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雜s]76살 샌더스의 영화같은 삶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 2016.02.06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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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편집자주 40대 남자가 늘어놓는 잡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도 여전히 나도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40대의 다이어리입니다. 몇년 있으면 50雜s로 바뀝니다. 계속 쓸 수 있다면...


미 대선 샌더스미 대선 샌더스


스물 셋에 결혼, 2년만에 파경.
스물 여덟에 '미혼부'.
30~35세 5년간 다섯 차례 낙선(한번도 지지율 6% 넘긴 적 없음).
40세까지 변변한 직업없이 목수 조사원 자유기고가 실업자 생활.
마흔 일곱에 아이 셋 딸린 여성과 재혼.
이제 나이는 어느덧 75살(한국 나이로는 76)




이 정도면 '이 영감, 인생 쉽지 않게 살았네' 라는 동정을 받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 굴곡진 인생의 주인공 버니 샌더스가 퍼스트레이디 국무장관을 거친 '주류 엄친딸' 힐러리 클린턴과 박빙 승부를 펼치며 미국 대통령 선거를 드라마로 만들고 있다(미국 선거 기사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의 나라 대통령후보에게 후원금을 보냈다"는 한국 블로거의 댓글이 달린 걸 보기도 했다)

자본주의 본산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주의자'를 자칭하며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무모한 정치인. 구부정한 허리에 빗지 않은 백발머리, 갈라졌지만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주류'들에게 한방을 먹이는 모습은 '창문 너머 도망친 100세 노인'의 주인공 알란 칼손을 떠오르게 한다.



외모 만큼이나 범상치 않았던 그의 영화같은 삶은 그의 정치 이력보다도 덜 알려져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자신을 샌더스에 비유했지만, 샌더스가 걸어온 길을 잠깐이라도 살펴보면 차마 그런 소리를 못할 듯 하다.

그는 유대인이다. 그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포함한 친척들은 히틀러의 나치 정권에 학살당했다. 왜 정치를 시작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하곤 한다. "1932년 히틀러라는 자가 선거에서 당선됐다. 그 결과 유대인 600만명을 포함, 5000만명이 학살당했다" 선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주는 말로 이보다 절실한 건 없을 듯하다.

겨우 목숨을 건져 미국으로 건너온 샌더스의 아버지는 뉴욕 브루클린의 서민동네에서 페인트를 팔아 근근히 생계를 이었다. 밥을 굶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생필품 외에는 눈을 돌리기 힘든 그런 삶이었다. 고등학교 학생회장 낙선으로부터 시작된 그의 '정치' 이력은 뉴욕 브루클린 칼리지에서 시카고대 정치학과로 옮기면서 본격화된다. 인종 차별 금지 위원회, 비폭력 조직위원회, 청년 사회주의자 리그 같은 조직에 참여했다.


졸업후 미 동부의 보수적이고 자연주의 전통이 강한 버몬트주에 정착한 그는 30세인 1971년 플레인필드라는 시골동네에서 '자유동맹당(Liberty Union Party)' 이라는 군소진보정당의 상원의원 후보로 출마한다. 득표율은 2%도 안됐다.
정치활동만큼이나 사랑도 순탄치 않았다. 대학에서 만난 여성과 결혼했지만 2년만에 헤어졌고, 28세때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들 레비 샌더스를 낳았다(그는 지금 평범한 회사원으로 일한다). 동성애 낙태 혼전관계 등에서도 '진보적'이었던 그는 그는 '미혼부'라는걸 숨기지 않고, 아들을 데리고 선거운동을 했다(47세때 아이 셋 있는 현재의 부인과 재혼, 그는 2남2녀를 뒀다).
71년 선거운동 당시 두살 반이던 아들 레비 샌더스와 함께/사진=버몬트 프리맨71년 선거운동 당시 두살 반이던 아들 레비 샌더스와 함께/사진=버몬트 프리맨
"한 줌의 사람들이 거의 모든 걸 소유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 부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고 중산층은 붕괴되고 있다." 45년전 선거운동을 하며 팸플렛에 적었던 글귀나 지금이나 그의 말은 똑같다. 오히려 미국인들은 그때보다 점점더 많이 일하고 더 적게 받고,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는게 샌더스의 생각이다.

젊어서부터 '직업정치인'으로 들어선 삶이 순탄할 리 없었다. 그는 30대와 40대의 '황금기'를 변변한 직업 없이 목수, 기고가, 조사원, 독립영화제작자를 전전했다. 직업이 없어 실업수당을 받아야 할 정도였지만, 지역 신문사에 글을 보내고 라디오에 출연하며 자신의 신념을 알려나갔다.
40세인 1981년, 평생 '루저'로 살 것 같은 그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불과 10표 차이로 버몬트 주 최대도시 벌링턴 시장으로 당선된 것. 10년간 이웃들의 문을 두드려 이야기를 나누며 쌓아온 신뢰가 바탕이 됐다.

