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 인공지능에 대한 오해

머니투데이 손동영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16.03.23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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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 시평] 인공지능에 대한 오해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세기의 대국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두 인공지능의 존재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고 인간의 패배를 접하며 심한 스트레스와 무력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기계가 인간을 능가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까운 미래에 인간의 직업 중 상당수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부터 “기계는 결코 꿈꾸는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는 희망적인 선언까지. 인간을 넘어서는 인공적 존재의 현실화 앞에서 사람들은 체념으로, 혹은 현실 부정으로 응대한다.

그런데 한 가지 놓친 게 있다. 기계는 이미 오래 전 인간을 추월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자동차보다 빨리 달릴 수 없고, 계산기보다 정확하게 열자릿수 나눗셈을 할 수 없으며, 컴퓨터보다 많은 것을 기억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초고화질 카메라는 우리 눈이 포착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여주고, 고가의 정교한 오디오는 실황연주보다 생생한 소리를 들려주며, 검색기 없이는 인터넷에서 어떤 것도 찾을 수 없다. 요컨대 우리는 꽤 오랫동안 감각기관부터 운동능력, 지적 계산과 추론에서 기계에 의존하며 살아왔다. 기계는 오래 전부터 예정된 과정을 따라 발전해왔을 뿐이다.



문제는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시점이 언제인지가 아니다. 이대로 인간이 기계에 의존한다면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이 어디쯤인가를 물어야 한다. 2012년 구글은 특정 소비자가 지불할 의사가 있는 최고 가격에 맟춰 시스템이 자동으로 가격을 조정하는 ‘동적 가격 책정’(dynamic pricing) 기술특허를 취득했다. 동일 상품에 어떤 소비자는 1만2000원까지 낼 의사가 있지만 다른 사람은 8000원이 최대치라면 균일가보다 사람에 따라 가격에 변화를 주는 게 더 효율적일 것이다. 소비자가 다른 사이트에 가서 자신이 손해 보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지 않을까. 그렇게 가격에 민감한 사람에게는 영민한 인공지능이 애초에 낮은 가격을 제시할 테니 문제가 없을 공산이 크다.

기계가 선택하는 세상에서는 공정함에 대한 우리의 감각도 달라질 수 있다. 성별을 구분해 서비스에 차별을 준다면 당장 성차별이라고 항의할 테고 젊은 소비자들에게 초점을 두면 노인들은 당연히 환영받지 못한다고 느낄 것이다. 이제 성별과 연령을 섞어 집단을 세분화해보자. 30대 여성, 40대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에 50대 여성이 차별이라고 느낄까. 그렇다면 이는 성차별인가, 나이에 따른 차별인가. 수천 가지 기준을 더하고 가중치를 주어 결과를 뽑아내는 알고리즘(algorithm)이 무언가를 골라줄 때 개인은 그것이 차별의 산물인지 여부를 알 수 없다. 단순한 구분과 사회적 차별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실제로 구글과 같은 검색엔진은 동일 검색어라도 사용자에 따라 다른 결과를 제시하는데 이때 어떤 정보로부터 자신이 배제되는지를 알기는 매우 어렵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어떤 목소리들이 묻히고 배제되는지, 누군가 이러한 ‘통계적 차별’의 희생양이 되지는 않는지 관심을 기울이기 어렵게 될 수도 있다.



‘배의 발명은 곧 난파의 발명’이라는 말처럼 효율적 선택을 위해 개발된 알고리즘은 동시에 효율적 배제를 의미한다. 알고리즘이 골라주는 식당에 가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뉴스를 읽으며 그렇게 만든 취향과 가치관이 전부인 양 착각하고 사는 동안 우리는 인간의 자유, 다양성, 공정함과 같은 중요한 사안들에서 강제로 멀어질 수도 있다. 정작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인공지능의 가공할 능력이 아니라 기계에 다가갈수록 더 많은 선택을 위임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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