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과 판결] 김소영 대법관

머니투데이 황재하 기자 2016.02.1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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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l] 이석기 前 의원 내란음모 사건 주심

편집자주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는 법언이 있다. 공직에 몸담은 법관들은 사회 현안에 대해 함부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오로지 판결을 통해 웅변할 뿐이다. 판결을 살펴 보면 우리 사법부에서 일하고 있는 법관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우리 사회에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법관들의 출신 지역이나 학력 등 판결에 대한 선입관을 형성할 수 있는 요소들은 기사에서 배제했다.

김소영 대법관. /사진=뉴스1김소영 대법관. /사진=뉴스1


김소영 대법관(51·연수원 19기)은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굵직한 사건들의 최종 판결에서 주심을 맡았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과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세월호 선장 및 선원들 사건이 대표적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제청해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임명했고, 임기는 2012년 11월 시작됐다.



다음은 김 대법관의 주요 판결들.

◇이석기 前 통진당 의원 내란선동 유죄, 내란음모 무죄



김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1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해 징역 9년에 자격정지 7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내란선동 혐의는 유죄, 내란음모 혐의는 무죄로 인정한 원심의 판단도 그대로 유지했다.

전원합의체는 당시 "이 전 의원의 발언은 단순히 정치적 사상이나 원리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한반도 내 전쟁이 발발하면 회합 참석자 130여명 이상이 조직적으로 전국적 범위에서 국가기간시서을 파괴하고 선전·정보전 등 다양한 수단을 실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전쟁 상황에서 이 전 의원 등이 촉구한 행위가 실행되면 전쟁에 대한 정부의 대응 기능이 무력화돼 대한민국 체제가 전복될 수 있다"며 "헌법이 정한 정치적 기본조직을 불법으로 파괴하는 것에 해당해 '국헌문란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RO(혁명조직)의 실체가 충분히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 내란음모죄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음모는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2인 이상의 사람 사이에 성립한 합의'인데, 단순히 회합에서 의견을 교환한 것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앞서 이 전 의원은 RO 운영을 총괄하며 유사시 기간시설을 파괴할 계획을 세우는 등 체제를 전복시키려 모의한 혐의로 2013년 9월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RO의 실체를 인정하고 내란음모와 내란선동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 이 전 의원에게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제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RO가 실체를 갖춘 조직으로서 체제전복을 꾀했다고 봤다.

그러나 이후 2심 재판부는 RO의 실체가 객관적 증거에 의해 충분히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1심을 뒤집었고,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한편 이 사건으로 헌법재판소가 2014년 12월 통합진보당에 대해 정당 해산 결정을 내려 소속 의원들은 자리를 잃었다.

◇세월호 선장 '살인죄' 유죄 인정

김 대법관은 또 전원합의체 주심으로서 이준석 세월호 선장(71)에 대해 살인죄를 유죄로 인정하는 판결을 확정했다. 이 선장에게 승객들을 살해할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11월 "이 선장은 승객들을 퇴선시키지 않은 채 세월호에서 빠져나가 이후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이는 승객들을 적극적으로 물에 빠트려 익사시키는 행위와 다름없다고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이 선장은 2심에서 선고받은 무기징역을 확정받았다.

이 판결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을 인정한 사례다. 부작위란 마땅히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세월호가 전복되는 상황 속에서 운항의 총 책임자인 이 선장에게는 승객들을 퇴선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면 부작위에 해당한다.

미필적 고의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범죄가 발생할 것을 미리 예상하고도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 즉 행동에 옮기는 것을 뜻한다. 이 선장이 승객들을 구출하지 않으면 숨질 것을 미리 예상하고도 배를 빠져나갔고, 실제로도 결과적으로 승객들이 숨졌다면 이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볼 수 있다.

종합하면 이 선장이 '퇴선명령이라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승객들이 숨질 것'이라 예상하고도 내버려둔 채 배를 빠져나가 승객들을 살해했다는 것이 전원합의체 판단의 골자다.

특히 이 판결은 대형 인명사고와 관련해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 인정된 첫 사례다. 전원합의체는 "승선 경험이 풍부한데도 많은 승객을 내버려둔 채 먼저 퇴선한 이 선장의 행태는 자신의 역할을 의식적·전면적으로 포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월호 사고 이후 1년7개월 만에 나온 이 판결에 유족들은 환영의 뜻을 전했다. 4·16 세월호참사진상규명 및 안전사회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는 "앞으로의 참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바람직한 판단"이라며 "앞으로 사고가 났을 때 자기 목숨만 챙기면 된다는 생각은 없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당사자 참여 없이 혐의와 무관한 자료까지 압수수색, 취소해야"

김 대법관은 혐의를 받는 당사자가 참여하지 않은 상황에서 영장에 적시된 혐의와 무관한 정보에 대해 압수수색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김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7월 J제약회사에 대한 수원지검 강력부의 압수수색 처분을 취소하라는 원심 결정을 확정했다.

검찰은 2011년 J사의 배임 혐의와 관련한 영장을 발부받아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J사가 보관하고 있는 저장매체 속에 혐의와 관련한 정보와 무관한 정보가 섞여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사측 동의를 받아 저장매체를 압수했다.

이후 검찰은 해당 저장매체를 다른 매체에 복제했고, J사 관계자는 이 과정을 참관하던 중 자리를 떴다. 검찰은 해당 저장매체를 사측에 반환한 뒤 복제본 정보를 탐색하다가 영장에 기재된 혐의와 무관한 정보들도 함께 출력했다. 이 과정에 J사 관계자는 참관하지 않았다.

전원합의체는 "전자정보를 복제하는 등 과정은 증거물을 획득하는 행위로 압수수색의 목적에 해당하는 중요한 과정"이라며 "혐의사실과 무관한 정보가 수사기관에 남으면 피압수자의 다른 법익이 침해될 가능성이 커져 압수를 당하는 자의 참여권을 보장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김 대법관은 이인복·이상훈 대법관과 함께 보충의견을 통해 일부 대법관들의 반대의견에 대해 반박했다.

당시 몇몇 대법관은 "압수 대상이 되는 전자정보 종류에 따라 압수수색의 적법성을 달리 평가해야 한다"며 혐의와 일정 부분 관련이 있는 내용에 대해 압수수색할 때는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아도 중대한 위법이라 할 수 없다는 의견을 냈다.

이에 김 대법관 등은 "법원이 '혐의와 유관한 정보'에 대한 압수수색만 적법하다고 인정하려면 취소돼야 할 '무관한 정보'가 무엇인지 일일이 심리해 판단해야 하는데, 이는 적절한 것이라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전원합의체 판결은 일선 법원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부는 압수수색 영장에 저장 매체 자체가 아닌 그 안에 저장된 전자정보만을 압수 대상으로 명시하는 실무 운영안을 도입했다.

◇"제조방식만으로 특허 인정 안돼"

이 밖에도 김 대법관은 제조 방법만을 이유로 특허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주심을 맡았다.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1월 일본인 K씨가 내국인 윤모씨를 상대로 낸 특허등록 무효심결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특허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제조 방법이 기재된 물건에 대해 '제조 방법'을 특허 요건으로 한정해서는 안 되고, 제품 자체의 구조나 성질 등 신규성·진보성을 살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전원합의체는 "물건 발명의 대상은 그 제조 방법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얻어지는 물건 자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K씨의 '폴리비닐알코올(PVA)계 종합체 필름 및 편광 필름'을 특허발명으로 인정한 특허법원 판결은 파기됐다. K씨의 편광 필름이 가진 특징은 제조 공정 전 PVA 원료를 물로 씻어내는 과정을 거친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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