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 현장에 답이 있다

머니투데이 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2016.04.06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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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 시평] 현장에 답이 있다


소위 잘 나가는 미국 드라마 가운데 자주 보는 것 중 하나가 ‘CSI: 과학수사대’ 시리즈다. 우선 기발한 수사기법으로 불법을 응징하는 것을 보는 카타르시스가 쏠쏠하다. 모든 범죄행위에는 지울 수 없는 흔적이 어디엔가 남아있다. 수사관들은 이것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이다. 결국 현장을 잘 보존하고 거기에서 수집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를 바탕으로 추적의 실마리를 찾아간다.

최근 한 재벌회장의 평전이 화제다. 선장으로 출발, 당대에 상당한 정도의 재벌로 성장한 인사의 얘기다. 이 평전을 관통하는 화두도 CSI의 예처럼 현장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이다. 거기서 응용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태풍이 몰려오면 모두 이것을 회피하는 데 전력을 기울인다. 일단 태풍이 지나간 뒤에는 어군이 몰린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알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어획량을 획기적으로 올리는 성과를 거둔다.



요즈음 민·관·학 정책협의회에 참여할 때마다 느끼는 점이 있다. 담당자들의 문제인식 깊이가 얕다는 것이다. 회의 준비 측이 현실을 잘 모르고 답을 대는 경우도 흔하다. 질문도 핵심에서 벗어난다. 대외관계 쟁점이 자주 그렇다. 외교부는 150여개 해외공관을 운영한다. 공관에는 정통 외교관뿐 아니라 각 부처 인사가 전문가로서 외교일선을 맡고 있다. 그런데도 현지의 살아있는 감이 본부에 전달되지 못하는 듯하다. 그 이유 중 하나가 현지에 파견되는 각 부처의 인사문제일 수 있다. 또 하나는 현지에서 열심히 보고서를 보내더라도 이를 본부가 전혀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다. 적어도 대외정책을 결정할 때는 현지와 조율을 꼭 거칠 필요가 있다.

또 하나가 지도자들의 자세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은 자주 농주를 마시면서 농민들과 교감을 높였다. 산업현장에도 불시에 들러 현장을 지키는 인사들의 긴장감을 높이고 그들을 격려하는 감동의 정치를 보여주었다. 독일 메르켈 총리도 현장을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중국 내 발탁인사에서도 한 가지 특징은 ‘지청인사’라는 것이다. 지청이라? 그게 뭐지? 아하! 지식청년의 줄임말로 도시 대학생들이 시골에서 농촌을 경험한 인사들을 얘기한다. 시진핑 주석도 이중 하나다. 더 중요한 이유는 지청인사가 책상물림의 모범생과 달리 문제의 핵심을 더 잘 이해하는 인사로 분류되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의 계절에 국회의원 후보들이 동네를 휘저으며 다닌다. 지하철을 타기도 하고 저잣거리를 둘러보면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선거라는 이벤트(행사)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슬그머니 없어질 일들이다. 지금의 지도자들은 행사장에 나타나 손 흔드는 이벤트에만 익숙한 것 같다. 참가자들의 마음을 진정 듣고 있는지는 별개 문제다. 미리 짠 각본에 따라 시나리오대로 써준 원고만 읽는 것이 아닌가 한다.

지난 주말 버스를 탔다. 점잖은 분이 따라 탔는데 잠시 안절부절했다. 요금이 얼마인지, 어떻게 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같이 탄 딸의 도움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 대화로 보아 고위직을 맡고 있거나 맡았던 인사다. 이래서야 서민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들의 애환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을까? 내수를 진작해야 한다는 구호를 외치면서도 공무원들이나 국회의원들이 얼마나 현장을 통해 실질적인 정책을 내놓고 있는지 궁금하다. 국회의원들을 포함한 고위 지도자들이 선거운동하듯이 현장을 지켜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했으면 한다. 많은 예가 현장에 답이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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