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 전 오늘… 프랑스에 방치된 책 한권, 인쇄역사 바꾸다

머니투데이 이미영 기자 2016.05.29 05:56
글자크기

[역사 속 오늘] 고(故) 박병선 박사 197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서 직지심체요절 발견

직지심체요절 중 일부. /사진=위키피디아직지심체요절 중 일부. /사진=위키피디아


44년 전 오늘… 프랑스에 방치된 책 한권, 인쇄역사 바꾸다
1972년 프랑스 파리의 국립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중년의 동양 여성이 한자로 된 서적을 뒤적거린다. 프랑스 땅을 밟고 난 후 이 여성은 줄곧 한문서적만 찾아 다녔다.

프랑스 소르본대학에서 역사학과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프랑스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하게 된 그의 목표는 오직 하나. 그의 스승이 부탁한 '조선왕조의궤'를 찾는 것이다. 1955년 32살 나이에 프랑스 땅을 밟은 고(故) 박병선 박사는 맹목적으로 의궤를 찾아 헤맸다.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도서관 한 구석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을 발견한 것이다. 꼬박 17년 만이었다.



이 책의 이름은 '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요절은 고려 우왕 때인 1377년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이다. 원래 명칭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심체요절'로 백운화상이 저술한 책을 그의 제자 석찬과 달담이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했다. 책의 주요 내용은 '참선을 통하여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볼 때 그 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직지심체요절은 그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도서의 해'에 출품되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전까지 최고(最故) 금속활자본은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제작한 성서였다. 하지만 그보다 78년이나 앞선 직지심체요절이 발견되면서 역사가 바뀌게 된 것이다.



프랑스에서 발견된 직지심체요절에는 우리나라 역사의 아픔이 담겨 있다. 직지심체요절은 조선시대 고종 때 주한 프랑스대리공사로 서울에서 근무한 콜랭 드 플랑시가 수집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프랑스 골동품 수집가였던 앙리베베르에게 넘어갔다가 그가 사망한 1950년 유언에 따라 프랑스국립도서관으로 이관됐다. 이 책은 상하 2권으로 돼 있지만 현재 남아 있는 것은 프랑스에 소장된 하권이다.

하지만 박 박사는 이 책을 발견한 후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프랑스에선 직지심체요절의 존재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홀로 매일 도서관에서 따가운 눈총을 견디며 고증작업을 해나가야 했다. 직지심체요절은 2001년 유네스코의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정부의 큰 도움없이 그의 집념으로 만들어낸 성과다.


직지심체요절 이후에도 1975년 박 박사는 프랑스가 병인양요 때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를 발견했다.

하지만 직지심체요절은 44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우리나라 국민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유물이 아니다. 아직 프랑스에 그 도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부와 민간단체는 프랑스에 반환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01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당시에도 한국문화유산으로 기록된 만큼 반환을 요구했지만 프랑스는 합법적으로 소유가 바뀐 것이라며 자신들의 소유를 계속 주장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직지반환추진위원회' 등 민간단체에서 반환을 요구하지만 큰 움직임으로 자리잡고 있진 못하다.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인 올해 각종 수교 행사가 열리고 있지만 직지심체요절 반환은 논의되지 못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