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첫 여성 총통, 차이잉원의 3가지 분석 코드는?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원종태 특파원 2016.01.16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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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대만 최초의 여성 총통으로 당선된 차이잉원 당선자는 소박하고 청렴한 이미지로 대만 젊은 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16일 대만 최초의 여성 총통으로 당선된 차이잉원 당선자는 소박하고 청렴한 이미지로 대만 젊은 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대만 최초의 여성 총통에 오른 차이잉원 당선자. 민진당 주석직을 3번이나 맡고, 대선 재수 끝에 끝내 총통이 됐다. 대만 국민들은 그의 어떤 점을 지지한 것일까. 차이잉원을 대변하는 3개의 코드, 그 중 첫 번째 코드는 ‘인고’다. 시계를 1년 8개월 전으로 되돌려보자.

◇인고
2014년 5월25일 당시 대만 제1야당인 민진당 주석(대표) 선거는 이미 대만의 새로운 지도자 출현을 암시하는 신호탄을 쏴 올렸다. 93.7%라는 압도적 당내 지지율로 차이잉원은 다시 주석직을 꿰찼다. 2008년과 2010년에 이어 3번째로 주석직을 맡았다.



특히 2008년 차이잉원이 민진당 주석직에 오른 것은 일종의 실험무대였다. 당시 민진당은 대선에서 국민당에게 패했고, 민진당 거물인 천수이볜 전 총통까지 비리 혐의로 구속되며 창당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아무도 난파 직전 민진당 호의 선장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차이잉원은 그러나 주석직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첫 주석 취임 후 3년간 9차례 선거에서 7차례나 승리하며 당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정작 사활을 건 2012년 대선에서는 패했다. 맞수인 국민당 마잉지우 후보에게 단 80만표(6%)로 졌다. 하지만 민진당 당원들은 ‘젊은 피(?)’ 차이잉원에게 또 한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 93%가 넘는 전무후무한 지지율로 그를 다시 주석직에 앉혔다. 그리고 1년8개월이 흐른 2016년 1월16일 대선. 차이잉원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대만 최초의 여성 총통으로 당선됐다.



◇친서민
차이잉원은 사실 보통 사람은 아니다. 그의 부친인 차이제셩은 자동차 정비업으로 부를 쌓은 뒤 부동산과 건설, 호텔업에 진출한 기업가였다. 부친은 부의 상징이라는 얼나이(첩)를 5명이나 뒀다고 한다. 11명의 이복 형제·자매 중 막내 딸로 태어난 차이잉원은 학창시절도 남달랐다. 대만 최고 명문인 대만국립대 법대를 졸업한 후 미국 코넬대에서 법학석사를, 영국 런던정경대 법학 박사를 땄다. 이후 대만 국립정치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1994년 대만 정부의 대 중국 정책 자문위원으로 발탁됐다.

민진당 천수이볜 정권 시절인 2000년에는 대만의 양안관계 주무부처인 행정원 대륙위원회 위원장(장관급)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나이 44세 때다. 그는 2001년에는 양안관계 개선의 대 전환점으로 불리는 ‘소삼통’ 정책(통항·교역·우편거래 허용)을 도입했다.

이런데도 대만 사람들은 차이잉원을 주저없이 친서민 정치인으로 꼽는다. 부유층 출신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과 달리 개인적으로는 내성적이고 소박한 성격으로 알려졌다. 트레이드 마크 격인 화장기 없는 얼굴과 단발머리도 그를 친서민으로 불리게 했다. 독신으로 살면서 두 번이나 여성 대선 후보에 오른 것도 대만 여성들의 지지표를 얻었다.


그러나 차이잉원의 친서민 성향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돼지저금통이다. 차이잉원은 이번 대선은 물론 2012년 대선에서도 풀뿌리 정치자금으로 집권여당에 맞서겠다며 기발한 돼지저금통 정치자금 운동을 폈다. 이는 중도 좌파 계열로 서민 정당을 표방하는 민진당 색채와도 딱 맞아 떨어졌다. 민진당은 이번 대선에서 14만개 돼지저금통을 지지자들에게 나눠줬고 , 지지자들은 7만 대만달러(251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돼지 저금통에 담아 건넸다. 대기업 정치자금이 아니라 유권자 지원으로 대선을 치르겠다는 이 발상 자체가 친서민적이다.

◇대만의 딸
차이잉원은 대만의 딸로도 불린다. 대만은 내성인(대만 토박이)과 외성인(중국 본토 출신)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존재한다. 내성인은 대만 인구의 85% 이상을 차지하지만 대만을 흔드는 권력은 사실 외성인 차지였다. 대만의 50년 통치를 외성인이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지난 8년간 대만을 통치한 마잉지우 총통도 중국 후난성 헝산에서 태어난 본토 출신이다.

그러나 차이잉원은 할머니가 대만 원주민인 파이완족이며 부친도 푸젠성 객가(중국내 소수민족) 출신으로 대만에서 태어났다. 차이잉원 자신도 타이베이에서 자랐다. 이 때문에 그는 유세전에서 “객가의 딸이 총통이 되게 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차이잉원의 이런 호소에는 한족 출신 외성인에 대한 대만 토박이들의 은근한 반박 심리가 자리잡고 있다. 특히 8년간 집권한 내성인 출신 마잉지우 정부가 경제정책에 실패하며 청년 실업이 급증하고, 임금 인상이 적체된 것은 대만 젊은이들이 내성인인 차이잉원을 지지한 결정적 배경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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