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날인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의 서울농학교를 찾아 투표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오전 10시 같은 장소. 김미정씨(87)가 딸의 손을 부여잡고 나타났습니다. 투표소에 들어가기 전 기자에게 "1945년 해방 이후 치러진 대선, 총선 등 선거에서 한 번도 빠짐없이 투표했다"며 "국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전했습니다.
#오후 5시59분. 투표 마감을 1분 남기고 학교 정문 앞에 택시가 끼익 멈춥니다. 신디킴씨(37)가 내리고 투표소로 전력질주 합니다. 안내원은 "이분까지, 이분까지"라며 안심시킵니다. 투표를 마친 그는 숨을 고른 뒤 "해외에서 줄곧 유학 생활을 해 왔고, 곧바로 주재원으로 일해온 탓에 이번이 내 인생 첫 투표"라며 "하마터면 못 할 뻔했는데 다행"이라고 합니다. 이윽고 투표소 문이 닫힙니다.
하지만 이 감동은 머지 않아 다소 잦아들었습니다. 전국 최종 투표율이 58%인 것으로 집계됐기 때문입니다. 이전 총선 때(54.2%)보다 많이 높아졌다지만 여전히 60%에 미치지 못하는 저조한 수치임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흔히 '선진국은 투표율이 낮은 게 당연하다'는 편견도 있지만, OECD 평균 투표율(2011년 기준) 70%를 넘는다는 걸 고려하면 우리의 58%는 더 초라해 보입니다. 그나마 2030 세대의 투표율이 이전보다 눈에 띄게 높아졌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아야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헬조선'(지옥을 뜻하는 '헬'과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조선'을 합한 신조어)이라는 좋지 않은 별명을 얻었습니다. 한 마디로 여기선 먹고 살기 힘든데 개선될 희망도 없다는 겁니다. 어느 때보다도 세상을 바꿀 정치의 중요성이 커진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정치인을 뽑는 투표에 그리 큰 관심을 갖지 않는 모양입니다. 현재와 미래를 비관하면서 바꿀 의지도 부족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설상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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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이게 "정치인은 그 X이 그 X이라 누굴 뽑든 세상은 안 바뀔 것"이라는 체념의 결과라면, 멀리 갈 것도 없이 1985년 실시된 우리나라의 12대 총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투표율은 84.6%로 높았습니다. 이는 군부 독재 시대를 마감하고 민주주의 시대를 여는 시금석이 됐습니다. 당장 내년에 있을 대선부터는 투표율이 치솟길 기대합니다. 헬조선을 끝내는 첫 걸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