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전 오늘…유리천장 타파한 엘리트vs 정치싸움의 희생양?

머니투데이 이미영 기자 2016.08.19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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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첫 여성 헌법재판관 탄생…헌법재판소장 지명됐다 여야 갈등으로 철회되기도

전효석 전 헌법재판관. 그는 2003년 8월19일 여성 최초로 헌법재판관으로 임용됐다./사진=뉴스1전효석 전 헌법재판관. 그는 2003년 8월19일 여성 최초로 헌법재판관으로 임용됐다./사진=뉴스1


13년 전 오늘…유리천장 타파한 엘리트vs 정치싸움의 희생양?
2003년 8월19일 한국의 최초 여성재판관이 탄생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사법연수원 동기(18기)인 전효숙 당시 특허법원 부장판사를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했다.

순천여고를 나온 전 전재판관은 1973년 이화여자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5년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판사로서의 커리어는 순탄했다. 당시 전 전재판관과 함께 일한 동료 판사들은 그를 '보수적이지만 합리적으로 판결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대법원 재판연구관, 수원지법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특허법원 부장판사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당시 한 보수지에서는 "우리나라 판사 비율이 11%가 넘는 상황에서 여성 헌법재판관이 임명된 것을 환영한다"고 논평하기도 했다. 특히 그가 지명되기 5개월 전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이 임명된 상황이었다. 여성 법조인의 법조계 '유리천장 깨뜨리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전 전재판관에게 시련이 찾아온 건 뜻밖에도 행정수도 이전 문제 때문이다. 이듬해 노무현 정부의 제1공약이던 행정수도 이전이 위헌인지를 가리는 판결에서 헌법재판관 9명 중 유일하게 "위헌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것. 전 전재판관은 다수 의견에서 수도 이전이 관습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한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 판결 때문에 전 전재판관은 당시 야당 및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한 세력으로부터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2006년 8월16일 노 전대통령이 임기를 마친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의 후임으로 전 전재판관을 지명한 뒤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진보 진영에서는 첫 여성 헌법재판소장이 임명되는 것에 크게 환영했지만 일부에선 반발이 심했다. 노 전대통령이 2008년 임기를 마치는데 자신의 구미에 맞는 인사를 헌법재판소장으로 앉히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히 나왔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절차적 문제. 전 전재판관이 지명되기 직전 헌법재판관을 사임한 것 때문이었다. 전 전재판관은 헌법재판소장의 임기 6년을 보장받고 후임 재판관 지명을 위해 청와대와 상의 후 사직했다.


조순형 당시 새천년민주당 의원은 헌법 111조에 명시된 '헌법재판소장은 국회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 한 사람을 지정한다'는 내용을 들었다. 전 전재판관이 사임해 민간인 신분이라는 것을 문제삼은 것이다. 한나라당도 조 전의원 논리에 동참했다.

이후 국회에서는 절차를 보완한 후 국회 표결에 붙일 것을 제안했지만 한나라당은 이를 거부했다. 결국 4개월 넘게 전 전재판관 임명건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 여당에서 임명동의안 표결을 강해하려 하자 한나라당은 국회 본회의장 단상을 점거해 표결을 막았다. 결국 그해 11월 노 전대통령은 지명을 철회했다.

전 전재판관은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행정수도 위헌 결정 후 전 전재판관은 서울대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국회가 고도의 정치적 사안을 정치로 풀기보다 헌법재판소에 무조건 맡겨서 해결하려는 자세는 헌법재판소에 부담스럽다"고 밝히기도 했다.

헌법재판소장 지명 철회 이후 사퇴의 변에서 "일부 의원은 독자적인 법리만 진리인 양 강변하면서 자신들의 요구대로 보정한 절차도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자신의 임명동의 처리안 표결이 무산된 데 대해 "다른 국회의원들은 물리적인 의사진행 방해행위를 수수방관하면서 동의안을 상정조차 하지 않고 정쟁만 계속했다"며 "문제가 어렵다고 풀지 않고 출제철회를 바라며 임명동의안 처리를 장기간 미뤄 두는 것 역시 국회가 헌법과 헌법재판소를 경시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전 전재판관은 이듬해인 2007년 모교로 돌아갔다. 2015년부터 이화여대 법학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2013년 여성 최초로 4기 양형위원장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양형위원회는 양형 설정 기준을 정하거나 변경하기 위해 대법원에서 별도로 설치한 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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