'사회주의자' 샌더스를 시장으로 뽑은 벌링턴 시는 어떻게 됐을까.
벌링턴 지역 언론은 처음 그가 당선됐을때 '반기업'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하지만 코넬대 피터 드라이어 교수는 벌링턴이 미국에서 가장 실업률이 낮고 경제활동이 활발한 도시라는 평가를 듣게 된 출발점이 샌더스 시장 재임기였다고 평가한다. 지금은 스키장비 업체 버튼을 비롯, 자연친화 기업들이 벌링턴에 본사로 두고 있다.
하원의원 도전을 위해 시장직을 그만둘때까지 그의 지지율은 계속 높아졌고, 마지막 시장 당선때는 70%가 넘는 표를 얻었다. 그는 임기중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에 의해 '미국 베스트 20 시장'에 뽑혔다.

지속 가능하고 중산층을 붕괴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경제가 성장해야 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상생'을 내세운다. 우리 식으로 하면 '동반성장'이다.
시장으로서 권한을 활용하는 한편, 약자들을 조직하고 스스로 입법에 나서게 하는 게 그의 독특한 행정방식이었다.
벌링턴 최대 임대주택단지인 '노스 게이트 아파트먼트'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저소득층 아파트 단지의 소유주가 이를 재개발해 호화콘도로 바꾸려고 하자 그는 세입자들 스스로 입법활동에 나서도록 후원했다. 퇴거 2년전에 세입자에게 고지를 의무화 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고, 우선매입권을 거주자에게 부여했으며, 세입자들에게 똑같은 수의 대체 주택을 주기 전에는 강제철거를 못하도록 하는 법이 만들어지도록 도왔다. 이같은 규제로 아파트 단지의 매입가격이 떨어지자 그는 1200만달러의 기금을 들여서 세입자들이 단지를 매입할 수 있도록 지원했고 이 아파트는 지금도 저소득층이 소유하고 장기 거주하는 주택으로 남게 됐다.

그가 대선 출사표를 던진 '레이크 챔플레인 워터프론트 파크'는 지역 사업가가 럭셔리 호텔과 고층 콘도를 지으려던 걸 시민용 공원으로 변경해 개발한 상징적인 장소다. 그 사업을 추진했던 사업가는 나중에 샌더스의 최대 후원자가 된다.

월가의 거대 금융기관을 해체하고, 부자들에게 중과세하자는 주장은 '과격'해 보이지만, 실상 총기소유 등의 문제에 있어서는 오히려 샌더스가 힐러리 클린턴보다 더 보수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보수적인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샌더스의 지지율이 힐러리를 앞서고 있는 것은 (그가 남성이라는 점과 함께) 샌더스의 실용주의가 바탕이 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그는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말하지만 이는 오히려 선거용 '브랜딩'에 가까워 보인다. 실제로 젊어서 마르크스와 레닌 트로츠키를 읽고 시위에 나섰다가 체포되기도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자본주의적 소유관계를 부정하고 혁명을 꿈꾸는 사회주의자라기보단 북유럽식 복지국가를 이상으로 삼는 '사회민주주의자'로 규정하는게 맞는 것 같다.

아무리 사는게 팍팍하다고 해도 미국인들이 '홧김에 서방질'하는 식으로,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꼴통 사회주의자'를 지지할 리는 없다.

샌더스가 미국 민주당의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아이오와만 놓고 보면)높게 봐서 '반반'이다. 후보가 돼도 대통령이 될 확률은 또 '반반 게임', 대통령이 된들 그의 신념이 행동으로 옮겨질수 있을지는 '반반'도 안될 듯하다. 그가 미국과 세계의 '상식'을 깨게 되든 그렇지 못하든, 포레스트 검프처럼 달려온(샌더스는 실제로 달리기를 좋아해서 고등학교 육상부 주장이었다) 그의 75년 삶은 경의를 표할 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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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인사겸 얼마전 만난 한 정치인에게 "대통령의 꿈이 있느냐,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지금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정치인이 아니다)

그는 "정치는 포인트를 쌓아가는 것"이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대통령의 가능성이라는게 하루아침에 되는게 아니라 평생을 두고 '자기의 길'을 걷고 '자신의 말'을 지키며 포인트를 쌓아가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쌓이는게 더디기만 하고, 당장은 쓸수도 없는 거지만, 어느 순간 그 포인트가 누적돼 임계점을 넘어서면 그걸 인정받게 된다는 말이다. 샌더스의 삶이야말로 길고 긴 포인트 쌓기였다.

75세 샌더스 할아버지의 삶은 나이 50에 인생 다 산 것처럼 포인트 쌓기를 포기하기엔 빨라도 한참 빠르다는 걸 이야기하고 있다. 포인트를 쌓는게 꼭 대통령 되고 싶은 사람만 할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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