펭귄과 초원의 기린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다. 펭귄과 기린이 어딘가에서 같이 살고 있으니, 이곳은 지구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나는 우연으로도 필연으로도 만나기 힘든 수많은 사람의 존재와 그들의 삶으로 마음이 자꾸 잠긴다. 그들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야말로 진정한 공존의 길이다.

[출근길 갤러리] 남극의 펭귄과 초원의 기린이 만나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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