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들이 정세영 셰프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즐기고 있다. /사진=이미영 기자
스페인 계란 요리인 토티아, 정 셰프만의 레시피로 만든 토마토 소스의 매운 닭요리, 그 외 요리를 위한 소스가 준비 중이었다. 정 셰프는 기자를 보자마자 "오늘 무지 바빠. 오늘 예약 손님만 20명이야"라며 손짓했다.
정 셰프는 2002년 서울에 처음 스페인 정통 레스토랑을 선보인 베테랑 요리사다. 사진작가인 그는 스페인에서 사진 작업을 하다 손에 익힌 스페인 요리 솜씨로 한국에 레스토랑을 냈다. 현재 자리잡은 서교동 가게는 그의 네 번째 가게다.
정 셰프는 연신 칼질을 하며 "오너셰프 레스토랑? 그거 말만 번지르르 한거지 돈 안된다. 돈 많이 벌겠다고 뛰어들면 100퍼센트 망하는 게 이 사업이다"라며 운을 뗐다. 이어 "특히 작은 가게일수록 사람 구하기도 힘들고 체력적 소모가 크다"며 "요리에 대한 애정 없이는 절대 못한다"고 말했다.
정 셰프의 가게는 약 130㎡ 남짓한 면적으로 한꺼번에 30명 정도 들어올 수 있다. 그는 이 가게에서 홀로 요리와 서빙을 한다. 혼자서 모든 일을 챙겨야 하다보니 점심영업은 엄두를 못낸다. 오후 5시부터 영업을 시작한다.
정세영 셰프가 직접 꾸민 가게 내부 모습. 그는 스페인 남부의 느낌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사진=이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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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영 셰프가 분주하게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 /사진=이미영 기자
정 셰프가 가게를 처음 열었을 때만 해도 직원 2명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 운영문제와 직원 사정에 따라 1명으로 줄였다. 1명 남은 직원마저 그만두겠다고 한 3개월 전부터는 정 셰프 혼자서 운영하고 있다.
마음은 편하지만 아쉬을 때도 종종 있다. 손님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영업이 시작되고 예약손님이 들이 닥치자 정 셰프는 손과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주방에서 움직였다. 총 2팀, 20명이었다. 각 테이블마다 요리 5가지를 순차적으로 내어갔다.
예약손님 외에 손님 4~5팀이 더 왔지만 받지 못했다. 정 셰프는 "사실 돈은 더 많이 벌고 싶지만, 내 페이스를 놓치면 다음날 영업에도 타격이 있고 손이 바빠 제대로 된 음식을 내가지 못하기 때문에 손님에게도 미안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가게 매출 한치 앞도 예측못해… 불황 여파로 매출 '뚝'
꽤 유명한 셰프인데다 기자가 온 날 장사도 잘 돼 매출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그의 답변은 의외였다. 정 셰프는 "가게에 손님이 하루종일 안 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손님이 많을 때와 아닐 때의 격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가게 운영에 불확실성이 크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소규모 레스토랑의 경우 단가를 낮추지 못하는 것도 큰 단점이다. 재료를 소량 살 수밖에 없고 수용할 수 있는 인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 쉐프 가게는 월세만 300만원이 훌쩍 넘는데 재료비, 인건비·재료비 등까지 포함시키면 월 1000만원에 가까운 비용이 든다.
그는 "서양음식의 경우 항신료 등 시중에 없는 재료가 많아 재료값이 비싼데다 대량으로 구입이 어려워 비용을 낮추기 어렵다"며 "일반적으로 소규모 셰프 레스토랑이 단가가 쎈 이유"라고 말했다.
이날 일일 아르바이트생으로 나선 기자가 설거지하고 있다.
손님이 식사를 마무리하고 나간 시간은 오후 9시쯤. 정 셰프와 기자는 한숨을 돌리기 위해 카운터 앞에 의자에 걸터 앉았다. 하지만 3분 정도 지났을까. 이젠 간단하게 한잔 걸치러 오는 손님들이 삼삼오오 들어오기 시작했다. 테이블 정리와 설거지가 시작됐다. 요리를 제외한 기본 서빙만 하고 있는데도 땀이 주르르 흘렀다.
정 셰프는 "가게 영업이 시작되면 쉴새없이 바빠서 물 한잔 못 먹는 경우도 있다"며 "혼자하는 식당이 쉬워보이지만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서 정 셰프는 최근 젊은이들이 레스토랑 개업을 쉽게 생각하고 접근하는 것에 대해 경계한다. 몸도 힘들고 불확실성이 커 생각보다 큰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신규로 들어선 레스토랑 중 1년도 채 안 돼 문을 다는 경우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마포구 일대에 주류를 납품하는 유통업자 관계자는 "젊은이들이 운영하는 가게의 경우 대체로 노하우 없이 덤벼들었다가 금방 접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대부분 부모가 투자한 돈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자정이 넘은 시각. 정세영 셰프는 이제서야 의자에 제대로 앉을 수 있었다. /사진=이미영 기자
자정이 돼서야 모든 테이블이 마무리 됐다. 와인잔을 닦으면서 그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요리도 공부를 해야 합니다. 저는 아직도 매일 3시간씩 요리를 공부해요. 양식이라고 레시피대로만 하면 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