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통령이 말한 '은행의 유일한 생존 방안'은?

머니투데이 이병찬 이코노미스트 2016.08.1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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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고르기]은행 대면(창구)거래는 10.3% 불과, 재택근무제 확대해야

편집자주 변동성이 점점 커지는 금융경제 격변기에 잠시 숨고르며 슬기로운 방향을 모색합니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박근혜 대통령이 5일 은행 최초로 재택근무제를 도입한 신한은행 역삼동 스마트워크센터를 방문한 자리에서 재택근무제를 두고 “우리 금융기관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는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의 환경 악화에 따른 절박한 상황 인식을 보여준다.

일본의 빅3 은행(미쓰이스미토모은행, 미쓰비시도쿄UFJ은행, 미즈호은행)이 대대적인 재택근무체제를 도입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나머지 은행들도 신한은행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일본은행에 재택근무가 급격히 확산되는 이유는 두가지다. 일본 베이비붐(단카이;團塊, 1947~49년생 678만명) 세대의 급격한 은퇴로 최근 5년간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460만명이나 감소하는 상황에서 은행인력부족 현상을 해소하고, 더불어 저성장 저금리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개선하고자 함이다.

우리나라의 베이비붐(1955~1963년생, 728만명) 세대는 일본에 비해 8년의 시차가 있고 비교적 장기간에 분산돼 있어 인력 부족으로 인한 재택근무의 시급성은 일본에 비해 약한 편이다.



그러나 은행 인력의 고령화와 고용 및 임금 체계의 비탄력성에 따른 인건비 상승, 저금리로 인한 순이자마진(NIM)의 지속적 하락 등 수익성 악화를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가 마땅치 않은 상황을 감안하면 재택근무제는 매우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은행 대면(창구)거래가 10.3%(2016년 6월중 입출금 및 이체 거래 기준)에 불과한 점과 스마트 사무환경 및 핀테크의 혁명적 발전은 전통은행체제의 전면적인 개편을 압박한다. 이 과정에서 재택근무제는 은행산업 패러다임 급변의 충격과 저항을 흡수하면서 이해당사자 모두가 윈-윈 하는 효과적인 제도가 된다.

재택근무로 치러야 할 은행의 비용은 크지 않다. 컴퓨터나 인터넷 시설 비용과 원격근무에 따른 인사관리 비용 그리고 인터넷 취약 계층의 불편 정도이다. 그러나 원격 근무 시스템을 잘 활용하면 대고객 접근성이 강화되므로 취약계층의 불편함은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반면 은행이 받는 혜택은 상당해 보인다. 사무 공간의 유지 및 관리 비용 절감, 유연 근무시간제를 통한 연장 근무수당 소멸, 24시간 업무 및 고객서비스 연속, 이에 따른 생산성 향상과 유휴 전문인력의 용이한 활용 등이다.

직원의 경우도 근무 환경 변화에 따른 일시적인 심리적 부담 외에는 손해 볼 것이 없다. 출퇴근·회의·식사·야근 등에 수반되는 금전·시간·심리적 비용 절감, 고정된 근무 공간·시간·인간 관계로부터 유연성 제고, 자기개발 및 사적업무 여유 확보 등 삶의 질이 한 단계 향상되는 계기가 된다.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도 본지점 위치에 따른 지리적 구매력에 의존하는 중소상공인의 영업 축소를 제외하면 사회 전체의 혜택 증가는 이를 보상하고도 남는다.

교통량의 분산으로 에너지,탄소,교통사고,시간낭비로 지출하는 사회적 비용이 상당 부분 절감된다. 직업 문화가 업무와 기능 중심으로 급변하면서 연령,성별, 학력,장애 유무의 사회적 차별이 급격히 쇠퇴할 수 있다.

이처럼 재택(원격)근무 제도는 그 장점과 필요성에 대하여 의문의 여지가 없다. 다만 그 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할 인프라의 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21세기 ICT의 폭발적 발전은 재택근무의 인프라를 충분히 갖추게 한다.

이에 따라 선진 각국의 재택근무제 도입 비율은 급증하고 있다. 미국 인사관리학회(SHRM)가 지난 6월 발간한 20주년 기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내 재택근무제(telecommuting) 도입 기업의 비율이 1996년 20%에서 2016년 60%로 20년 만에 3배 증가했다.

일본의 경우도 재택근무 도입 기업의 비율을 2020년까지 34.5% 수준으로 올리는 목표를 지난해 6월 국무회의에서 결의한 바 있다. 이에 부응해 세계 1위 자동차 생산업체인 도요타는 올해 8월부터 2만5000명을 대상으로 주1회 2시간만 출근하는 재택근무를 실시했다.

그러나 지난달 28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재택근무제 도입 기업의 비율은 고작 3.0%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ICT 수준과 업무 여건에 비하여 너무 낮은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개인적인 일상생활은 모바일 기기를 통해 장소와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의사소통하는 게 더 효율적이고 일반적인 현실이 돼 버렸다. 직장생활도 조금만 전향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생각한다면 정해진 장소와 시간의 제약을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다.

이번 신한은행의 재택근무 도입이 사회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누구도 거부하기 어려운 시대적 흐름이다. 이왕 도입해야 한다면 다른 은행들도 보다 적극적이고 심도있게 그리고 신속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특히, 고임금, 저생산성, 고용경직화, 핀테크혁명 등으로 위기에 처한 은행산업으로서는 재택근무가 매우 효과적인 전략방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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