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3배 중국으로…" 짐 싸던 조종사, 절반으로 줄었다

머니투데이 오상헌 기자 2016.04.1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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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항공사 인력수요 감소… 신분 불안·열악한 생활환경에 '유턴' 사례도

대한항공 여객기/사진제공=대한항공대한항공 여객기/사진제공=대한항공


국내 조종사들의 중국 항공사 이직 러시가 올들어 진정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항공사보다 2~3배 많은 고액 연봉에도 열악한 직업 안정성과 업무·주거환경 탓에 다시 한국으로 유턴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 이직 조종사 절반으로 '뚝'= 12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지난 1분기(1~3월) 대한항공 조종사 퇴직자(정년퇴임 제외) 수는 1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0% 가량 줄었다. 퇴직자 중 10명은 저비용항공사(LCC) 등 국내 항공사로 적을 옮겼고 7명은 중국 항공사로 이직했다.



지난해 대한항공을 떠난 조종사는 2013년(21명)과 2014년(16명)보다 6~7배 늘어난 122명에 달했다. 특히 베테랑 기장을 포함해 46명이 거액의 연봉을 주는 중국 항공사에 새 둥지를 틀었다. 빠른 기장 승급을 원하는 부기장들을 중심으로 75명은 국내 LCC로 이직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지난해 분기별로 평균 40여 명의 조종사가 퇴직했는데 올해 1분기엔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도 사정이 비슷하다. 아시아나는 2013년 12명이던 이직 조종사가 2014년 21명으로 늘었고 지난해엔 47명으로 배 이상 증가했다. 국내 LCC로 32명이, 중국 등 외국항공사로는 15명이 이직했다. 올 1분기 회사를 옮긴 아시아나 조종사는 10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분기별 평균(약 12명) 이직자 수를 대입하면 '엑소더스(대탈출)'가 소강 국면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연봉 3배 중국으로…" 짐 싸던 조종사, 절반으로 줄었다
◇中항공사 "연봉 3~4억" 조종사 싹쓸이= 지난해 국내 조종사들의 이직 행렬은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항공사들이 거액의 연봉을 미끼로 스카우트에 나선 영향이 컸다. 중국 항공사들은 국내 조종사 평균 연봉(1억4000만~1억5000만원)의 2~3배인 3~4억원을 제시하고 대거 채용에 나섰다.

지난해 10월 에어차이나의 화물운송 자회사가 연봉 28만 달러에 국내 조종사를 스카우트했고 베이징의 한 항공사는 A320 기종 조종사를 뽑기 위해 월 2만5000달러의 급여를 내걸기도 했다.

올 들어 국내 조종사의 이직 사례가 줄어든 이유 중 하나는 중국 항공사의 조종사 인력 수요가 일시적으로 줄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중국 항공사는 통상 외항사 조종사와 3년 단위로 계약한다. 지난해 한국은 물론 미국, 중동, 남미 등 전세계에서 인력 충원이 진행돼 올해 이직자수가 줄었다는 것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4~5년 전 국내 조종사가 대거 중국행을 택한 뒤 2014년까지 이직자수가 많지 않았다"며 "계약 주기를 고려하면 올해 이직 규모는 작년보다 많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연봉 많지만 신분 불안·환경 열악 '유턴'= 중국 '용병' 생활의 신분적 불안감이나 열악한 근무조건과 생활환경도 이직 조종사 회항의 배경으로 꼽힌다. 국내 항공사에선 65세까지 안정적인 조종사 생활이 가능하고 복지 수준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중국 항공사는 일정 주기마다 계약을 새로 갱신해야 해 직업 안정성이 떨어진다. 가족과 함께 떠난 일부 조종사 중에는 황사나 미세먼지 등 열악한 환경을 견디지 못 하고 유턴을 결심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한 항공사 임원은 "조종사 취업을 중개해주는 에이전시의 장밋빛 전망만 믿고 이직을 했다가 후회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며 "중국행을 선택했다 다시 국적 LCC로 적을 옮기는 조종사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국적 항공사 한 조종사도 "중국은 연봉이 높은 대신 비행능력심사와 신체검사가 까다롭고 엄격하기로 유명하다"며 "높은 급여가 이직의 중요한 고려사항이긴 하지만 다른 조건들 때문에 주저하는 동료들이 많다"고 말했다.

아시아나 여객기/사진제공=아시아나아시아나 여객기/사진제공=아시아나
◇"숙련 조종사 양성 통합프로그램 시급"= 업계에선 그러나 국내 조종사의 대량 이직 사태가 또 다시 표면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전세계적으로 조종사 '품귀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는 데다 급성장하는 중국과 중동 항공사의 조종사 수요가 여전하다는 점에서다.

조종사 부족 문제는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따르면 전세계 상업항공사의 항공기 운영대수는 현재 1만7000여 대 규모에서 20년 후엔 4만2000대 수준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ICAO는 이에 따라 35만명의 조종사가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중국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항공시장 성장세는 폭발적이다. 전문가들은 조종사 품귀가 안전 문제와 직결될 수 있는 만큼 정부나 항공업계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재철 한국교통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미국과 유럽의 경우 기초비행훈련 과정과 고등훈련과정 등 통합교육으로 숙련 조종사를 양성하고 있다"며 "국내 항공업계가 조종사 부족문제를 해결하려면 숙련 조종사 인력 확보를 위한 통합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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