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공화국]'정례행사' 특별사면…욕 먹는 이유

머니투데이 박보희 기자 2016.08.14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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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사전교감형'부터 '속전속결형'까지…"사면심사위 독립성 확보해야"

김현웅 법무부장관이 1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광복 71주년 특별사면 대상자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스1 김현웅 법무부장관이 1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광복 71주년 특별사면 대상자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스1


정부는 12일 광복절 71주년을 맞아 특별사면 대상자를 발표했다. 13일자로 단행된 이번 특별사면 대상자는 총 4875명으로 이재현 CJ그룹회장 등 경제인 14명이 포함됐다.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형벌을 면제하는 것을 말하는데 특별사면과 일반사면으로 나뉜다. 일반사면은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특별사면은 국회 동의 없이 대통령 권한으로 단행할 수 있다. 그래서 특별사면을 할 때마다 법치주의 훼손과 특혜 시비에 대한 논란이 이어져왔다. 예외적이어야 할 특별사면이 매년 정례행사처럼 이뤄져왔기 때문이다.



고문현 숭실대 법대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의 특징의 일환으로서 사면권 행사의 통제방안'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특별사면에 대해 "정례화된 파격과 빈번한 예외는 정격과 원칙을 유린하는 무경위와 무원칙일 뿐"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사전교감형'…'특별사면' 미리 알고 재판 포기?



정부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특별사면하며 "지병 악화 등으로 사실상 형 집행이 어렵다는 전문가 의견을 감안해 인도적 배려, 국가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의미에서 사면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신경근육계 유전병인 '샤르콧 마리투스(CMT)'와 만성신부전증으로 병원에 입원중이다.

1657억원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과 벌금 252억원을 선고받은 이 회장은 지난 7월 재상고를 포기했다. 대통령이 광복절 사면 실시를 밝힌 직후 재상고 포기 의사를 밝히자 일각에서는 특별사면에 대한 사전 협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형이 확정이 돼야 특별사면 대상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 회장 사면에 대한 기대감으로 특별사면 명단이 발표되기도 전 CJ (122,000원 ▲700 +0.58%)그룹 주가는 상승세를 기록했다.

그동안 고위 공무원이나 재벌들이 재판을 포기하면 정부와 특별사면에 대한 사전 교감 하에 형을 조기 확정시킨 후 사면을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2007년 국정원 불법 감청을 묵인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신건 전 국정원장은 상고를 취소하고 5일만에 특별사면을 받았다. 뇌물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알선수재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등도 재판을 포기하고 형을 확정시킨 뒤 특별사면을 받았다. 문채규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논문 '특별사면의 정상화를 위한 법제적 정비'에서 이같은 예를 들며 "청와대에서 사면의 언질을 받고 미리 형을 확정시키기 위해 상고를 취하한 것으로 볼 여지가 다분하다"고 비판했다.

확정판결문 잉크 마르기도 전에…'속전속결형'

'확정판결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단행된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대표적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무기징역을,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징역 17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지만 8개월만에 사면을 받았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8년8개월의 징역을 선고받고 7일만에, 비자금 사건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는 형 확정 후 20일만에 특별사면을 받았다.

이같은 '속전속결형' 특별사면이 정례행사처럼 이뤄지는 것이 또다른 범죄를 키운다는 비판도 있다. 특별사면을 받은 이들이 재범으로 형을 받고 또 다시 특별사면을 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14년 배임·횡령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앞서 1994년에는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지만 그 이듬해 특별사면을 받았다. 이후 2007년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술집 종업원을 폭행해 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지만 역시 1년만에 다시 특별사면됐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두 번의 특별사면을 받았다. 특히 2009년 이명박 정부는 이 회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는 이유로 특별사면을 결정했다. 이때 특별사면을 받은 이는 이 회장 한 명이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김영삼 정부 때만 두번, 노무현 정부 때 한번 등 세번의 특별사면을 받기도 했다.

유명무실 '사면심사위'…"독립성 확보 필요"

1948년 사면법이 제정된 이후 이같은 지적이 끊이지 않자 2008년 정부는 사면법을 개정해 특별사면 대상자의 적정성 등을 심사하는 사면심사위원회(사면심사위)를 만들었다.

문제는 사면심사위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여부다. 사면법에 따르면 사면심사위는 위원장인 법무부장관을 포함해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위원은 법무부장관이 임명하거나 위촉하되, 4명 이상은 공무원이 아닌 위원으로 구성해야 한다. 법무부는 이번 특별사면을 앞두고 지난 8일에야 그동안 공석이었던 사면심사위원 두자리를 채웠다.

전문가들은 사면심사위의 독립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3인을 추천하는 방안, 현재는 5년동안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사면심사위 회의록을 사면심시후 즉시 공개하는 방안 등을 제안한다. 문채규 교수는 "독립성이 확보된 사면심사위를 구성하는 것이 선결과제"라며 "신청단계에서부터 국민의 감시와 견제를 받을 수 있는 사면신청절차를 두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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