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나는 글에 매달려 글을 드러내는 여백을 놓치곤 한다. 여백에 숨은 안식과 은총을 잊곤 한다. 삶은 얼마나 모순인가.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여백을 두지 않으면 갑갑해진다. 그것은 빈 틈 없는 그림과 같다. 쉼표 없는 노래와 같다. 고요함 없는 음악과 같다.
다나하시는 말한다. "우리는 여백을 창조할 수 없다. 다만 여백이 살아나도록 해줄 뿐이다. 여백이란 우리들 자신의 내적인 힘이 표현된 것이다."
노자의 말을 빌리면 "세상의 만물은 모두 유에서 생기고, 또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 노자는 말한다.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이니 그 빈 틈이 있어 수레가 움직인다. 찰흙을 이겨 그릇을 만드니 그 빈 곳이 그릇으로 쓰인다. 문과 창을 내어 방을 만드니 그 빈 공간이 방으로 쓰인다. 그러므로 있는 것이 이로움(利)이 되는 것은 없는 것(無)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장자는 말한다. "쓸모없는 것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면 쓸모 있는 것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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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읽고 쓰고 걷는 것이 '쓸모 있는 것'이다. '이로움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읽고 쓰고 걸으면서 삶이란 캔버스에 선을 긋는다. 그림을 그린다. 그와 함께 내 안의 여백도 드러낸다. 나는 한 줄의 글에서도 나를 숨길 수 없다. 한 줄의 글 또한 내 삶의 여백에서 나온 것이니까. 그러니 책을 한 장 읽고, 글을 한 줄 쓰고, 걸음을 한 발 내딛는 나의 순간순간은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얼마나 결정적인가.
원하지 않는 일에 매달려 번다하게 살 때는 몰랐다. 그때는 삶 전체가 지루해서 '삶의 예술'이란 것을 눈치 챌 수 없었다. 나는 지루함을 감추기 위해 화려하게 그렸다. 지루함을 메우기 위해 빽빽하게 그렸다. 남들이 보기에 괜찮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나? 그것은 나의 그림이 아니었다. 나는 지루함이란 캔버스에 억지 그림을 그렸을 뿐이다. 영혼이 빠진 가짜 그림!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그림은 다르다. 이 그림은 내가 좋아서 그리는 나만의 그림이다. 내 삶은 지루하지 않다. 내 삶의 캔버스는 설레는 기쁨이다. 평화다. 그러니 내 그림엔 여백이 중요하다. 읽고 쓰고 걸으면서 비로소 나는 깨닫는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비워서 완성하는 경지가 있다는 것을. 읽고 쓰고 걷는 일조차 내려놓고 기쁠 수 있다는 것을. 애쓰는 마음을 내려놓은 무심의 일획이 전부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을 '빼기'를 통해 발견했듯이 삶을 그리는 예술 또한 '비우기'가 핵심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