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의 여왕이라고 부르고 싶지만 그는 일본 에도 시대를 그린 역사물도 기막히게 그려내고 가끔 SF나 판타지를 별미처럼 보여준다.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대명사로 떠오를 만큼 시대를 막론하고 사회의 구조적 아픔을 제대로 녹여낸다. 이 책처럼 '슈퍼내추럴'한(초자연적인) 이야기에도 서늘한 현실을 건드린다.
그녀의 그림은 황량하고 싸늘한 광장이다. 그림에 영혼이 담긴다면 그녀의 영혼은 삭막할 게 분명하다. 이들을 둘러싼 중학생 친구들은 잔인하고 비정하다. 함께 있는 장면을 들키기만 해도 신까지 따돌림당할 게 분명한 그런 아이가 파트너라니.
여기에 아이가 한 명 더 등장한다. 그림 속 아이다. '사라진 왕국의 성' 마냥 쓸쓸한 고성의 첨탑 창 너머에 있는 여자아이. 대체 그녀는 왜, 언제, 어떻게 그림 안으로 들어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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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소녀의 모험은 그림을 탐구하고 그림 속 성을 바라보고 성 안의 여자아이를 발견하고 그리고 또 다른 인연에 부딪히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그림에 들락거리는 일도 불안함과 긴장, 짜릿함을 동반하지만, 현실 세계는 훨씬 더 냉정하다.
단단한 껍질로 무장한 시로타의 사연도 이들이 풀어나가는 비밀도 가슴 한편을 아리게 만든다. 세상은 때로 작은 관심, 소소한 배려로 바꿀 수 있을 텐데 다들 어찌나 무심한지. 반면 그들의 무모한 도전을 응원하게 되는 것은 사심 없는 ‘인정’, 인간의 정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 아닐까.
미미 여사는 언제나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을 치장하지 않고 보여준다. 늘 그렇듯 먹먹함과 따뜻함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어린아이 판타지 같은 얘기로도 독보적 사회파 작가의 면모를 드러낸다. 평범하고 행복한 소년이 평범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소녀와 소통하는 과정, 그들의 닮은 모습과 다른 모습을 확인하는 것도 쓸쓸하지만 가슴에 남는다. 어느 주말, 한달음에 완독. 잘 읽힌다.
◇ 사라진 왕국의 성=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북스피어 펴냄. 380쪽/ 1만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