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팍에 묻은 기다림들…사회가 함께 안아야할 상처

머니투데이 좀비비추 동네북서평단 시인 2016.07.30 03:10
글자크기

[동네북] <7> '비단길'…7개표정의 7가지 같은 상처 이야기

편집자주 출판사가 공들여 만든 책이 회사로 옵니다. 급하게 읽고 소개하는 기자들의 서평만으로는 아쉬운 점이 적지 않습니다. 속도와 구성에 구애받지 않고, 더 자세히 읽고 소개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래서 모였습니다. 머니투데이 독자 서평단 ‘동네북’(Neighborhood Book). 가정주부부터 시인, 공학박사, 해외 거주 사업가까지. 직업과 거주의 경계를 두지 않고 머니투데이를 아끼는 16명의 독자께 출판사에서 온 책을 나눠 주고 함께 읽기 시작했습니다. 동네북 독자들이 쓰는 자유로운 형식의 서평 또는 독후감으로 또 다른 독자들을 만나려 합니다. 동네북 회원들의 글은 본지 온·오프라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가슴팍에 묻은 기다림들…사회가 함께 안아야할 상처


실크로드, 비단길은 옛 중국 상인들이 서역으로 비단을 팔기 위해 다녔던 길이다. 6400km에 달하는 대장정으로 타클라마칸이라는 사막을 건너가야 하는 멀고도 험한 여정이다.
가슴팍에 묻은 기다림들…사회가 함께 안아야할 상처
아이러니하게도 비단처럼 매끈하고 부드럽기는커녕 죽음을 감수해야 하는 이름, 비단길.

처음 책 제목인 '비단길'을 봤을 때 슬픈 이야기가 도사리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나다를까 '비단길'에 놓인 일곱 개의 단편은 우리 한국의 역사적 사건 6.25 전쟁과 맞닿아 있었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이념과 피의 전쟁, 민족과 혈연이 얽히고설킨 문제들이 이야기를 끌어안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한국사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는 개인의 아픔이 결국은 우리 사회에 깔린 상처였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형과 함께 간 길'은 초등학교 4학년 아이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직 전쟁이 끝나기 전 경상북도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군대에서 잠깐 휴가차 내려온 형과 동생이 어머니와 할머니가 계신 고향 금곡리로 걸어가면서 나눈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형과 동생의 나이 차이도 있거니와 떨어져 지낸 기간이 길다 보니 40리 길을 걸어가면서도 서먹할 수밖에 없었다.

철학공부를 한 형은 어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했지만 이념차이로 인해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는 있었다. 그리고 '나'가 가장 궁금한 건 형이 메고 있던 군용 백이었다. 그러나 집에서도 군용 백에 담긴 물건을 풀지 않았다.



길을 걸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안에는 전우의 유골이 들어있었다. 전우의 집에 유골 상자를 전해주러 고향에 잠시 들른 것이었고 그 길이 형의 마지막이 됐던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의 운명에 대해 묵시적으로 암시하는 기회가 한 번쯤은 있다"고. 부모님은 이미 형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얼마나 끔찍한 예감인가. 자식의 죽음을 예견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라니. 한 개인의 죽음은 결국 우리 사회의 아픔이자 상처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비단길'은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김영환씨 가족의 이야기이다. 김영환씨 가족은 대한적십자사에서는 6.25 전쟁 때 납북한 이산가족으로 등록됐고 연고제로 인해 사회적 불이익을 당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그런 이유로 이산가족상봉 대열에 들어가게 되었다. 북에 있는 아버지가 만남을 제의한 것이다. 어머니를 비롯한 고모와 아들 영환씨, 손자 선재씨가 상봉 자리에 나가기로 한다.

드디어 가족이 만나는 자리. 그러나 아버지 앞에서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저 음식을 남편 앞으로 밀어 넣을 뿐이다. 그리고 아버지와 헤어지고 돌아온 어머니는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고 만다. "이 길로 임자 따라나서서, 쌀밥에 고기반찬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어머니는 이 애절한 절규가 담긴 말을 끝으로 세상을 떠난다.

이 이야기는 뒤에 오는 '기다린 세월', '울산댁'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어진다. 언제 돌아올지, 생사를 모르는 하염없는 기다림. 그 세월을 눈물과 한으로 살아내야 했던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들의 가슴팍이 문장마다 새겨져 있다. 바늘로 찌르듯이 아픈 가슴을 내내 쥐어 안고 살아왔던 세월이다.

전쟁을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로 기억하는 때가 올 것이다. ‘비단길’을 통해 전쟁이 얼마나 우리 삶에 황폐와 슬픔을 불러오는지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 비단길= 김원일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278쪽/1만3000원.

가슴팍에 묻은 기다림들…사회가 함께 안아야할 상처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