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사무총장이 뭐기에

머니투데이 김태은 진상현 구경민 ,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기자 2016.07.05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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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종합

바람잘날 없는 당 사무총장, '독이 든 성배'
[런치리포트]사무총장이 뭐기에


여야 정당의 사무총장들이 논란의 중심에 서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당 장악을 위한 세력다툼이 사무총장직을 두고 표출되는 양상이다. 당의 인사와 재정, 공천까지 막강한 권한을 가졌지만 계파 간 이전투구 한복판에서 자칫 직격탄을 맞을 수 있는 ‘독이 든 성배’ 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4일 정치권에 따르면 최근 사무총장 경질을 두고 홍역을 치른 새누리당 상황은 지난해 사무총장 임명을 둘러싼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내분 사태의 판박이다. 계파안배 요구가 사무총장직을 중심으로 분출됐으나 오히려 계파갈등에 기름을 끼얹는 빌미가 됐다. 당초 사무총장의 임면권은 당 대표에 있고 당 대표가 사무총장을 통해 당 장악력을 강화하는 구조지만 극심한 계파갈등으로 이 같은 구조가 작동하지 못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지난해 6월 들어선 ‘문재인 대표 체제’가 계파 안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측근인 최재성 사무총장의 임명을 강행한 것이 발단이 됐다. 비주류 측이 이에 거세게 반발하면서 탈당 도미노가 시작되고 결국 분당 사태를 초래했다. 이와 달리 새누리당은 친박(친박근혜)계의 지지를 받은 김희옥 비상대책위원장이 비박(비박근혜)계의 권성동 사무총장을 임명해 표면적으로는 계파 안배를 이뤘다. 그러나 탈당파의 복당 여부 등 친박과 비박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에서 사무총장이 임면권자인 비대위원장와 갈등을 빚고 사무총장 경질로까지 번져 계파안배란 취지를 무색케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양상은 다르지만 선거나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 조직관리를 총괄하는 사무총장의 강력한 권한을 둘러싼 계파싸움이란 공통점이 있다. 사무총장은 원내외 당협위원장을 대상으로 당무감사를 실시할 수 있다. 당무감사 결과 당협위원장의 유지나 교체 여부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에 공천이나 전당대회 조직표 확보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새누리당의 사무총장 경질 시도 역시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비박계에 유리한 당협위원장 교체를 막아야 한다는 친박계의 의도가 작용했다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사무총장은 이 뿐 아니라 각종 선거의 공천 실무를 총괄하는 공천관리위원회 구성에도 깊이 관여한다.

당 대표가 임명하는 사무총장에 지나치게 많은 권한이 집중돼 있는 것이 정당 민주화 추세와 맞지 않아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당이 총선 홍보비 의혹에 휘말리면서 그 중심인물로 박선숙 전 사무총장이 지목된 것이 대표적이다. 박선숙 전 총장은 김수민 비례대표 의원이 대표로 재직한 업체와의 거래에서 리베이트 수수를 주도했다는 혐의와 함께 김수민 의원의 비례대표 공천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공천과 당 재정관리 등의 권한을 한꺼번에 쥐고있는 만큼 당내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에 사무총장이 책임을 피해가기 힘든 점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말 지난해 말 새정치민주연합 당권재민혁신위원회가 마련한 혁신안에 따라 당 사무총장제를 폐지하고 대신 5본부장이 사무총장의 역할을 나눠맡도록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는 “사무총장에게 권한이 비대하게 집중돼 있다보니 계파정치의 핵심으로 부각돼 권한 분산이 필요하다”며 사무총장제 폐지 필요성을 밝혔다. 그러나 최근 당무 효율화를 위해 사무총장제를 부활하는 방향으로 혁신안을 수정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는 당내 민주화에 역행한다며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힘쎈 사무총장 논란, 현 정당구조 한계 축소판


국민의당 리베이트 의혹의 핵심인물로 떠오른 박선숙 국민의당 의원이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던 중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지난 총선 당시 국민의당 사무총장이자 회계책임자였던 박 의원은 김수민 의원, 왕주현 사무부총장과 함께 허위계약서를 작성해 홍보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받는 과정에서 사전 논의 및 지시를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2016.6.27/뉴스1  국민의당 리베이트 의혹의 핵심인물로 떠오른 박선숙 국민의당 의원이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던 중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지난 총선 당시 국민의당 사무총장이자 회계책임자였던 박 의원은 김수민 의원, 왕주현 사무부총장과 함께 허위계약서를 작성해 홍보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받는 과정에서 사전 논의 및 지시를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2016.6.27/뉴스1

당 사무총장 논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원내정당으로의 정당 개혁이다. 당원과 일반 국민이 직접 투표로 뽑는 원외 당 대표가 공천권을 쥐고 당을 좌지우지 하고, 그 실무라인의 중심에 사무총장이라는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당이 원내정당화되고 시스템 공천 혹은 상향식 공천으로 공천이 당 대표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당 사무총장의 역할과 권한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된다.

4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사무총장직을 폐지하고 5본부장 체제로 전환을 시도했던 것은 지난 20대 총선의 공천을 앞두고 당내 계파간의 알력이 극대화됐을 때다. 앞서 문재인 대표가 지난해 6월 측근인 최재성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하려 하자 비노(비 노무현)계에서 반발했다. 최 사무총장이 친노(친 노무현)계를 등에 업고 대대적인 공천 물갈이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사무총장의 공천 영향력을 줄이지 않고는 당내 계파 갈등을 해소할 수 없다고 보고, 당 혁신위원회가 자구책으로 내놓은 안이었다.

