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시인의 아내가 엮은, 산업역군 아버지의 이야기

머니투데이 김유진 기자 2016.04.30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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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국산 라디오 1호' 제작자 김해수씨의 일대기 '아버지의 라듸오'

박노해 시인의 아내가 엮은, 산업역군 아버지의 이야기


'얼굴 없는 노동자 시인' 박노해와 사랑에 빠진 딸. 그리고 '국산 라디오 1호'를 제작한 산업역군 아버지. 이 비극적인 조합은 서로의 마음에 참 많은 상처를 남겼다. 영화 '국제시장'의 흥행처럼 비극의 시대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고 상처들이 많이 봉합된 지금, 아버지는 더는 세상에 없다.

아버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했던 딸은 하늘로 보내는 긴 편지에 마음을 담았다. 아버지가 평생을 바쳤던 '라듸오'에 대해, 직접 남긴 육필원고를 정리해 한 권의 책에 담았다. 김해수씨의 '아버지의 라듸오'는 이렇게 책으로 탄생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딸 김진주씨(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중앙위원)는 아버지의 원고 속에서 지난 시절의 자부심, 그리고 딸이 겪은 고통으로 인해 변해가는 그의 세상에 대한 태도를 읽어내려간다. 직접 자신의 라디오 공장에 찾아온 박정희 대통령을 만난 뒤 전국적인 라디오 보급 정책이 시행되고, 이 과정에서 김해수씨에게 박 대통령은 '영웅'이 됐다.

그러나 딸과 사위가 민주화를 외치다 감옥에 잡혀들어가면서, 아버지이자 장인어른인 그는 거실 한가운데 영광스럽게 걸어뒀던 박 대통령의 '산업포상'을 거두어 서랍 속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딸이 걷는 길을 묵묵히 응원한다.



그는 자신의 아들 딸 세대가 온몸으로 부딪혀 이겨낸 고난으로 인해 우리나라도 민주국가 반열에 올랐지만, 아직도 보수 기득권에 안주하는 구세대의 영향력이 막강해 또 다른 고통을 초래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감당해야 할 새로운 시대의 무게를 덜어줄 수 있는 방도를 찾아내야만 할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어온 늙은 엔지니어의 눈에는 환하게 보이는, 이 진실의 전파를 수신하는 라디오를 설계할 만한 여력이 내게 남아 있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자신의 세대를 고집하지 않고 과오를 인정하며, 후대를 응원하는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어린이날인 5월 5일, KBS가 '과학의 날'을 맞아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를 특집 다큐멘터리로도 방영한다.


◇아버지의 라듸오= 김해수 지음. 김진주 엮음. 느린걸음 펴냄. 240쪽/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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