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자본확충 로드맵 어떻게 진행되나

머니투데이 권다희 기자 2016.05.03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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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3조원 늘려야 올해 BIS 비율 맞출 수 있어…한은→산은 자본확충 지원 법개정 불가피할 듯

산은 자본확충 로드맵 어떻게 진행되나


조선업에 대한 구조조정의 폭이 커지면 KDB산업은행(이하 산은)은 수조원의 자본을 확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산은이 자본을 늘리려면 한국은행(이하 한은)이 직접 산은에 출자하거나 최소한 산은이 발행한 조건부 자본증권(코코본드)을 직접 매입해야 한다.

산은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총자본비율을 지난해 말 수준인 14.16%로 유지하려면 올해 안에 최소 3조원 이상의 자본 확충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산은은 BIS 비율의 분모인 대출 등 위험가중자산이 지난해 21조원 늘었는데 올해도 같은 속도로 증가한다고 가정할 때 필요한 규모다.



산은이 보유한 자산(대출)이 부실화해 충당금을 더 쌓아야 하면 필요한 자본은 더 늘어난다. 충당금 적립으로 이익잉여금이 줄어 BIS 비율의 분자인 자기자본이 줄기 때문이다. 산은은 이미 지난 1분기에 ‘정상’이었던 한진해운 여신을 하향 조정해 여신 거의 전액에 해당하는 7000억원대의 충당금을 쌓았다. 지난해 4분기에는 현대상선 여신 전액에 대해 충당금을 적립했다.

양대 해운사가 최악의 상황에 빠졌을 때에 대비한 충당금은 자체 소화했지만 조선업에 대해서는 갈 길이 멀다. 3년째 자율협약(채권은행 공동관리) 중인 STX조선해양과 올초 자율협약을 신청한 한진중공업의 여신만 각각 1조9000억원과 5800억원이다. 4조원이 넘는 대우조선해양 여신에 충당금을 쌓는 최악의 상황마저 발생하면 산은은 추가로 수조원대의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 이대현 산업은행 정책기획부문장(부행장)이 지난달말 기자단 업무설명회에서 “산은에 필요한 자본확충 규모는 조선업 구조조정 폭에 달려 있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산은이 독자적으로 수조원대의 자본을 마련하기는 불가능하다. 산은의 자본확충 방안으로 △한은의 직접 출자 △한은의 산은 조건부 자본증권(조건부 신종자본증권·조건부 후순위채) 매입이 거론되는 배경이다. 자본으로 인정되는 조건부 자본증권에는 한도가 있지만 산은은 한도가 10조원으로 아직 8조6000억원을 더 발행할 수 있다.

문제는 산은이 1년 내에 수조원대의 조건부 자본증권을 발행한다면 금리가 급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조건부 자본증권은 만기가 길고 변제순위가 후순위인데다 발행기업이 경영난에 직면할 경우 원금이 상각되거나 주식으로 전환된다. 투자자 입장에서 리스크가 커 안 그래도 일반 회사채보다 금리가 높은데 수조원대의 조건부 자본증권이 시장에 풀린다면 금리가 급등할 수 있다. 산은의 이자 부담도 감안해야 한다.

한 증권사 채권담당 연구원은 “산은이 연간 1조원 가량의 조건부 자본증권을 발행한다면 국내 시장에서 소화하는데 큰 문제가 없겠지만 2조~3조원 가량을 발행한다면 소화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이 산은의 조건부 자본증권을 사는 방안도 있지만 이는 유통시장에서만 가능하다. 이 경우 한은이 유통시장에서 산은의 조건부 자본증권을 어느 정도 매입하겠다고 약정을 하면 기관투자가들이 2조~3조원 가량도 매입해 한은에 넘길 수 있지만 이에 따른 가격 왜곡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한은이 유통시장에서 매입하지 않고 발행시장에서 직접 매입하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지만 이는 법적 논란이 있다. 한국은행법 76조에 따르면 한은이 발행시장에서 직접 인수할 수 있는 채권은 정부보증 채권뿐이기 때문이다. 한은은 산은의 조건부 자본증권을 인수하려면 한은법을 개정하거나 산업은행법을 개정해 산은의 조건부 자본증권을 정부보증 채권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은의 직접 출자 역시 산은법의 자본금 규정에 한은에서 출자받을 수 있다는 조항이 없어 법 개정이 필요하다. 결국 어떤 방식이든 한은이 산은의 자본확충에 참여하려면 법 개정 절차는 반드시 진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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