새누리당도 지난 2014년 보수혁신위원회에서 원내정당화 방안이 추진된 바 있다. 당시 김세연 의원이 중심이 돼 마련했던 안은 현재의 당은 원외 정당으로 축소돼 선거기획, 인재 발굴, 홍보, 교육 등의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원내 정당은 원내대표를 당의 상징적 얼굴로 하면서 정책정당으로서 면모를 강화해 나가도록 했다. 또 원내대표의 권한은 국회 상임위원회로 대폭 이양해 상임위 단계에서 실질적인 의사 결정이 이뤄지도록 했다. 대신 상임위는 지금처럼 전체회의 중심이 아니라 입법과 예산을 동시에 관장하는 소위 중심주의로 나가는 방안이다. 당 지도부가 없어지고 원내대표의 권한도 대폭 축소돼 정당에서 국회로 입법부의 권력이 옮아가는 모양새다. 당 지도부의 힘이 개별 의원과 중진 의원들에게로 고루 나눠지는 구도다.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회가 이런 방안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시 김무성 대표가 공천권을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국민공천제 도입’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공천권을 내려놓지 않는 한 당은 공천을 주도하는 당 대표와 이를 실행하는 사무총장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원내대표가 원외 당 대표의 힘을 능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원내정당으로의 개혁 시도는 번번이 좌절됐다. 새누리당의 원내정당화는 제대로 논의 테이블에도 오르지 못했고, 김 전 대표가 추진했던 국민공천제 역시 실현되지 못했다. 더민주도 최근 차기 대선을 앞두고 효율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사무총장직을 부활시키기로 했다.

이처럼 원내정당화가 쉽지 않은 것은 그만큼 공천권을 내려놓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정한 공천룰을 만들기도 쉽지 않고, 공천권을 내려놓는 것 자체를 놓고도 이해관계가 갈리는 탓이다. 하지만 정치권과 학계 등에서 일하는 국회, 정책 정당으로 가기 위한 해법으로 원내정당화가 꾸준히 거론되는 만큼 20대 국회에서도 관련 논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사무총장의 저주…선거 직전에 맡으면 낙선?

[런치리포트]사무총장이 뭐기에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사무총장으로 선거를 지휘했던 황진하 전 사무총장이 지난 4·13 총선에서 낙선했다. 이로써 새누리당은 18대부터 20대까지 내리 사무총장이 총선에서 패하는 불명예를 이어가게 됐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총선 때 사무총장을 맡으면 낙선한다, 사무총장의 저주"라는 말이 나온다.

'사무총장의 저주'가 시작된 것은 친이계(친이명박계) 핵심이었던 이방호 전 한나라당 의원이 낙선하면서다. 이 의원은 18대 총선에서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친박(친박근혜) 공천 학살'을 주도했다. 이후 본인은 새누리당의 텃밭인 경남 사천에 공천을 받아 출마했지만 강기갑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패했다. 19대 총선에서 공천을 신청했지만 탈락하자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했다. 이 전 의원은 2014년 6월 재입당해 20대 총선에도 출사표(경남 사천남해하동)를 냈지만 공천에서 배제됐다.

19대 총선 때 새누리당 사무총장으로 선거를 이끌었던 3선의 권영세 전 의원(서울 영등포을)도 당시 민주통합당 신경민 후보에게 패했다. 권 전 의원은 이번 총선에 다시 출사표를 던졌지만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꺾지 못했다.

'사무총장의 저주'는 20대 총선에서도 이어졌다. 황진하 전 사무총장은 박정 더민주 의원과 접전을 벌인 끝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선거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황 사무총장이 더불어민주당 박정 후보를 10%포인트가량 넉넉하게 앞서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던 터라 충격도 컸다.

사무총장의 징크스는 야당 사무총장에게도 적용된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사무총장을 맡은 강운태 전 의원은 당시 열린우리당 지병문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2008년 통합민주당 사무총장 신계륜 전 의원은 공천에서 탈락해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또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 임종석 사무총장은 총선 후보와 사무총장을 동시에 사퇴했다. 당시 임 사무총장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음에도 서울 성동을에 단독 공천되자 당 안팎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자리에서 물러났다.

최근에는 국민의당 박선숙 전 사무총장도 리베이트 의혹의 핵심 인물로 떠오르면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이번 총선과정에서 선거 홍보업체 2곳으로부터 총 2억382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고 이와 관련해 선관위에 허위로 회계보고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다.

정치권에서는 '사무총장의 저주'를 막강한 정당내 역할과 권한이 부여되는데 있는 것으로 본다. 정당의 사무총장은 '정당 살림꾼'으로 당 대표와 원내대표, 정책위의장에 이어 당내 4번째 서열이다. 당 대표가 임명하며 당 사무처의 인사와 재정, 당의 조직과 금고를 관리하기 때문에 권한이 막강하다.

특히 총선에 앞서 사무총장의 위상은 더 높아진다. 선거에서 뛸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짓는 공천의 당무심사를 하고, 공천관리 기구 구성과 운영에 깊이 개입해서다. 때문에 사무총장 인선은 계파 간 치열한 기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고, 공천 등을 둘러싼 잡음에 시달리기도 한다. 또 공천과 선거 자금 관리에 당내 갈등까지 일어나다보니 정작 본인 선거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점도 '사무총장 징크스'로 이어지는 이유 중 하나다. 막강한 권한이 '낙선'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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